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인 것으로 점차 굳어지면서 다스의 소송비용을 대납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사법처리 문제가 또 다른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2009년, 또는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각각 약 40억 원과 10억 원 정도를 다스 소송을 대리하던 미국의 에이킨 검프에 지급하였다. 이것이 잠재적으로 두 재벌에 어떤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를 삼성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삼성이 제공한 돈은 뇌물이다. 이 때 만일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다스가 사실상 하나의 경제적 공동체라면 이 돈은 대통령에게 제공한 뇌물이므로 부정한 청탁이나 대가성을 따로 입증하지 않아도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한다. 만일 이 전 대통령과 다스가 별도의 주체라면 이때는 제3자 뇌물죄의 적용 여부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부정한 청탁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삼성은 이 당시에 대통령의 힘을 빌어야 할 중요한 현안이 있었는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니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돈이 오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2008년 이후 삼성이 직면한 중요 현안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이건희 비자금 사건과 관련한 사후처리 문제가 걸려 있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의 존재를 폭로한 것이 2007년 하반기였다. 그리고 2008년에 조준웅 삼성특검이 출범하여 4월에 4조5천억 원에 달하는 차명재산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물론 조준웅 특검은 이를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의 상속재산이라고 치부하여 비자금의 가능성을 일축하였지만, 그 경우에도 삼성SDS 전환사채 헐값 발행과 조세 포탈 등과 관련한 이건희 회장의 사법처리 문제는 계속 남아 있었다. 결국 이 회장은 2009년 8월 14일 최종적으로 서울 고법의 파기 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4개월만인 같은 해 12월에 단독 특별사면을 통해 완전히 자유인이 되었다.

▲ 2008년 4월11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2차 특검 소환조사를 받고 나와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 2008년 4월11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2차 특검 소환조사를 받고 나와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둘째, 이재용 당시 삼성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를 부드럽게 마무리하기 위해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했다. 종자돈을 만들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 등을 헐값으로 발행한 부분은 단독 특별사면으로 해결했으나 다른 문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선 삼성생명 상장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아무리 유배당 계약자에게 한 푼도 줄 필요없다는 “전문가 자문”을 받아 두었지만, 실제로 유배당 계약자들과 시민단체의 반대를 저지하고 상장을 결행하는 데에는 국가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삼성은 결국 2010년 5월에 삼성생명 상장에 성공했다.

공정거래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의 금산분리 규정도 완화해야 했다. 이 부분은 절반 성공하고 절반은 미완으로 남았다. 금융지주회사법상의 금산분리 조항을 일부 완화하여 비은행 금융지주회사가 산업자본 자회사를 둘 수 있도록 한 것은 삼성 입장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것이지만, 보험지주회사가 삼성생명이라는 보험회사를 통해 삼성전자라는 산업자본 회사를 거느리도록 하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상의 금산분리 규제 완화도 요원한 상황이었다.

이런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2009년 시점에서 삼성은 분명히 이 대통령과 “할 수만 있다면 거래 하고 싶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돈이 오고 갔다. 그렇다면 이 돈은 이런 현안의 처리를 위해 제공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충분히 가능하다.

▲ 1월17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1월17일 오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과 관련된 검찰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만일 삼성이 대납한 다스 소송비용이 뇌물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이 전 대통령이 뇌물죄 또는 제3자 뇌물죄로 기소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삼성의 사법처리가 어찌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삼성은 이 돈을 삼성전자 또는 그 산하 미국의 현지법인을 통해 제공했을 것이므로 이 돈은 업무상 횡령에 해당한다. 액수가 5억 원을 넘으니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제3조가 적용되어 최저 3년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고, 그 공소시효는 10년이어서 지금도 충분히 기소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세법은 회사의 경영자가 회사 자금을 횡령한 경우 이를 마치 당사자가 회사로부터 소득을 수령한 것으로 간주하여 소득세를 부과한다. 따라서 이건희 회장은 아마도 40억 원의 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돈이야 내면 된다지만, 조세범처벌법상 유죄가 확정되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32조에 따라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의 대주주 자격을 박탈당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다스 소송비용 대납의 함의는 간단치 않다. 이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대 재벌 두 곳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이 되고, 두 재벌은 재벌 총수의 개인적 이익(그것이 사면이건, 승계 작업이건 간에)을 위해 회사 자금을 불법적으로 빼돌려 뇌물을 공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 간에 오고갔던 뇌물 사건과 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또 다른 사례를 목도하게 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사례가 정경유착이듯이, 이 전 대통령의 사례도 한 치도 틀림이 없는 정경유착인 것이다.

27일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결심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탄핵에 의해 파면된 대통령으로서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다스 소송비용의 대납으로 살펴 본 이 전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대통령이 자신이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금전적 비용을 재벌에게 떠넘겼다는 점에서 그 죄질은 더욱 초라하기까지 하다.

▲ 2월2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 격이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씨에게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결심공판에서 징역 30년과 벌금 1천185억 원을 구형했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기간 연장을 결정한 재판부에 반발해 지난해 10월16일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발언한 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는 모습. ⓒ 연합뉴스
▲ 2월2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 격이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씨에게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결심공판에서 징역 30년과 벌금 1천185억 원을 구형했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기간 연장을 결정한 재판부에 반발해 지난해 10월16일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발언한 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는 모습. ⓒ 연합뉴스
그러나 우리가 대통령에 대한 단죄에 사로잡혀 자칫 잊기 쉬운 점은 재벌에 대한 단죄 부분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대통령의 요구가 뇌물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재벌의 응답이 있어야 하고, 그 저변에는 재벌의 부정한 청탁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안 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된다”는 전통을 그 사회가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결탁하여 불법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번 다스 소송비용 대납 사건은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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