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용산참사 당시 경찰이 우호 여론 조성을 위해 주요 언론사 간부·기자들을 접촉하고 보도 약속을 받은 정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다. MB정권 하에서 언론이 사건 진상규명보다 ‘정권 안보’에 힘을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MBC 탐사 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지난 6일 용산참사를 재조명하며 당시 경찰청 수사국이 작성한 문건(‘용산 철거현장 화재사고 관련 조치 및 향후 대응방안’)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에게 보고하려고 작성한 것이다. 

지난해 9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발표에 따라 용산참사 당시 경찰청 수사국 등이 전국 사이버요원 900명을 동원해 각종 ‘댓글 공작’과 ‘인터넷 여론조사’에 가담했던 사실은 확인된 바 있다. 스트레이트가 보도한 것은 여기에 더해 경찰과 언론사 간부·기자 사이에 오간 내용으로 경찰에 우호 보도를 하겠다는 언론인들의 입장이 담겨 있다.

▲ 미디어오늘이 MBC 스트레이트 통해 확보한 경찰청 수사국 문건을 보면, 당시 수사국장, 수사과장, 형사과장 등 경찰 관계자들은 용산참사 직후인 2009년 1월22~24일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주요 보수언론은 물론 MBC·서울신문·서울경제 소속 언론인들도 폭넓게 접촉했다. 자료제공=MBC스트레이트, 디자인=이우림
▲ 미디어오늘이 MBC 스트레이트 통해 확보한 경찰청 수사국 문건을 보면, 당시 수사국장, 수사과장, 형사과장 등 경찰 관계자들은 용산참사 직후인 2009년 1월22~24일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주요 보수언론은 물론 MBC·서울신문·서울경제 소속 언론인들도 폭넓게 접촉했다. 자료제공=MBC스트레이트, 디자인=이우림
미디어오늘이 스트레이트 통해 확보한 이 문건 첨부자료(‘언론계 인사 등에 대한 홍보 현황’)를 보면, 당시 수사국장, 수사과장, 형사과장 등 경찰 관계자들은 참사 직후인 2009년 1월22~24일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주요 보수언론은 물론 MBC·서울신문·서울경제 소속 언론인들도 폭넓게 접촉했다. 

경찰 관계자들은 이들에게 “경찰의 공권력 투입의 필요성과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보도 요청”,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의 불법성 등에 대해 정확한 이해 요청”, “시위농성자의 폭력성 설명”, “경찰의 신속한 검거 경위”, “경찰 입장이 최대한 반영된 우호적 논리 보도 요청” 등을 설명했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이 접촉한 언론인 다수는 경찰 요청에 긍정적이었다. 이를 테면 경찰은 당시 ㄱ동아일보 논설주필이 “일부 보수언론과 달리 동아일보는 경찰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으로 가고 있으며 법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경찰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려움이 풀릴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음”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또 경찰은 ㄴ조선일보 기자가 “전철연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사실에 입각한 폭력성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고 문건에 적시했다. ㄴ기자는 MBC 취재진에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ㄷ서울경제 논설위원을 만나고는 “(ㄷ 논설위원이) 조만간 경찰 입장을 홍보하는 칼럼을 게재하도록 약속”했다고 보고했다. 

ㄹ중앙일보 편집국장의 경우 “경찰이 금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우호적 논리를 견지해 나가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문건은 밝히고 있다. ㄹ국장을 만난 경찰 수사국 과장은 MBC 취재진에 “그런 부탁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고 했고 ㄹ국장도 “경찰청 과장이 전화해서 이런저런 보도를 해달라고 하면 통하는 건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문건을 보면 ㅁ동아일보 기자는 경찰에 “이번 사태에 경찰의 입장이 난처하고 어려울 줄 안다. 힘이 닿는 데까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6일 스트레이트 방송에서 실명이 공개된 이는 김장겸 전 MBC 사장이다. 문건에는 당시 김장겸 MBC 국제부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경찰은 김장겸 부장이 “경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법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엄정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하며 후배 기자들에게도 같은 취지로 조언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기록했다. 이와 관련 김 전 사장은 미디어오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 문건을 조사한 경찰청 진상조사위는 조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언론사 간부·기자들이) 단순히 경찰 입장에 공감을 표시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 MBC 스트레이트는 지난 6일 용산참사 당시 경찰과 접촉한 언론인들을 취재했다. 당시 중앙일보 고위 관계자는 MBC 취재에 사실을 부인했다. 사진=MBC 스트레이트
▲ MBC 스트레이트는 지난 6일 용산참사 당시 경찰과 접촉한 언론인들을 취재했다. 당시 중앙일보 고위 관계자는 MBC 취재에 사실을 부인했다. 사진=MBC 스트레이트
실제 경찰을 접촉하고 언론사 보도 논조가 바뀌었을까. 중앙일보는 참사 다음날인 2009년 1월21일 4면에서 “철거민 농성 두 달도 기다리더니 이번엔 25시간 만에 진압”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부제를 통해서는 “경찰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찰이 ㄹ편집국장을 접촉한 이후인 23일자엔 “전철연 의장 ‘망루 농성’ 개입했다”(1면), “전철연, 철거민에 망루 설치법 가르쳤다”(5면) 등 전철연을 문제 삼는 보도가 쏟아졌다. 

조선일보 역시 1월21일자에선 망루 내부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했으나 이후 보도에선 전철연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보도가 늘어났다. MBC는 “조선일보 논조도 달라졌다”며 “전철연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사실에 입각한 폭력성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는 문건의 내용과 비슷하게 (논조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보통 7~8년차 사회부 기자들이 경찰청을 출입하고, 경찰은 이 기자들을 통해 언론사에 입장을 전한다. 이번 문건은 전례와 달리 경찰이 직접 언론사 간부들을 접촉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건을 보도한 김정인 MBC 기자는 8일 미디어오늘에 “당시 경찰 수사국은 참사 당일부터 여론에 대응하기 시작했다”며 “수사 대상이었던 경찰이 오히려 전방위적 여론 대응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기자는 “경찰의 성급한 진압 작전뿐 아니라 여론을 조작하고 언론을 접촉해 기사 논조를 바꾸려 한 사실 모두 국가폭력”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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