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산화까스(이산화탄소의 잘못)’라는 말을 지어낸 사람이 있었다. 12월 내내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장 안에는 답답한 ‘이산화까스’가 차올랐다. 3주에 걸쳐 5일 간 수십 명의 증인들과 국조위원들, 기자들, 보좌관과 참관인들이 내뱉은 한숨들이 쌓였다.

전례 없는 사건에 걸맞은 전례 없는 청문회였다.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그렇다. 긍정적인 파격은 모두 국민들에게서 나왔다. 국회TV는 사상 최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국내 최대 포털 메인에 매번 생중계가 걸렸다. 좁은 청문회장 문이 인터넷을 통해 넓어졌다. 집 안에서 청문회를 시청하던 네티즌의 제보가 활약했다. 국민은 유능한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대기업 회장들이 단체로 출석했던 12월6일 1차 청문회는 유난히 취재 요건이 까다로웠다. 청문회 전날인 12월5일, 국회 미디어담당관실은 상시출입증을 5개 이상 가진 언론사만 취재 신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전 국민적인 관심이 몰린 국조다. 취재 장소가 협소하다”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세월호 국정조사 청문회나 메르스 국정조사 청문회 때는 이런 식으로 취재를 제한하지 않았다. 매체 차별을 정당화할 만한 이유는 아니었다.

결국 1, 2차 청문회는 청문회장 앞 복도에 앉아 인터넷 생중계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던 모 정당 대표가 “왜 이렇게 차가운 데 앉아 있냐”며 동정했다. 어지간히 처량해 보였나보다. 정회 때 나오는 증인들에게 얼른 붙어서 이것저것 물었다. 청문회가 끝난 ‘퇴근길’에는 차 안까지 따라갈 기세였다. 대부분 답변은 없었다. 눈앞에서 새카만 중형차 문이 쾅 닫혔다.

3차 청문회부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청문회장 안에 있었다. 아침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증인들의 모른 척과 거짓말을 들었다. 타산지석이라더니, 앞선 청문회를 보고 예습이라도 해 온 것일까. 차수가 늘어갈수록 증인들의 ‘회피 기술’이 늘었다. 사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온 증인들의 입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이끌어 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돌발적인 전개가 튀어 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5차 청문회에서 증인들과 동행한 지인들이 새로운 돌파구였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데려 온 이정국씨와 조여옥 대위와 동행한 이슬비 대위가 그 주인공이다. 얼떨결에 청문회 발언대에 서는 바람에, 어설픈 진술을 했다. 이정국씨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장모 김장자씨가 일주일에 2~3회 골프를 친다고 말해 건강이 나쁘다는 불출석 사유에 맞지 않는 진술을 했다. 이슬비 대위는 군에서 이 대위에게 공가를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발언해, 편의를 봐주려던 저의가 뭐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에서 이 대위를 조 대위의 감시역 또는 군과의 연락책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그날 취재차 잠깐 말을 섞었을 뿐이지만, 이슬비 대위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전화로도 대면으로도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별 저항 없이 밝혔다. 다만 그는 의심 없이 권위에 복종했다. 전화로 인터뷰를 할 때 그는 연거푸 “상부에 보고하는 절차를 밟아야 언론과 접촉할 수 있다”며 단순한 사실 확인도 거부했다. 

그러더니 청문회 발언대에서는 당당하게 “국방부가 동행해줄 근무자를 붙여주고 싶었는데 다른 근무자를 붙였을 때는 문제가 생길 거라고 판단해 동기인 저를 선택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신은 군 상부의 허락을 받고 왔으니 떳떳하다는 의미로 들렸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조여옥 대위가 정부기관의 지시나 감시를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확인해주는 셈이 됐다. 지시만 따르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는 사람. 청와대에도 이런 사람이 한 명 있지 않나 싶다.

1차부터 5차까지 숨 가쁜 청문회 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얼굴은, 보지 못한 얼굴들이다. 끝까지 청문회를 무시한 증인들. 진실을 말하기보다 국회모욕죄를 택한 이들. 청와대 행정관 윤전추, 이영선에게 청문회 날짜마다 칼같이 연차를 내 준 청와대. 언젠가 청년과 중동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을 조금 바꿔서 돌려드리고 싶다. “청문회의 증인석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 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도망갔다고.”

▲ 신한슬 시사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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