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 대열에 동참했다. 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와 아들이 박연차씨로부터 수백만불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을 하고, 그날 밤 혼자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 책임이란 말인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래서 그 한을 풀겠다고 지금 이 난장을 벌이는 것인가”라며 “적폐청산 내걸고 정치보복의 헌칼 휘두르는 망나니 굿판을 즉각 중단하라”고 썼다.
정 의원은 자신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막말이 논란이 되고 법적대응에 직면하게 되자 부랴부랴 해명을 내놓았다. 그 해명의 논리가 궁색하고 설득력이 없다. 사회적 비난이 커지자 그는 “박원순 시장에 대한 반박이지 노 전 대통령과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려던 건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해명이 나온 과정은 이렇다. 정 의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국정원 제압문건이 드러난 것과 관련,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대의 정치보복은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한 것’이라고 밝힌 것을 문제삼았다. 그는 “이 말은 또 무슨 궤변인가”라며 “노무현을 이명박이 죽였단 말인가. 노무현의 자살이 이명박 때문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여기서 그는 엉뚱하게 ‘부부싸움’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해명은 번지수가 틀렸다. 정 의원은 박 시장의 ‘정치보복’에 대한 반론의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부부싸움’이라는 허위사실을 제시했다. 반론도 되지 못했을 뿐더러 이는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유가족들에 대한 명예훼손이기도 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정 의원을 편들고 나섰다. 왜 이런 무모하고도 사회분열적인 현상이 반복될까. 적어도 세 가지 심각한 근본 원인이 있다.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기반은 대구 경상도 지역이다. 이 지역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까닭없는 증오가 여전하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주장하는 말이 통용되는 곳이다. 칼끝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까지 향하자 적폐청산에 대한 의제 분산용으로 여론압박을 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정 의원 스스로 이명박 정부 시절 정무장관을 지냈기 때문에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어 사실과 다른 주장을 검증도 없이 내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노 전 대통령’이라면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흥분부터 하는 조중동도 있다.
둘째, 조중동의 허위보도로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정 의원 이전에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이미 심각한 명예훼손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2010년 3월 일선 기동대장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고 허위주장했다. 현직 경찰청장의 이런 주장은 삽시간에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에서 크게 다뤘다. 문제는 조 전 청장이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뒤에도 조중동의 보도는 계속 이어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동아일보다. 동아는 2012년 5월4일자 보도에서 “조현오 전경찰청장 ‘어느 은행 누구 명의인지’ 다 까겠다”는 식의 선정적인 제목을 달았다. 동아일보는 또 같은 날짜 다른 지면을 할애해서 “조현오 까겠다 발언 사실로 드러나면”이라는 가정법을 이용해 “조현오 파일 실제 존재한다면 대선판 전체 흔들 ‘뇌관’”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동아는 그 다음날인 2012년 5월5일 “노무현 차명계좌 다 밝히겠다” 발언 파문을 이어갔다. 피의자의 일방적 주장과 동아의 희망은 조현오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허망하게 끝났다. 조현오는 8개월 징역이라도 받았지만 허위보도를 일삼은 동아는 아무 탈없이 더 과감하게 전임 대통령의 인격권을 말살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마지막으로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개인의 인격권 보호에 관한 한 인색하기 짝이 없다. 언론의 과다한 혹은 허위보도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그 사회에 매장되다시피 했지만 판결을 보면 하나같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다. 미디어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법관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의 좁은 틀에 갖혀 사는 것 같다.
과거의 미디어는 잘못 보도한 매체에 대해 정정을 하는 식으로 정리됐지만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랐든 언론이 뉴스로 다뤘든 그 전파력은 이미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다. 한 언론사에 정정을 요구했더라도 이미 다른 매체, 해외로까지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 지울 수도 없어 ‘잊혀질 권리’마저 사라졌다.
전파의 속도와 범위,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여 더욱 신중한 보도가 요구되지만 판결을 보면 전임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도 겨우 실형 8개월, 여론 때문에 차마 집행유예는 해주지 못했을 정도다. 민사로 가서 승소하더라도 500~2000만 원 정도에서 덮어버린다. 판사나 검사가 허위보도로 피해를 한번 당해보면 판결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미디어 환경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3차산업혁명을 넘어 4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판결은 2차산업시대에 머무르고 있다. 판사들이 게으른 것인지 사법부가 언론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법부 개혁은 또 다른 차원에서 숙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후진적 사회 구조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조현오, 정진석 같은 혹세무민형 무책임한 인간들의 행렬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오염’ 당사자와 그를 부추기는 무책임한 언론 조직, 법 기관에 대해 동반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