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차동수씨(가명·58)는 지난 13일 놀라운 말을 들었다. 자신을 북한군으로 지목한 게시물이 온라인에 떠돈다는 얘기였다.

그는 고3이었던 1980년 5월 시민군 상황실에서 활동했다. 극우논객 지만원씨는 전남도청에서 찍힌 사진을 근거로 차씨를 ‘74광수’라고 주장했다. 북한 특수군 가운데 74번째 인물이라는 거다. 차씨가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대표 소속의 소장 박림수”라는 게 지씨 주장이다.

또 ‘71광수’로 지목된 박남선씨는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으로 같은 사진에 등장한다. 지씨는 ‘71광수’가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황장엽이라는 등 터무니없는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사진에 등장하는 또 다른 ‘광수’들도 평범한 광주시민으로 이미 확인됐다.

▲ 지만원씨 등 극우세력은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됐다고 주장한다. 지씨는 이 사진을 근거로 황장엽(71번)과 오극렬(73번), 리선권(75번) 등이 광주에 왔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71번은 박남선, 73번은 지용, 75번은 홍흥준씨로 확인됐다. 평범한 시민들이다. 미디어오늘 인터뷰에 응한 차씨도 74광수(동그라미 표기)로 지목된 시민군이다.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 지만원씨 등 극우세력은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됐다고 주장한다. 지씨는 이 사진을 근거로 황장엽(71번)과 오극렬(73번), 리선권(75번) 등이 광주에 왔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71번은 박남선, 73번은 지용, 75번은 홍흥준씨로 확인됐다. 평범한 시민들이다. 미디어오늘 인터뷰에 응한 차씨도 74광수(동그라미 표기)로 지목된 시민군이다.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차씨에게 74광수 이야기를 전한 친구도 5·18 시민군이었던 강용주 전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이었다. 고1 때부터 알았던 두 사람은 5·18 때 학생으로 비극의 현장에 있었다. 강 전 센터장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만원이 광수74라는 사람은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내 친구”라고 썼다.

차씨는 1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친구 강용주가 보내줘서 내가 북한군으로 지목된 걸 알았다”고 했다. 차씨가 등장한 사진은 1980년 5월23~24일경 찍힌 것이라고 한다. 사진을 보면 차씨는 ‘누군가’의 팔 한쪽을 잡고 도청으로 향하고 그 뒤를 박남선씨(당시 26세)가 뒤따르고 있다.

차씨는 “당시 상황실은 전남도청 2층에 있었다. 그쪽으로 신고가 들어왔다.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상황실장님을 포함해 4명이 한 초등학교 근방 도로변에서 검문해 그 사람을 끌고 오는 상황이었다. 밖에서 도청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찍힌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21일 도청 앞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가 있었고 이 시기(22~23일 사이) “계엄군 헬기가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을 향해 수십 발의 총을 쏘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로 시민군은 고립돼 외부를 경계하던 상황이었다.

차씨는 통화에서 “나는 ‘광수’라는 뜻이 무엇인지 몰랐다. 인터넷에 ‘북한군 개입설’이 퍼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가 북한군으로 지목된 줄은 전혀 몰랐다”며 “사진을 보니 옛 기억이 떠오르더라. 내가 왜 북한군으로 지목됐는지 억울하고 화도 난다. 그때 ‘왜 우린 그렇게 당해야 하는가’란 생각으로 시민군에 참여했는데 내가 북한군 특수부대라니…”라고 말했다.

차씨는 “1980년 광주를 경험하고 1982년 6월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했다”며 “북한 특수부대원이 군에 입대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금 북한군 개입설을 떠드는 사람들은 광주를 얼마나 아느냐.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떠드는 건데 유명세를 타려고 그러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그 당시 광주에 세상은 침묵했고 언론은 외면했다. 광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드는 모습이 우습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차씨는 “마지막 날(5월26일) 밤 10시쯤 선배들이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여기서 나가라’고 했다. 그때 도청에서 나왔다. 그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후엔 도망 다닌 기억뿐”이라고 말했다.

▲ 극우인사 지만원씨가 지난 2015년 3월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5·18 역사의 진실 대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극우인사 지만원씨가 지난 2015년 3월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5·18 역사의 진실 대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차씨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8일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폄하한 것에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당해야 하는가’ 분노했지 괴물 같은 행동한 적 없다. ‘나’보단 ‘우리’였다. 결코 남에게 피해주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차씨는 5·18 유공자 신청을 못했다. 구속연행, 부상, 사망 등 기록이 있어야 유공자 인정을 받는다.

현재 광주에서 생활하는 차씨는 “법적 조치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검찰이나 법원에 출석하면 생업에 지장을 줄 것 같아 고민”이라며 “마음 같아선 난 절대 북한군 특수부대원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이자 광주시민이라고, 그래서 떳떳하다고 끝까지 싸우고 싶지만 당장 재판에 매달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5·18 왜곡을 보고 “광주시민 모두가 똑같을 것이다. 가해자들은 5·18의 사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또 책임자들이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만 해준다면 모두가 수긍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차씨는 “80년 도청에 있을 때 그 외곽에 사망하신 분들의 시신을 안치했다. 우리는 순찰할 때 일부러 그곳을 거쳤다. 그때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 마음으로 지난 세월을 견뎠다. 5·18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