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최초 폭로했던 류영준 강원대 병리학과 교수와 황우석 박사가 명예훼손 재판에서 공방을 벌였다.

류 교수는 지난 2016년 두 차례 언론 인터뷰와 한 차례 토론회에서 언론 보도 등을 바탕으로 박근혜 정부의 줄기세포 완화 조치에 황 박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황 박사는 지난해 1월 이를 문제 삼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류 교수를 월 검찰에 고소했다. 류 교수는 지난 2005년 황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최초 폭로한 공익 제보자다.

황 박사는 지난 9일 서울동부지법 형사3단독(판사 조현락) 심리로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3시간 가까이 신문을 받았다.

황 박사는 이날 박근혜 청와대 및 정부 인사와 본인을 둘러싼 의혹은 전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류 교수가 비판 근거로 제시한 보도에 대해 “언론을 보지 않아 몰랐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6년 언론은 황 박사와 관련해 크게 세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박 전 대통령의 줄기세포 연구 규제 완화 지시(2016년 5월) 및 차병원 연구 승인(2016년 7월)에 앞서 황 박사가 청와대 관계자들과 회의에서 차병원 연구 승인 필요성을 주장했으며(2016년 4월), 정윤회·최순실 등 이른바 ‘비선 실세’ 및 그 측근과 인연이 있다는 의혹이다.

류 교수는 이와 관련해 과거 줄기세포 논문 조작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당사자가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한 것은 문제라고 비판해왔다.

▲ 황우석 박사(위)와 류영준 강원대 교수. ⓒ 김도연 기자, 미디어오늘 자료 사진.
▲ 황우석 박사(위)와 류영준 강원대 교수. ⓒ 김도연 기자, 미디어오늘 자료 사진.

이날 류 교수 측 변호인은 발언 배경이 된 언론 보도를 일일이 제시했고 황 박사는 “12년 동안 언론을 보지 않아 몰랐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황 박사는 △청와대 주재 회의가 박 대통령 지시로 이뤄졌다는 의혹 △줄기세포 규제 완화를 반대한 보건복지부 과장이 경질된 과정에 최순실씨가 관여했다는 의혹 △황 박사가 정윤회 측근과 연루됐다는 의혹 등을 모두 ‘몰랐다’고 주장했다. 황 박사는 “정윤회가 최순실 남편인 걸 몰랐느냐”는 류 교수 변호인 질문에도 “뜬소문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2016년 7월 황 박사가 세계미래포럼 강연회에서 한 발언을 두고 오랜 시간 공방이 이어졌다. 당시 보도를 보면 황 박사는 “청와대에서 열린 차병원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 계획 승인 관련 회의에 참석해 창조경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후배들이나 동료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말했다”며 “차병원에 다시 문을 열어준 정부 조치에 정말 존경하고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고 밝혔다.

공판에서 황 박사는 정확한 문구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청와대에서’, ‘차병원의’ 연구 승인을 요청했다고 발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6년 4월 청와대 관계자들과의 회의 사회를 청와대 쪽에서 봤다는 점에서 ‘청와대 주재 회의’에 참석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청와대에 직접 간 적은 없고 차병원을 특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다만 ‘차병원에 문을 열어줘서 감사하다’는 발언은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본인 발언이 와전됐다면 왜 정정보도 요청 등을 안 했느냐고 묻자 “언론이 경우에 따라 오보도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이에 변호인이 “류 교수 발언이 기사랑 같은 내용”이라고 지적하자 “(기자는) 오보를 하더라도 ‘과대 영웅증’ 환자는 아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본인에 대한 류 교수 비판이 영웅 심리에서 비롯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의혹 보도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류 교수를 고소했느냐”는 류 교수 변호인 질문에 황 박사는 “류 교수가 몇 군데서 나를 지칭해 이렇게 (발언)했다고 제자들이 (류 교수 발언 자료를) 만들어서 왔다”며 “자세한 건 모른다”고 주장했다.

황 박사는 류 교수가 본인을 비방하기 위해 언론 인터뷰를 했다고 단정했다. 류 교수가 황 박사 자신을 비판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모두 제 부덕의 소치”라며 “끝없이 저를 비방해서 추락시키겠다는 목적 이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류 교수가 일하는) 국립대학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 이과대학 교수는 공인”이라며 “최순실과 정윤회, 문고리 3인방, 차병원 연구 승인 로비 의혹 등은 공인이 출판물을 통해 반복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류 교수는 황 박사를 비방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류 교수 측은 앞서 법원에 “류 교수 발언은 줄기세포 전문가이자 연구윤리·생명윤리 전문가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한 비판 발언이었으므로 ‘비방의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정당한 사회적 문제 제기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가 부당하게 관철되지 않도록 정의와 형평에 맞는 재판을 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변호인은 “과거 황우석 논문 조작 사태 때 황 박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류 교수는 앙심을 품을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황 박사가 류 교수의 ‘국립대 소속 신분’을 운운하는 것이 류 교수에게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5년 황 박사 논문 조작 사건을 보도한 한학수 MBC PD수첩 PD는 이번 명예훼손 소송이 전문가 입을 틀어막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PD는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으로 이번 재판 소식을 전하며 “전문가들이 언론에 자기 의견을 진술하는 데 위축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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