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멘 난민 519명이 제주도에 도착하자, 한국사회는 난민 문제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나 여론은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에서 불거진 이슬람혐오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지난달 13일 난민 신청과 입국 허가를 폐지하자는 글이 온라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이 청원은 1일 현재 57만 명이 넘게 동의했다.

이슬람을 둘러싼 고정관념의 대표격은 ‘이슬람은 여성을 혐오한다’는 주장이다. 포털과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이슬람은 여성에게 히잡과 여성할례를 강요한다’라는 주장이 퍼졌다. 여성할례는 여성의 순결을 보존한다며 청소년기 여성의 외부 성기를 잘라내는 의식이다. 여성할례는 주로 세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성기 일부를 잘라내는 방식, 모두 잘라내는 방식, 모두 잘라낸 후 미세한 구멍만 남겨두고 봉합하는 방식이다.

여성억압을 이슬람과 동일시하는 유언비어는 난민수용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 ‘남성 난민이 한국 여성을 성폭행할 것’이라는 공포 어린 주장도 퍼졌다.

여성억압은 이슬람만의 특징인가? 아니다.

여성할례는 이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니세프(UNICEF)가 2013년 발표한 ‘여성 성기절제: 통계 현황과 변화 추이’에 따르면 기독교도가 다수인 에티오피아에서 여성 가운데 74%가 여성할례를 겪었다. 에티오피아 내 기독교 인구는 61.9%이며 무슬림은 35.9%다. 에리트레아의 여성 89%가 여성할례를 겪었다. 에리트레아도 62.9%가 기독교 신자다.

무슬림이 압도적인데도 여성할례 관습이 없거나 실시율이 낮은 국가도 여럿이다. 이란(무슬림 비율 99.5%)·시리아(92.8%)·리비아(96.6%)·아랍에미리트(75%) 등의 나라에선 여성할례 관습이 없다. 여성할례는 중앙아프리카 및 중동 일부 국가에 내려오는 ‘지역 문화’로 보는 게 맞다. 예멘은 인구 99%가 무슬림이다. 유니세프는 예멘을 여성할례 ‘확산도가 낮은 국가(23%)’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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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여성할례 현황 지도. 사진=유니세프

 

 

무슬림 국가 중 일부에선 여성인권 지표가 한국보다 높다. 국제연합(UN) 여성기구와 국제의원연맹이 발표한 2017 여성 정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대의 무슬림 거주 국가(90%)인 인도네시아가 지난해 아시아권에서 여성장관 비율 1위를 기록했다(25.7%, 9명).

무슬림 남성이 여성을 더 억압한다는 주장도 살펴봐야 한다. 유니세프가 2016년 발표한 ‘여성 성기절제: 국제 문제’에 따르면 여성할례가 남아 있는 국가에 사는 남성의 63%, 여성의 67%가 이 관습에 반대했다. 특히 여성할례 시행 비율이 높기로 악명 높은 기니(84.6%)와 시에라리온(78.5%)은 여성할례 관습에 반대하는 남성 비율이 여성보다 높다. 둘 다 무슬림 인구가 다수인 나라다.

무슬림 난민을 수용한 나라에서 실제 성범죄가 증가하는가? 이 역시 입증되지 않았다. 이 유언비어의 대표주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지지자 집회에서 스웨덴이 난민 총기 및 성범죄에 시달린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은 2015년 난민 8만여 명 받아들여 현재 16만 명이 넘었다. 난민은 대부분 시리아·이란·이라크·우즈베키스탄·아프가니스탄에서 유입됐는데, 무슬림 인구가 압도적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난민 수용 규모가 2배로 늘어난 2015년, 스웨덴 내 강간 사건은 오히려 줄었다고 보도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우리사회 내 이슬람에 대한 오해는 지극히 비상식적”이라고 우려했다. 장지향 센터장은 “어느 종교에나 극단주의는 다 있다. 예멘이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야말로 종교를 악용하는 극단주의 세력의 피해자들”이라고 했다. 장 센터장은 “(난민들이) 극단주의 세력을 피해 한국을 찾아왔더니, 또다시 ‘너희가 믿는 이슬람이 극단주의지?’라고 몰아가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이슬람을 둘러싼 한국사회 내 간극을 줄여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이슬람이 극단적 종교가 아니라는 상식을 퍼뜨리는 한편, 우선 39명뿐인 난민 심사인력을 늘려 신속·정확하게 과정을 밟고 (비현실적) 불안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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