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 하청 노동자가 부당하게 해고된 사실을 폭로한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내부 비판을 받고 있다. 노보로 부당해고 사태를 알리자 조합원 일부가 “노보는 개인 블로그가 아니”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조선일보 노조의 노보가 사내갈등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앞서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박준동)는 지난 2일 노보에서 조판팀 업무를 담당하던 여성 직원 A씨 사연을 공개했다. 조판팀은 신문지면을 컴퓨터로 제작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결혼을 앞두고 해직자 신세가 된 A씨는 2004년 입사해 해외에 다녀온 1년을 빼면 조선일보 본사에서 약 13년을 일한 노동자로 최근까지 인력파견업체 소속이었다.

노조는 A씨가 하루아침에 잘린 까닭을 조선일보 편집 담당 간부들이 소집한 회의에서 ‘쉬는 날을 줄이라’는 요구에 ‘곤란하다’고 반기를 들었다는 데서 찾았다. 노조는 “본사 간부들이 휴게시간과 휴일 축소 명령 등 업무나 인사를 지휘감독한 것은 불법 위장도급의 근거가 된다. 한 사람 인생이 걸린 해고를 본사 간부들이 압박했다는 것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갑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선일보 편집 담당 간부들은 노조에 “권고사직을 시킬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다”며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두식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지난 4일 미디어오늘 통화에서 해고 사태에 관련해 “나중에 보고는 받았지만 노조 주장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멘트할 내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관계자는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어서 조판자들이 소속된 업체에서 인사 조치를 취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 서울 중구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 서울 중구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해고 사태가 노보를 통해 공개된 후 편집부 소속 일부 조합원들은 사내에 “노보는 개인 블로그가 아니”라는 내용의 메일을 뿌렸다. 노보와 노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번 일은 편집부의 근무 요청을 조판팀이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노조위원장은 (조판팀 직원) 두 사람이 그만두게 된 과정과 원인에 대해 노보에서 거론한 편집 간부들이나 심지어 편집부 대의원에게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노보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랫동안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그만두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노보에서 주장한 것처럼 단순히 괘씸죄로 찍혀서 그리 된 것은 아니다. 노조는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한쪽의 주장들만 사실인양 게재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노조는 파장이 클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되는 사안을 다루면서도 현 노조가 그동안 강조해온 노조 대의원들이나 공보위와 함께 고민하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검증하는 과정을 전혀 갖지 않았다. 노조 사무국장조차 노보 제작 당일 오후에야 내용을 알고서는 말렸는데도 조선노조 최초로 경선을 통해 선출된 위원장이 강행했다는 얘기는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이들 조합원은 조선일보 노조가 경찰의 TV조선 압수수색 시도에 침묵했다고도 비판했다. 지난달 경찰은 TV조선 기자가 민간인 여론조작 사건 주범으로 꼽히는 필명 ‘드루킹’ 김모씨의 활동 공간이었던 느릅나무출판사 사무실에 들어가 태블릿PC 등을 절취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서울 중구 TV조선 사옥을 압수수색하려 했다. 

조선일보 노조 조합원들은 메일에서 “경찰이 황당한 이유로 TV조선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왔을 때, 우리 노조는 어디에 있었느냐”며 “TV조선 스크럼에서 우리 노조는 보이지 않았다. IPI(국제 신문 편집자 협회)와 그동안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기자협회도 성명을 내면서 언론 탄압에 항의했는데 정작 우리 노조는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조선일보 노조는 지난 11일 노보에서 “사측의 이런 행태에 발맞춰 일부 편집부 조합원이 노보 기사가 사실이 아닌 것처럼 호도하는 메일을 사원들에게 돌렸다”며 “부서 위상이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해고된 동료 입장에서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노조는 “취재 과정에서 해고된 노동자뿐만 아니라 관련 인물들로부터 사실 확인을 거쳤다”며 “노보를 내기 전엔 사측의 인사팀 관계자에게도 확인시키고 요청에 따라 오해를 부를 만한 부분은 일부 수정했다. 노조 사무실에 들이닥쳐 노보 발행을 막아서는 편집 담당 간부들의 반론도 추가했다”고 반박했다.

노조는 일부 조합원들이 해고 사태를 “편집부의 근무 요청을 조판팀이 거부하면서 시작됐다”고 규정한 데 대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전형적인 가해자의 논리”라고 비판하면서 “팩트는 ‘강하게 반발했으나 거부할 힘이 없었다’이다. 간부들의 요구대로 야근 뒤 휴무는 줄었다. 노동자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말이 많아’선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TV조선 압수수색에 침묵했다는 비판에 “당시 신중히 고민했으나 나서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며 “노보에서 판단 근거를 언급하는 것은 아문 상처를 헤집는 셈이라 생략하겠다. 따로 문의하는 조합원에게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노조는 사측을 겨냥해 “진상규명을 하고 수습책을 내놓기는커녕 갑질 가해자들의 편에 서서 피해자에게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며 인격을 모독하고 2차 피해를 유발했다”고 비판한 뒤 “몇몇 간부들의 부적절한 행위로 끝날 수 있었던 문제가 회사 차원의 갑질로 비화됐다. 직접 고용하면 파견업체에 지급할 수수료로 임금을 올려줄 수도 있는데 도급 체제도 유지할 방침인 듯하다”고 우려했다.

노조는 “사태가 ‘진실 게임’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면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언론사의 도덕성까지 걸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형국이다. 그동안 언론에서 치부를 드러냈을 때 기민하지 못한 조직들이 사실을 부인하며 일을 키우던 그 방식을 그대로 밟아가는 것 같아 개탄스러울 뿐이다. 만일 회유와 압박으로 위증 교사와 증거 인멸을 하면 그 또한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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