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언론은 ‘미투’의 시작을 지난 1월 안태근 검사 성폭력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의 JTBC 뉴스룸 인터뷰로 보고 있다. 피해자가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얼굴을 드러내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힌 이 인터뷰는 미투 ‘보도’ 상징이 됐다. 이후 언론이 성폭력 피해 사례를 나르는 동안 2차 피해가 발생했고 피해자와 가해자 간 진실 공방으로 사안의 본질이 흐려지기도 했다.

피해자 진술에 의존하는 미투 보도는 일반의 사건 보도와 같을 수 없다. 피해 횟수와 사례 등을 구체적으로 기사화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전시하는 효과를 가져와 피해자에게 2차, 3차 피해를 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가능한 수준의 취재이고 보도일까. 나아가 언론은 미투 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한국방송학회는 이러한 논의를 확장시키고자 지난 23일 “언론의 MeToo 보도, 그 바람직한 방향”을 주제로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미투를 “나도 당했다”라고 번역한 것부터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미투는 피해 여성들이 언어의 주체로서 자신을 재규정하는 것”이라며 “즉 ‘나도 말한다’라는 선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희은 조선대 교수도 “‘나도 당했다’라는 말은 (미투 현상을) 현재 진행형이 아닌 과거의 일, 개인적 일로 느껴지게 만든다”며 “언론이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예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성폭력 피해 사례를 부각하거나 피해자를 내세우는 보도 관행에 비판이 집중됐다.

이 교수는 “‘몇 차례’, ‘얼마나 강하게’ 등이 미투 진정성을 판단하는 척도처럼 강조되다보니 ‘누구는 꽃뱀이더라’ ‘무고더라’ 하는 말이 나온다”며 “미투는 성범죄에 관한 것이므로 범죄나 폭력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데 ‘성’에 방점이 찍힌다”고 지적했다.

언론 감시 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언론이 반(反)성폭력 문화를 환기시키는 게 아니라 도리어 흥미 위주로만 전달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했나’,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등의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기보다 사건을 개별화하기 때문에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 23일 오후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언론의 MeToo 보도, 그 바람직한 방향" 세미나가 열렸다.
▲ 23일 오후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언론의 MeToo 보도, 그 바람직한 방향" 세미나가 열렸다.
피해자를 카메라 앞에 세우는 보도 방식의 부작용도 언급됐다. 박 교수는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에 관한 구체적 정황, 심경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고통스럽게 진술해야 한다”며 “이는 방송사가 피해자의 표정, 말투, 목소리, 태도, 외모 등을 그대로 전달하며 시청자에게 진실 여부나 진정성 판단을 양도하는 보도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김 처장은 “피해자들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언론에 해도 되는 말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생방송이 아닌 사전 녹화를 제안했다.

김 처장은 “피해자 진술 가운데선 방송으로 나가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다”며 “지금은 피해자가 신상을 공개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가짜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슬아 여성민우회 사무국장도 “피해자 정보를 얼마나 공개해야 하느냐가 핵심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사무국장은 언론 보도 자체가 ‘미투’를 흐리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투 의혹’, ‘미투 가해자’ 같은 명칭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몹쓸 짓’, ‘검은 손’, ‘나쁜 일’ 등의 표현으로 성폭력을 가려선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미투 보도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규제 방안은 없을까. 김 처장은 “가이드라인은 이미 충분히 많다. 방송심의규정도 나름 잘 돼 있다”고 말했다. 기자 사회에서 이런 규정을 공유하거나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박진규 교수는 “언론이 피해자에게 질문하고 심문하는 대신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서사화하게 하는 것,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에게 질문하고 사과를 받는 것이 언론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인권·젠더 감수성이 특정한 기자의 몫으로만 남아선 안 된다”며 “피해자 관점에서 기사를 쓰더라도, 데스크가 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 관점은 반영되지 않는다. 직위를 갖고 있는 사람부터 바뀌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슬아 사무국장은 미투 보도에 대한 고민으로 취재가 위축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정 국장은 “연령이 높은 분들 가운데 ‘예전에 겪었던 흉한 짓이 성폭력이었구나’라며 상담 전화를 주시는 분들이 있다”며 “이처럼 SNS를 사용하지 않는 분들에도 미투 운동 효과가 닿은 것을 보면 분명 언론이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현직 기자들은 언론계에 굳어진 관행을 극복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정민경 미디어오늘 기자는 “사회부 혹은 정치부 기사를 썼던 기자들이 젠더·인권 감수성 교육을 받지 않고 기존 방식대로 기사를 쓰는 것이 변하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는 “기자들의 경우 수습 기간 동안 인권이 결여된 교육을 받는다”며 “언론사 내 결여된 인권의식이 보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언론사 내부 교육이 많이 활성화해 고민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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