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탈원전의 일환으로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원전 5‧6호기 임시중단 및 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하자 조중동을 비롯해 원자력 관련 업계 유관 학자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특히 국내 대학 공과대 교수 417명은 문 대통령의 탈핵 선언을 제왕적이라 원색 비난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는 과거 원전업계에서 벌어진 비리와 부조리가 벌어졌을 땐 침묵하다 원전정책의 방향전환이 추진되니 반발하고 있다며 업계와 이해관계에 따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 교수들이 집단 반발에 나선 것은 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고리1호 영구정지 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이 안전하지도 않고, 저렴하지도 않으며,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며 “원전 정책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밝히면서부터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같은 달 27일 국무회의에서 신고리원전 5‧6호기 공사를 임시중단하고, 중단을 확정할지 여부를 논의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등 전국의 50여 개 대학 417명의 공과‧이과 교수들이 지난 5일 이른바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 명의로 정부의 탈원전 선언 자체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이 성명을 낸 교수 417명 가운데 대부분은 공과대 교수이며 절반 가까이는 원전산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전공 교수들이다. 성명을 주도한 것은 전국의 원자력 공학과 교수들이라고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설명했다.

이들 주장의 요지는 △공사 공정률이 29%에 달해 매몰비용이 2조5000억 원을 넘길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이 성급하며 △2008년에 수립돼 5년마다 보완되는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과 2년마다 수정되는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숙의를 통해 수정하지 않고 대통령 선언 하나로 탈원전 계획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신고리 5‧6호기 중단에 앞서 탈원전 정책 당위성을 먼저 논의해야 하는데 이런 논의를 비전문가이면서 책임도 질 수 없는 소수의 배심원단 앞에서 3개월의 단기간 동안만 진행하고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속전속결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숙의되지 않은 탈원전 정책 추진은 향후 민생부담 증가, 전력수급 불안정, 산업경쟁력 약화, 에너지 국부유출, 에너지 안보 위기 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값싼 전기를 통해 국민에게 보편적 전력 복지를 제공해온 원자력 산업을 말살시킬 탈원전 정책의 졸속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주장에 이어 지속적으로 탈원전 반대 입장을 펴온 조중동도 비판에 가세했다. 중앙일보는 10일자 사설에서 “탈원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막대한 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1일자 사설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에 대해 한수원이 국가에너지 시책에 적극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입장을 두고 “공사 중단이란 극단적 조치를 ‘협력’ 차원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게 민주주의냐”고 비난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짜 사설에서 “정부의 이런 행태가 얼마나 상식에 어긋났으면 국내외 60개 대학 공대교수 417명이 ‘제왕적 조치’라고 공개 비판했겠나”라고 주장했다.

▲ 지난달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 지난달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하지만 이 같은 목소리가 일방적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라고 포장한 원전업계 주변 이해관계자들의 주장만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방침은)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인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환경 안전문제는 세계적인 추세일 뿐 아니라 문 대통령의 중요한 공약 중 하나”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탈핵‧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은 무리하다”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전기료 인상이나 에너지 수급 문제는 검토하고 있으며, 공론화위원회 과정을 통해 충분히 찬반을 통해 모든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도록 할 것”이라며 “이 문제를 신고리원전 중단된다 안된다를 성급하게 예단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반대 목소리에 대해 우린 이런 생각이라는 것을 (논의과정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임없는 비전문가로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됐다는 주장에 대해 박 대변인은 “당연히 전문가도 포함돼 있고, 다양하게 구성해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벌써부터 그렇게 예단해서 하는 것은 너무 빠른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막대한 돈이 낭비될 지 안될 지 그런 주장을 공론화위원회에서 하라는 것이라고 그는 전했다. 박 대변인은 “매몰 비용 2조6000억 원이 들어갈 지 얼마가 들어갈 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원전에서 큰 사고가 났을 때 훨씬 더 많이 소요될 수 있다는 주장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현 정부 입장은 새로운 원전 건설은 안하고, 노후 원전을 폐쇄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고리 5‧6호기의 경우 방향을 정해놓고 여론몰이식으로 밀어붙인다는 주장은 무지의 소치라고 박 대변인은 강조했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1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탈원전 계획이 제왕적 조치라는 주장에 대해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며 “결국 원전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민주적 토론을 통해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부소장은 “전문가들은 결정에 도움을 주는 것일 뿐 지금까지 자신들이 대신해서 민주적 토론과정을 왜곡하고 묵살해온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으려는 것을 어떻게 제왕적이라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교수들의 전문가 결정론에 대해 한 부소장은 “자신들이 해야만 좋은 결정이고, 자신들이 안하면 나쁜 결정이고 속전속결이라는 건가”라며 “민주주의를 거부하겠다는 주장에 다름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한 부소장은 “자신들이 원자력 발전 전문가일지 몰라도 폐기물처리 분야나 자연환경적 측면, 보건의료적 측면, 경제적 사회적 측면까지는 다 알 수도 없다”며 “그러면서 전문가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지난달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지난달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전력수급 불안정, 산업경쟁력 약화 주장에 대해 한 부소장은 “탈원전을 하게 되면 에너지 비용증가 측면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동안 일종의 위험부담을 반영하지 않아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지역주민에게 오염의 비용을 일방적으로 떠넘긴 점과 미래세대에 대한 비용부담을 전가한 사실은 빼놓고, 값싼 전기료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전력복지를 제공해온 원자력 산업 말살이라는 주장에 대해 한 부소장은 “자신들이 언제 전력 복지 얘기를 해왔는지 의문”이라며 “불합리하고 잘못된 것을 비판해야 전문가로 인정할 수 있는데도, 올초 원자력연구원에서 핵폐기물을 몰래 하수구에 버린 일들이 벌어졌을 때 침묵하다 이제와서 밥그릇 문제가 될 것 같으니 복지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전문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부소장은 “더구나 신고리 5‧6호기 중단 여부에 대한 토론을 하자는 것조차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사회의 기본적 소양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희 녹색당 정책기획팀장은 11일 “우리 나라에서 에너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주민의견을 처음으로 듣겠다는 정부의 입장에조차 교수 417명과 조중동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해주면 가는 것이지 너희가 뭘안다는 것이냐’며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게 민주주의냐는 조선의 주장에 대해 이 팀장은 “과거 밀양 어르신들의 지역공동체가 붕괴됐을 때, 월성 1호기 지역주민의 소변에서 발암물질인 삼중수소가 발견됐을 때 계속 무시하고 한 번도 듣지 않다가 이제와서 민주주의 운운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제왕적이라는 교수들의 주장에 대해 “수십년간 자신들이 참여했을 때는 제왕적이 아니었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일시적으로 중단하자고 한 것은 제왕적인 것이냐”고 따졌다.

공정률 28.8%(29%)라는 교수와 이들 신문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한수원이 밝힌 종합공정률은 28.8%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설계가 79%이고, 시공은 10.4% 수준에 불과하다”며 “부품 생산을 해놓은 것은 신고리 1‧2호기 등에서 교체해서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매몰비용으로 잡아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이번 공대 교수 417인의 성명을 주도한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선거운동 기간에도 잘못된 사실이 퍼져 국민이 현혹돼 탈원전 여론이 형성됐다며 아예 탈원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 공과대 중심 전임교수 417명이 참여한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 주한규 교수(서울대 원자핵공학과·사진 가운데) 등이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탈원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공과대 중심 전임교수 417명이 참여한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 주한규 교수(서울대 원자핵공학과·사진 가운데) 등이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탈원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한규 교수는 1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새 정부가 탈원전 하겠다는 것을 정해놓고 그 수순으로 신고리 5,6호기 추진하면서, 비합리적이며 받아들이기 힘든 방법을 제시했다”며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람들이나 탈원전에 찬성하는 적극적인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위원을 구성해 중대사항을 결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무효화하기 위해 성명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우리의 목적은 신고리 5,6호기 중단 결정을 저지하고 더 큰 공론화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주 교수는 새 정부가 탈핵‧탈원전을 결정한 과정 자체에 대해 “사실의 왜곡 전달로 국민이 불안감이 조성돼 대선에서 반핵, 반원전 여론이 비등해져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에 이르게 됐다”며 “그것을 제대로 알렸다면 덜 불안해하고 반핵여론이 덜 형성됐을텐데, 제대로 전달이 안됐다. 우리가 얘기하려 해도 언론이 안실어줬다. 결과적으로 속수무책으로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탈핵 또는 반핵 세력이 사실 아닌 것을 퍼뜨려서 국민들을 현혹시켜 탈원전 여론을 형성해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주 교수는 그 사례로 원전이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이며, 사고가 났다해도 방사능 피해로 인명피해가 직접적으로 발생한 수는 없거나 적은데도 탈핵론자들이 위험을 과장하고 부풀려 불안감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탈핵론자들도 그에 대한 근거와 반론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과장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주 교수는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비롯해 공대 교수들이 집단 성명에 동참한 것이 업종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원자력 공학과와 같은 원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전공 교수는 150여 명 정도로 채 절반이 안된다”며 “더구나 성명을 발표하면 불이익이 많다. 미운털 박히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양심과 충정으로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도 성명에 포함된 다수의 교수들이 원자력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왔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주 교수는 “원자력업계에서 돈만 받아 쓰고 낭비만 하고 국가에 기여를 못했다면 몰라도 국가 산업이 경제발전한 것이 분명히 있다”며 “항공쪽이나 다른 어떤 분야도 그 산업을 진흥시키려는 것이 다 있다.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으로 이익을 취하거나 대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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