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지만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지난 5일, JTBC 뉴스룸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김지은 전 수행비서에게, 손석희 JTBC 앵커가 한 말이다.

손 앵커의 말은, 인터뷰 이후 김지은 전 비서에게 닥칠 ‘2차 피해’를 예상하고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지은씨는 인터뷰 이후 악성 댓글과 허위 지라시 유포 등으로 2차 피해를 당했다. 보도가 나간 지 일주일 후인 12일 김씨는 자필 입장문을 통해 “더 이상 악의적인 거짓 이야기가 유포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JTBC 뉴스룸에는 김지은 전 수행비서 외에도 ‘미투’ 운동의 변곡점이 된 서지현 검사, 배우 오달수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한 배우 엄지영씨 등이 나와 직접 인터뷰를 했다. 이들에 대한 JTBC 뉴스룸의 인터뷰 형식은 비슷했다. 피해자가 얼굴과 실명 등 신분을 드러내고 손석희 앵커와 생중계로, 직접 인터뷰 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JTBC 뉴스룸의 연이은 ‘미투’ 보도는 미투 운동을 확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보도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피해자를 전면에 세우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미투’ 고발만이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굳힌다는 것이다. 이는 성폭력 고발 이후 2차 피해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고발을 하려는 피해자들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 5일 JTBC 뉴스룸에서 김지은 비서가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하고 있다.
▲ 5일 JTBC 뉴스룸에서 김지은 비서가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하고 있다.
미투 발화자들 “‘미투’하는 법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A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성추행 당한 경험을 고발한 이후 JTBC에서 제안한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한다. A씨는 “생중계로 내 얼굴이 나오고, 그곳에서 피해사실을 말해야 하는 방식으로 제안해서, 그런 방식으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미투’를 하는 방식이 법이나 가이드라인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신뢰성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치부 기자 B씨는 자신의 지인이 JTBC에게 이런 형식의 인터뷰를 제안 받았다고 전했다. B 기자는 “내 지인의 사례가 JTBC 뉴스룸에 보도됐는데, JTBC 기자의 첫 질문이 실명과 얼굴 공개가 가능하냐는 것이었다”며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보도는 실명과 얼굴을 공개할 처지가 아닌 피해자들을 숨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B 기자는 “(이런 보도방식은) 가해자들이 ‘사실이면 얼굴이랑 실명 까고(드러내고) 나오시든지’ 라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며 “언론은 보통 ‘관계자’를 인용해 많이 보도하면서, 성폭력 기사에서는 피해자의 실명과 얼굴을 모두 공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B 기자는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취재를 꼼꼼하게 하면 신뢰성의 문제는 해결된다”고 꼬집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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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취재원보다 실명 취재원 신뢰성이 높다고 배웠는데…”

그러나 또 다른 정치부 기자는 현실적으로 ‘익명 취재원’보다 ‘실명 취재원’이 신뢰도가 높다고 배워온 기자 교육에 배치되는 상황이 당황스럽다고 했다. 정치부 기자 C씨는 “수습기자 때부터 가능하면 ‘실명 취재원’을 확보하라고 배우기 때문에 성폭력 보도에서도 관행적으로 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을 보면서, 취재원을 보호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현실과 간극이 있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C씨는 “최근 익명 미투에 대한 보도가 신뢰성을 잃는 것을 보면서 익명 미투를 어떻게 꼼꼼하게 보도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든다”고 덧붙였다.

C씨는 프레시안 보도 사례를 들며 익명 미투 보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고 했다. 지난 7일 프레시안은 익명 피해자의 고발을 토대로, 정봉주 전 의원이 피해자를 성추행하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정봉주 전 의원은 성추행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프레시안 보도가 허위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익명 미투’는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JTBC 보도처럼 피해자가 실명과 신분을 모두 드러내고 나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익명 미투’와 프레시안 보도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프레시안의 경우 첫 기사를 쓰면서 정봉주 전 의원의 반론을 충분히 받지 않은 점과 정봉주 전 의원이 이례적으로 피해자와의 만남 자체를 부인하면서 생긴 일이고, ‘익명 미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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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국회에서의 첫 ‘미투’를 시작한 D 비서관의 사례도 이를 반증한다. D 비서관은 성추행 경험을 고백한 원본 글에는 자신의 실명을 밝혔으나, 본글 말미에 “보도를 할 경우, 실명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언론은 이를 ‘익명 미투’로 보도했고, 기사 신뢰성과 관련해 논란이 생기지는 않았다.

D 비서관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실명 미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아닌데도 ‘익명 미투라서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할리우드 ‘미투’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여전히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편견이 더 많고, 사회적 평가에 많이 휘둘리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투를 말하는 여성은 외국에서 미투를 하는 여성들과 다른 환경에 처해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D 비서관은 “피해자들은 고발을 하면서 직업을 잃거나, 가족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다는 점을 무섭게 생각한다”며 “피해자가 자기 자신을 모두 던져서 고발을 해야 진정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D씨처럼 익명으로 보도를 원한 이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 경험을 발화한 E씨는 “실명으로 인터뷰를 할지, 익명으로 할 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며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피해자라고 해서 내가 언제까지 숨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폭력 경험을 이야기하는 피해자의 의지다.

피해자들이 고발로 인해 2차 피해를 당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언론이 계속해서 ‘실명 미투’를 강요하는 것은 피해자를 방치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JTBC의 ‘미투’ 보도가 큰 영향력을 끼치면서, 다른 언론사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미투’를 보도하고 ‘미투’보도 경쟁이 붙은 것 같은 모습도 문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 방식이 파장이 컸고, 영향을 미친 것은 맞지만 이후 후속보도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서 “JTBC가 그런 방식의 인터뷰를 고수하다보니 다른 언론들도 피해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나영 교수는 “언론이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불필요한 접촉을 하고, 신상을 터는 일까지 생겼다”며 “언론이 피해자들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2차 피해를 최소화할 보도방식을 선택하고, ‘미투’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심도 있게 취재해서 기사화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드물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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