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없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막연히 한반도의 비핵화만을 이야기했다.”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후 발표한 ‘판문점 선언’에 대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비판이다.

나 의원은 이날 오후 이 같은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가 “나 의원이야말로 국민을 어처구니없게 한다”는 누리꾼들의 비난이 쇄도하자 글을 수정하고 “남북정상회담의 진행 모습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었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그러면서도 나 의원은 “그러나 그 내용은 전혀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 없이 대북투자와 남북경협을 포함한 10·4선언을 이행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라며 “이제까지의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 준비과정은 한·미 간의 밀접한 공조 하에 이루어지는 것 같아 조금은 희망을 가져봤는데 오늘의 판문점 선언 그 자체는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밝혔다.

▲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7일 ‘판문점 선언’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수정하기 전에 쓴 글.
▲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7일 ‘판문점 선언’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수정하기 전에 쓴 글.
나 의원은 수정하기 전 글에서도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과거의 핵과 현재의 핵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며 “미북정상회담에서 얼마나 진전된 합의를 내놓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은 북한에게 모두 내주고 퍼주면서 북한으로부터는 실질적으로 얻은 것이 없는 선언”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러나 남북 두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서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며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무엇보다도 온 겨레가 전쟁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새 시대를 열어나갈 확고한 의지를 같이하고 이를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합의했다”면서 “나와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회담에서 합의된 의제들과 그 구체적 조치들을 반영한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채택하고 서명했다”고 말해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협력을 끌어냈다는 전 세계의 평가를 받았다.

나 의원 또한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26일 페이스북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비핵화’다. 특히 남과 북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수준과 의미를 일치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문재인 정부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단순한 정치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을 결과로써 보여주길 바란다. 또한 어느 때보다 신중히 준비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뤄내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나 의원의 당부대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합의를 이뤄냈음에도 27일에는 “‘핵 없는 한반도’가 북한의 핵 폐기와 달리 미국의 핵우산 제거, 미군 철수 등의 이슈와 맞물릴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실망스럽다”고 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과 홍준표 대표 등이 지난 2월25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을 막기 위해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위에서 농성을 벌였다. 사진=나경원 의원 페이스북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과 홍준표 대표 등은 지난 2월25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을 막기 위해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위에서 농성을 벌였다. 사진=나경원 의원 페이스북
판문점 선언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한 나 의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김효은 부대변인은 “나 의원의 ‘어처구니없는’ 노이즈 마케팅이 또 시작됐으나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까지 지낸 4선 중진의원의 인식과 품격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부대변인은 28일 논평에서 “나 의원에게는 장문의 ‘한반도의 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막연히 한반도의 비핵화만을 얘기한 것으로 읽히느냐”며 “평소 생략된 ‘주어’를 읽어내지 못하는 독해력에 의문은 있었지만, 국어 실력이 이 정도라니 보는 국민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꼬집었다.

27일 나 의원의 판문점 선언 비판과 “김정은과 문 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 쇼”라는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폄하 발언이 이어지자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치료받지 않으면 범죄자가 되기 십상”이라고 우려했다.

표 의원은 “평화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늘 갈등과 분열과 다툼을 만들어 내고 수시로 화를 내고 험한 말을 한다”며 “독선적이고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한다. 정신의학에서 인격장애로 분류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나 의원은 28일 “너무 안달하고 걱정한다고 멸시받는 편이, 안전을 과신하여 파멸하는 것보다 낫다”는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인용하며 “나의 우려가 과한 것이길 나 또한 바라지만, 적어도 지금은 너무 안달하고 걱정해도 될 때 아니냐”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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