“좀 이따가.”
6.13 지방선거 개표방송에서 대부분의 방송사에서 ‘민주당 14 한국당 2 무소속 1’이라는 자막이 나오자 6시부터 10분간 침묵을 지키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남긴 한마디다.

이날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9개의 텔레비전으로 개표방송을 보던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10분 동안 아무런 공식적인 말도 하지 못했다.

오후 5시 55분께 당사에 도착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5분 간 개표방송을 아무런 말없이 지켜보다가 6시10분에 당사 2층 종합상황실을 떠났다. 기자들이 백브리핑을 요구했지만 홍준표 대표는 “좀 이따가”라는 한마디만 남긴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났다.

6.13 지방선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민주당의 우세로 나타나면서 홍준표 대표의 얼굴은 계속 굳어있었다. 이따금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 6월13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개표방송을 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사진=정민경 기자.
▲ 6월13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개표방송을 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사진=정민경 기자.
선거 결과에 따라 홍준표 대표의 거취가 주목된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해부터 지방선거와 자신의 거취를 연결시켜 언급해왔다. 홍 대표는 지난해 9월29일 서울 여의도 근처 중식당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6곳을 지켜내지 못하면 대표직에서 물어나겠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언급한 광역단체장 6곳은 홍 대표의 사퇴로 공석 상태인 경남도지사와 대구, 경북, 부산, 울산, 인천을 말한 것으로 예측돼왔다. 이날 오후 6시 출구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은 대구와 경북을 제외하고는 우세지역이 없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개표방송을 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만 닦았다.

김 원내대표는 출구조사 발표 직전 MBC와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개선하기 위해 2주간 정말 열심히 뛰었는데 시간이 부족한 아쉬움 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아무래도 야당은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데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미정상회담 등 야당으로서는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되지 못한 부분이 대단히 아쉽다”고 전했다.

김 원내대표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저희 자유한국당은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들의 소중한 판단을 존중하고 그 결과에 따른 우리당의 현실과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6시 10분 홍 대표와 김 원내대표 모두 종합상황실을 떠나자 10여명의 당 지도부들도 모두 자리를 떴다. 당 지도부들은 “출구조사가 이상하네”, “경합지역도 있다”라고 말하면서 자리를 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종합상황실 자리를 뜨면서 “참담하고 암담한 심정”이라며 “아마 정당 역사상 이렇게 참담한 결과를 맞이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탄핵과 대선의 국민적 분노가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았고, 보수 혁신과 보수의 변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우리가 부응하지 못했다. 여실없이 오늘 그결과로 나온것 같다. 말이 필요없이 모든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당 수습에 김 원내대표는 “내일의 태양은 내일 떠오르지 않겠느냐”며 “오늘까지는 제가 어떤 얘기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홍준표 대표는 종합상황실에서 자리를 뜬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The Buck stops here”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은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이 집무실에 놓은 글귀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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