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국정원의 수준 이하 여론공작

‘블랙리스트’ 연예인 알몸 합성 사진 유포에 서거한 전직 대통령 폄훼 게시물까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벌인 저속한 여론공작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다.

15일 한겨레는 국정원의 조직적인 상징조작 활동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그동안 극우 성향 누리꾼들의 개별적 행위로 치부됐던 진보 인사 등에 대한 비하 이미지 제작을 비롯한 유포 활동 전반에 국정원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에 보도에 따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이던 2011년 9월 국정원 심리전단은 민간인 ‘사이버외곽팀’을 통해 ‘그들만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수 성향 인터넷카페에 유포했다.

[한겨레] MB국정원, 김대중·노무현·5·18도 여론조작_사회 09면_20170916.jpg
게시물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망할 민(泯), 빌 주(呪), 재앙 화(禍), 죽을 운(殞), 얼 동(凍)’이라고 적은 뒤, “즐라(전라)인민공화국 슨상교도들이 일으킨 무장폭동을 김미화해서 부르는 용어”라고 비꼬았다. 이어 “홍어들이 대한민국 망하길 빌다가 재앙을 맞아 얼어 죽을 몹쓸 짓거리”라는 ‘뜻풀이’를 덧붙였다.

글에서 ‘슨상’(선생)은 김대중 전 대통령, ‘홍어’는 호남시민, ‘김미화’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정부 비판적 성향의 코미디언 김미화씨를 비하하기 위해 동원된 말들이다. ‘무장폭동’은 5·18 민주화운동을 뜻한다.

“추함의 끝 어딘지 눈뜨고 보기 힘들다”

또 사이버외곽팀 게시물에는 “정오에는 뇌물짱을 외치며 부엉이 바위와 무등산에서 번지점프를 하며…”라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폄훼하는 내용도 있었다.

한겨레는 “당시 심리전단은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을 배경으로 ‘김대중을 중국어로 읽으면 jin da zhong(찐따종), 13억 짱깨들도 인정하는 글로벌 찐따라는 뜻’이라는 문구를 합성한 사진 유포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합성사진을 통해 유포된 김 전 대통령 비하 문구는 최근까지 극우 성향 인터넷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을 통해 퍼져왔다”도 밝혔다.

[국민일보] 유치하고 조잡한 우경화 여론몰이_종합 01면_20170916.jpg
국민일보는 국정원 외곽팀 댓글 부대원이 2009∼2010년 또 다른 극우 성향 인터넷 카페에서는 당시 야당과 야권 인사, 진보 성향의 언론과 문화예술인을 향해 ‘삼청교육대가 부활해야 한다’, ‘쿠데타가 일어나야 한다’ 등 과격한 표현을 거침없이 썼다고 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 사진을 올리면서는 ‘지금 시점에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지도자’라고 적었다.

심리전단이 제작·유포한 나체 합성사진으로 피해를 입은 배우 문성근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합성사진으로 피해를 당한 배우 김여진씨는 트위터에 “그냥 어떤 천박한 이들이 킬킬대며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 기관의 작품이라고요”라고 반문하며 “그 추함의 끝이 어딘지 똑바로 눈뜨고 보고 있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양아치’ 수준의 국정원, MB 청와대 개입 밝혀야”

과거 국정원이 벌인 이 같은 수준의 여론공작 활동에 대해 신문들은 강도 높게 비난하며 수사당국이 조금의 의혹도 없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엄연한 국가기관이 ‘일베’ 수준의 저속하고 유치한 공작을 자행했다니, 놀란 입을 다물기 어렵다”며 “MB정부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이면 좌파로 분류해 불이익을 주고 악의적 보복을 가하는 것은 국정원 본연의 업무와 하등 무관한 범죄행위일 뿐”이라고 질타했다.

한국일보는 “MB 시절 국정원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실행했다는 사실은 비판적 문화예술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식의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보다 더욱 공격적이고 집요하다”며 “민간인 댓글부대로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와 정치에 개입한 것도 모자라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한 것을 보면 당시 국정원 범죄행위의 끝이 어디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MB정부 시절 청와대가 블랙리스트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다는 정황까지 있는 만큼 청와대 어느 선까지 개입했는지도 밝혀,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과 같은 반헌법적 행위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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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도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치졸한 행위를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이 ‘특수 공작’ 운운하며 자행했다니 충격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고 개탄했다.

서울신문은 “일반 시민이 했어도 백번 욕먹고, 처벌받아야 할 비열한 짓이다. 하물며 나랏돈 받는 국정원 직원들이 시안을 만들어 상부에 보고하고 공식적으로 실행했다니 어이가 없다”면서 “진상을 낱낱이 파헤쳐 최종적인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게 마땅하다”고 주문했다.

한겨레는 “저질 합성사진까지 만든 ‘양아치’ 수준의 국정원”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런 행태는 청와대 묵인을 넘어 지시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기획관리비서관 명의로 작성된 ‘좌편향 연예인들의 활동실태 파악’ 등의 문건이 나온 게 그걸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국정원 개혁발전위는 14일 원세훈 전 원장 등을 검찰에 수사의뢰하라고 권고했다”면서 “당시 국정원 지휘부는 물론 청와대가 저열한 국내 공작에 어떻게 관련되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언론인·시청자 권리 박탈한 김장겸 ‘부당노동행위’

“직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수단이다. 기자·PD들이 전보발령에 따라 취재나 제작 업무에 종사할 수 없게 돼 언론인으로서의 자아를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면, 이는 당연히 의미있는 불이익 요소로 고려돼야 한다.”

한학수 MBC PD 등의 전보발령 무효확인 소송 항소심 판결문에는 나오는 재판부의 일침이다. 박태우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는 MBC 사측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수사는 “월급쟁이의 일을 통한 ‘자아실현’의 권리를 누가, 무슨 목적으로 침해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일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한겨레] MBC 파업 12일째, 김장겸 사장은 어찌 될까요__종합 02면_20170916.jpg
박 기자는 “언론노동자의 자아실현 권리를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말인데, 이 권리를 누가 왜 빼앗는지를 가려내는 것이 수사의 핵심 중 하나”라며 “언론노동자에게 최고의 자아실현은 공정보도이나 2012년 파업 이후 수많은 MBC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침해당했고 방송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직업인으로서의 자아실현을 이루지 못한 결과 공영방송의 공정성은 날로 추락했다는 지적이다.

박 기자는 공영방송 노조의 ‘노조 할 권리’를 지키는 것은 시청자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 MBC·KBS본부는 노사 단체협약에 ‘공정방송’에 관한 조항을 포함해왔다. ‘공정방송’ 조항은 대법원도 ‘파업의 사유가 되는 기본적인 노동조건’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박 기자는 “MBC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여부를 판가름해 처벌하는 것은, 곧 공영방송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방송 공정성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받는 일”이라며 “이는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돌아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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