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의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싸웠던 간절함이 오늘을 만들었다.” 박진수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장은 지난 4일 오후 YTN 사옥에서 진행된 최남수 YTN 사장 사내 중간 평가 개표 직후 조합원 80여명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2008년 MB정부의 YTN 낙하산 사장 선임에 반대했던 기자들이 해직된 후 계속된 공정방송 투쟁에서 처음으로 맛본 ‘승리’다.

YTN 노사는 방송통신위원회 중재에 따라 YTN 사내 구성원 50% 이상이 불신임하면 최 사장이 사퇴하기로 합의했고 4일 중간 평가 결과 재적 인원(정규직 653명) 가운데 55.6%(363명)가 불신임에 표를 던졌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개표는 눈대중으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분류된 불신임 표를 YTN 투표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재집계하고 나서야 ‘불신임 우세’는 확인될 수 있었다. 개표에 참여한 권준기 언론노조 YTN지부 사무국장은 “개표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마음이 차분해졌다”며 “개표가 진행되고 불신임 표가 하나하나 쌓이는 걸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 지난 1월 YTN 보도국장 지명 문제 등 ‘노사 합의 파기’ 논란에 휩싸인 최남수 YTN 사장이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출근을 막는 노조원들에 막혀 인근 커피숍으로 이동하던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지난 1월 YTN 보도국장 지명 문제 등 ‘노사 합의 파기’ 논란에 휩싸인 최남수 YTN 사장이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출근을 막는 노조원들에 막혀 인근 커피숍으로 이동하던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최 사장 퇴진을 이끈 것은 ‘10%P’의 힘이었다. 사내 중간 평가에서 불신임에 표를 던진 구성원은 363명. 신임 비율보다 10%P 정도 앞섰다. 중간 평가에 대한 노사 합의가 있기 전 YTN 안팎에서 흘러나온 사측의 중재 요구안은 60% 이상의 불신임률이 나오면 최 사장이 사퇴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안대로 했으면 최 사장은 직위를 유지할 뻔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출국 금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압수수색’ 등 연이은 YTN 대형 오보가 사측과 최 사장의 협상력을 크게 위축시켰다. 그 결과 최 사장 퇴진 조건은 불신임률 ‘60%’에서 10%P 하락한 50%로 결정됐고 중간 투표 결과 최 사장 사퇴는 현실이 됐다.

그러나 ‘45%’는 하나의 세력으로 남았다. YTN 중간 평가 보도에 대한 여러 반응 가운데 ‘최 사장 지지 세력이 45%나 된다’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지난 2월1일부터 노조가 84일 동안 공정방송 파업을 벌여 지지세를 규합했음에도 사퇴 요건을 간신히 넘었다는 우려 섞인 반응이었다.

사측은 방통위 중재에 따라 노조와 중간 평가 협상을 하던 중 일반·연봉직 사원 처우 개선을 논의하자고 노조에 제안했다. 언론노조 YTN지부는 수년 동안의 임금 협상에서 일반·연봉직 사원들 처우 개선과 격차 해소를 요구해도 거부한 사측이 투표를 앞두고 유리한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려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45%’에는 최 사장을 지지했던 YTN 간부들뿐 아니라 이들도 결합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YTN 사장 선임 과정에서 폐쇄형 사장추천위원회와 이사회를 중심으로 기존 절차를 답습한다면 ‘도로 최남수 사태’가 빚어질 우려도 있다. 박진수 지부장은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현재 YTN에는 최 사장이 ‘알 박기’한 보직 인사들이 여전하다”며 “특히 김호성 YTN 상무는 등기 이사로서 최 사장 선임에 앞장섰던 인사다. 파업과 이어진 파행 방송의 책임자인데 그가 지난번처럼 이사회 의장으로서 향후 YTN 선임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번 불신임 의미를 배반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박 지부장은 “김 상무는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에 맞고 사장 선임 절차에서 빠져야 한다”며 “김 상무는 사추위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최 사장 사퇴에 맞춰 본인의 거취부터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호성 상무는 같은 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상무 역할에서 손을 떼고 말고는 제 의지로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사장이 유고 시 (상무가) 대신 역할을 하는 것은 사규로 규정돼 있는 것이다. 주어진 직분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노조를 중심으로 한 반발 여론에 대해 “반발 여론도 있지만 지지 여론도 있다”고 반박했다.

▲ 박진수 언론노조 YTN지부장이 지난 4일 중간 평가 개표 발표 직후 조합원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박진수 언론노조 YTN지부장이 지난 4일 중간 평가 개표 발표 직후 조합원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결국 YTN 사추위 구성을 포함해 차기 사장 선임 절차를 둘러싸고 노사는 다시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YTN 사측은 8일 “신임 사장 선임 절차를 공정하게 관리 하겠다”고 밝힌 뒤 “회사는 신임 사장 선임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며 모든 절차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해 나가겠다. 사장추천위원회 등 기존의 사장 선임 절차에 대해 보완 필요성이 제기됐던 만큼 이사회 및 양대 노조와 논의해 최선의 사장 선임 절차를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더 이상의 갈등과 분열은 없어야 할 것”이라며 “신임 사장 취임 전까지 회사는 조직이 화합과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노사 상호 간에는 물론, 구성원 개인 간에도 비난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노조와 시민사회는 YTN 사추위와 이사회의 ‘밀실 선임’에 우려하고 있다. 박 지부장은 “YTN 새 사장 선임 절차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어야 하고 시청자들과 구성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8일 “YTN이사회는 YTN 구성원들이 부적합 후보로 꼽았던 최남수씨를 사장으로 내정했다”며 “YTN이사회는 선임 절차 투명성을 확대하고 YTN구성원들과 시청자들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8년 MB정부의 YTN 낙하산 사장 선임에서 시작된 공정방송 10년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