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통령선거 피선거권 존재 여부가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또한 반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퇴임후 사무총장의 공직 제한 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김영수(역사바로세우기시민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대표 5인은 지난 25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반 전 총장의 대통령선거 피선거권 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반 전 총장에 대해 “개인자격으로 외국에 거주하면서 약 10여 년간 유엔사무총장직을 수행하다가 지난해 12월 말 퇴임하여 이달초 국내에 입국했음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국내에 주소가 없고 약 10여 년간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전혀 없어 공직선거법 제16조의 규정에 의해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그 피선거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에 대해서도 이들은 “반기문의 대선 피선거권이 있다고 해 전국민에게 법률상 문리해석에 관하여 혼동을 불러 일으킨 당사자”라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이 대선 피선거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법적 근거와 관련해 이들은 공직선거법 16조 1항이 중앙선관위의 해석과 달리 선거일 전 5년 연속해서 국내에 거주해야 한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직선거법 제16조 제1항은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거주기간으로 본다’(개정 1997. 1. 13.)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중앙선관위는 지난 13일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안내메일을 통해 “선거법 제16조제1항 본문의 문언과 입법연혁, 다른 규정, 운용사례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선거일 현재 5년 이상의 기간을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국내에 계속거주와 관계없이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음”, “따라서 제19대 대통령선거일까지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있다면, 공무 외국파견 또는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체류 여부를 불문하고 피선거권이 있음”이라고 해석했다.

▲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선관위는 운용사례로 “1997년 12월18일 실시된 제15대 대선에서 1993년 영국으로 출국하여 1년간 체류한 김대중 후보자의 피선거권에 대한 거주요건을 제한하지 아니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영수 등 원고는 중앙선관위가 법리 해석을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공직선거법 16조1항에 대통령선거일을 최종 기점으로 이전 5년간 국내에 연속적으로 거주해야 한다는 의미가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조항의 뒷 문장인 “이 경우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거주기간으로 본다”가 연속해서 5년을 거주해야 한다는 의미의 ‘단서 조항’이라고 이들은 해석했다.

이들은 특히 “이 예외사유는 피선거권 행사 시점(후보자 등록일)을 기준으로 시간적으로 연속해 5년이라는 국내거주 기간 하한의 범위 내에서 특정 기간에 대한 사유를 정의한 것”이라며 “연속하여 5년이라는 '하한'의 범위 밖의 특정 기간에 대한 사유를 정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특별한 예외사유를 적용할 대상 기간이 ‘연속된 5년 내’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으로 규정한 기간의 범위가 ‘연속적인 5년’의 제한이 아니라 반 전 총장의 평생 국내 거주기간의 총합에 불과하다면, 굳이 “이 경우” 이하의 문장에서 국내비거주의 예외사유를 특별하게 인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소장에서 “공직선거법이 이러한 최소한의 국내거주요건을 정한 취지는 국민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해 외교권을 주재하는 대표자로서 대통령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 기간 동안은 (지속적으로) 국민들과 밀접하게 소통하고 국내 상황에 정통해야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원고의 법률대리인인 한웅 변호사는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선관위의 해석은 위와 같은 조항의 입법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문리해석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며 “이는 법해석이 아니라 법창조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변호사는 “이는 삼권분립에도 위반되는 일로 아주 심각한 문제”라며 “특히 선관위는 유권해석 기관이 아니므로 이 문제를 중앙선관위가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앞서 밝힌 입장에서 변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 공보과의 담당주무관은 31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공직선거법 16조1항의 해석에 대해 “뒤의 조항이 앞을 상술하는 의미이지 앞의 의미를 한정한다고 보지는 않을 것 같다”며 “이 부분의 해석은 태어나서 국내에 5년 이상 거주한 40세 이상의 사람이면 피선거권을 가지며 공무담임권 등의 침해는 없다는 입장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주무관은 “법원에 소를 제기한 상태이므로 법원이 충분히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25일 한웅(가운데) 변호사 등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피선거권 부존재 소송을 제기하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사진=김현승 제공
▲ 지난 25일 한웅(가운데) 변호사 등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피선거권 부존재 소송을 제기하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사진=김현승 제공
다른 중앙선관위 공보과 주무관도 “선관위가 공직선거법 유권해석기관이므로 피선거권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릴 수 있다”며 “5년 이상 거주 피선거권 규정에 대한 선관위 유권해석이 변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946년 UN 총회가 채택한 결의안 11호(이른바 ‘사무총장 공직제한 결의안’)를 충실하게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입법조사처의 견해가 나왔다.

31일 입법조사처가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유엔 사무총장의 임명 조건에 관한 유엔 총회 결의의 검토’ 답변서에 따르면, 초대 국제 연맹 사무총장인 에릭 드러몬드가 퇴임 직후 이탈리아 주재 영국 대사 직위를 수락한 것이 기화가 되어 유엔 총회는 1946년 1월24일 제7차 전 체 회의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임명 조건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게 됐다.

이 유엔 사무총장의 임명 조건에 관한 결의안 제4항 ⒝호에서는 어떠한 회원국도 퇴임 사무총장에게 퇴임일로부터 일정 기간 공직을 제안해서 는 안 되며, 사무총장도 이러한 제안을 수락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입법조사처는 전했다.

법적 구속력과 관련해 결의안 제4항 ⒝호의 공직 제한 규정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의무 규정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유엔 측에서 퇴직한 유엔 사무총장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입법조사처는 판단했다. 다만, 입법조사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하여 퇴직한 유엔 사무총장이 동 결의 안 제4항 ⒝호의 공직 제한 규정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동 규정의 취지에 맞게 충실하게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준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입법조사처는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 후 특정 회원국의 공직에 종사하는 경 우 사무총장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기밀을 유엔 또는 다른 유엔 회원국에게 불이익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도록 이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사전에 예방하자는 데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경협 의원은 “입법조사처의 결론은 UN총회 결의안의 법적 구속력 여부를 떠나 ‘별 것 아니다’고 무시할 사항이 아니고 신의칙과 윤리도덕적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규범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반기문 측 이도운 대변인 등은 이날 오후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한 질의에도 답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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