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동 KBS 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일 임명됐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자유한국당은 여러 의혹을 제기하며 사퇴를 촉구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송부 요청 기한(4월5일)을 넘기자 KBS 사장 임명안을 재가했다.

임명 막판까지 양 사장을 괴롭힌 의혹은 세월호 참사 당일 법인카드 노래방 결제 의혹이었다. 양 사장은 당일 행적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개인 사비로 지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선일보는 2일 사설에서 “방송사 사장이 왜 세월호 리본을 달고 나와 정치 쇼를 하는가”라며 비판했다. 이 신문은 임명 직후인 7일 사설에서도 “이 정권은 세월호와 관련해선 털끝 만큼의 잘못만 발견돼도 ‘폭격’을 가할 정도였는데 자기 편의 문제에 대해선 못 본 척하고 임명을 밀어붙인다”고 비판했다.

▲ 양승동 KBS 사장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양승동 KBS 사장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위기에 몰린 양 사장에게 손을 내민 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었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5일 한국당을 겨냥해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이유로 계속 양승동 후보 임명을 반대하며 선동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피해자를 우롱하는 만행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세월호 유족들은 KBS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유족들은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와 비교했다는 보도에 분노해 서울 여의도 KBS를 항의 방문했고 이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이에 유족들이 청와대를 직접 찾자 당시 길환영 KBS 사장은 청와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유족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김시곤 국장은 길 사장과 박근혜 청와대가 노골적으로 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했고 자신의 국장직 사퇴 역시 청와대 압력에 따른 것이라고 폭로했다. KBS의 독립성과 신뢰성이 심각하게 무너졌다고 판단한 KBS 구성원들과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고 이는 박근혜의 길 사장 해임으로 이어졌다. 길 전 사장은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천안갑 국회의원 보궐 선거 준비 중이다.

그 당시 KBS가 정권의 홍보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도, 길 전 사장이 해임된 뒤에도 KBS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에 침묵하는 등 권력 감시 기능이 후퇴했다는 것도, 이에 저항한 KBS 구성원들이 140일 넘게 파업했다는 것도 모두 사실이지만 이를 구분해 KBS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아직 많지 않아 보인다. 지난 10년 동안 KBS에 대한 국민 신뢰는 추락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 길환영 전 KBS 사장이 2014년 5월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세월호 발언 논란과 관련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사과한 뒤 굳은 표정으로 현장을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 길환영 전 KBS 사장이 2014년 5월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세월호 발언 논란과 관련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사과한 뒤 굳은 표정으로 현장을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에 비춰보면 KBS로부터 가장 큰 상처를 입었을 세월호 유족들은 KBS에 다시 기회를 준 셈이다. 세월호 유족들은 “KBS는 하루빨리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와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하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열망하는 피해자와 국민들의 바람을 있는 그대로 보도함으로써 304명의 희생이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 사장은 후보 시절 공정성과 균형성을 잃은 KBS 보도로 ‘세월호 보도’를 꼽았다. 양 사장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 4월16일 이후 KBS 뉴스는 사고 원인을 찾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진실을 찾는 보도를 하기보다는 정부의 무능력과 잘못을 감싸고 일방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으며 확성기 노릇에 전념했다”며 “특히 당시 길환영 사장은 정권의 외압에 굴복해 보도에 수시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사임하는 일까지 빚어졌다”고 밝혔다.

또 “(세월호 보도 참사를 포함해) 공영방송으로서 불합리했던 사안들은 ‘KBS정상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면밀히 조사하고, 책임질 사안이 있다면 법과 사규에 따라 엄정 조치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지난 정권에서 무너진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신뢰를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양 사장과 KBS 구성원들이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에게 사죄하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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