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하 철도노조 KTX승무지부장은 “항상 정의는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버텼다”고 했다. 21일 체결된 한국철도공사 노사합의서를 두고 한 말이다. 한국철도공사 노사는 2006년 집단 해고된 KTX 승무원 중 180명에 대해 복직을 합의했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3년 투쟁 끝에 직접 고용을 앞두게 됐다.

이들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KTX 승무업무를 도맡았지만 철도공사가 아닌 용역업체 소속이었다. 철도청(철도공사 전신)은 KTX 개통 전인 2003년 여승무원 업무만 자의적으로 떼어 내 ‘홍익회’라는 관계회사에 도급했고 홍익회는 이를 다시 다른 용역회사에 도급했다. 승무원들은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006년 철도노조와 파업을 함께 했고 곧 대량 해고 사태를 맞았다.

▲ 2006년 2월 KTX 여승무원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일하고 싶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중의소리
▲ 2006년 2월 KTX 여승무원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일하고 싶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중의소리
▲ KTX 여승무원 집회. ⓒ민중의소리
▲ KTX 여승무원 집회. ⓒ민중의소리

‘정규직화’ 요구에 대량해고… 쇠사슬 몸에 매고 국회 진입도

파업 발단은 ‘소속 이적 통보’였다. 2006년 철도청 자회사 철도유통 소속이었던 승무원들은 ‘KTX관광레저’로 이적을 동의해줄 것을 강요받았다. 이미 이들은 두 차례 각각 다른 회사와 계약직 고용 계약을 해온 터였다. 이들은 개통 당시 홍익회와 9개월 짜리 근로계약을 맺었다. 2004년 말 홍익회가 철도유통에 업무를 위탁할 때, 이들은 철도유통에 1년 계약직으로 재고용됐다.

승무원들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는 2006년 3월 파업을 시작한 후로 13년 간 유지됐다. 첫 2년 간은 단식농성·천막농성·쇠사슬농성·고공농성, 삭발투쟁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파업 장기화에도 철도청은 끄떡 하지 않고 오히려 신규채용으로 대응했다. 이들은 2006년 4월 철도공사, 국회 헌정기념관, 국가인권위원회, 한명숙 의원실(당시 총리지명자), 그리고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던 오세훈·강금실 선거사무실까지 찾아가 농성했다. 철도청은 5월 업무 복귀하지 않은 292명을 해고했다.

▲ 지난 2006년 9월28일 KTX 민세원 지부장의 삭발단식농성 3일째 결의대회를 마치고 쇠사슬로 몸을 묶고 행진하는 KTX여승무원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사진=이치열기자
▲ 2006년 9월28일 KTX 민세원 지부장의 삭발단식농성 3일째 결의대회를 마치고 쇠사슬로 몸을 묶고 행진하는 KTX여승무원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사진=이치열기자
▲ 서울역 서부역에 위치한 타워에 올라 고공농성중인 승무원들ⓒ민중의소리
▲ 서울역 서부역에 위치한 타워에 올라 고공농성중인 승무원들ⓒ민중의소리

거리 투쟁이 지속됐다. 2006년 9월엔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선 ‘쇠사슬 행진’이 있었다. 민세원 당시 KTX승무지부장 삭발단식농성이 3일 째 되던 때였다. 정복을 입은 해고승무원들은 서로의 몸에 쇠사슬·밧줄을 감고 ‘X’가 그려진 마스크를 쓴 채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2008년 8월 서울역 철탑 고공농성을 기점으로 승무원들은 거리에서 법정 투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복직 투쟁한 지 900일을 넘기고 있었다. 오미선 당시 KTX 승무지부장과 조합원 정미정씨는 같은 이유로 600일 넘게 투쟁했던 새마을호 승무원, 철도노조 임원 등 3명과 함께 서울역사 내 40m 높이 조명철탑에 올랐다.

초등학생도 이해 못 할 대법관들 판결

대법원이 ‘KTX 승무원 불법파견 사건’에 내린 판결은 법조계 일각에서 최악의 판결로 꼽힌다. 대법원 1부(고영환 대법관)는 2015년 2월26일 해고승무원 152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은 “코레일(철도공사) 소속 열차팀장과 승무원 간 업무 영역은 구분돼 있고, (파견 불가능한)안전 업무는 여승무원이 아닌 열차팀장이 담당했으며, 위탁협약을 맺은 철도유통 등은 코레일과 독립적”이라고 밝혔다.

▲ 김승하 철도노조 KTX승무지부장이 복직합의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울먹이고 있다. 사진=손가영기자
▲ 김승하 철도노조 KTX승무지부장이 복직합의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울먹이고 있다. 사진=손가영기자

‘초등학교 6학년이 들어도 의심스러운 판결이다.’ 한 해고승무원이 언론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들은 철도공사 직원의 ‘안전업무’와 승무원의 ‘승무서비스업무’가 분리될 수 없고 실제로도 분리되지 않았다며 철도공사를 대상으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다. 철도유통은 업무 자체의 독립성이 없어 실상 노무대행업체에 불과하므로 불법파견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승무업무는 파견법이 허용하는 파견대상 업무가 아니다.

법정 싸움은 7년을 끌어 2015년 11월 마무리됐다. 파기환송심은 11월28일 대법 판결을 확정했다. 해고승무원들이 복직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법 절차가 완전히 사라졌다.

대법원 판결 직후 한 해고승무원 박아무개씨(35·사망나이)는 세 살 난 아이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법원의 원고 패소 판결로 해고자 1인 당 8640만원을 반납해야 했다. 이들은 1·2심이 불법파견을 인정해 코레일 측으로부터 임금, 소송비용 등을 받았다. 박씨는 판결 3주 후,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대상으로 거론된다. 사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조사보고서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담겨있다. KTX 해고승무원 판결은 그 중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로 포함됐다.

▲ 7월21일 KTX 해고승무원 복직합의 보고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국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7월21일 KTX 해고승무원 복직합의 보고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국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해고승무원 180명은 2019년 상반기까지 3회에 걸쳐 ‘사무영업 분야 6급’인 역무원으로 채용될 예정이다. 승무원 원직 복직이 아닌 이유는 코레일 측이 승무업무에 대한 정규직화 판단을 내리지 않아서다.

코레일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부 방침에 따라 코레일 내 4천 명 이상의 용역·파견 노동자 정규직화를 논의 중이다. 지금까지 생명·안전 업무에 종사하는 1400명 가량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됐다. 승무업무는 이를 논의하는 ‘노사전문가협의회’ 중 전문가 측이 안전업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포함되지 않았다. 

강철 철도노조 위원장은 “해고자들이 승무업무로 돌아오지 못했고 현재도 600명의 비정규직이 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며 “복직에 그치지 않고 열차안전, 승객안전 일선에서 일하는 승무원 전체업무를 직접고용하는 날까지 힘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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