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언론이 얼마나 자유를 누리는지를 평가하는 데 유력하게 통용되는 근거로는 ‘국경없는 기자회’의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가 흔히 꼽힌다. 이 기구가 지난 4월에 발표한 2018 언론자유지수 결과에서 우리나라는 180여개 평가 대상 국가 중에서 지난해보다 20단계 상승한 43위로 나타났다. 중위권이지만 상승폭이 큰 점이 고무적이다. 역대 최저치였던 2016년 70위에 비해서는 27계단이나 뛰어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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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대한민국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 디자인=이우림 기자.
▲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대한민국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 디자인=이우림 기자.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언론자유라는 면에서 그만큼 적잖게 개선이 됐다는 평가이니 일단 환영할 만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사실 이 같은 급상승은 당연한 결과였으며 예견된 결과였다. 언론자유지수는 언론의 독립성과 보도 환경 및 기자들의 자기 검열, 투명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것인데, 무엇보다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가 결정적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에 31위까지 상승했던 것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집권기에 69위, 70위 수준으로 급추락했던 것이 보여주듯이 정치권력의 성격과 행태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언론자유지수의 상승은 ‘비정상적 정치권력’의 청산에 따른 언론에서의 ‘비정상의 정상화’인 것이다. ‘국경없는 기자회’ 측의 설명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한국 언론자유 상황이 전환의 계기를 맞은 것이다. 아마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앞으로 몇 년간은 매년 상승일로를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자유지수 급상승, 반갑지만 반쪽 현실

그러나 그 동안 억압되고 유린당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언론자유지수의 상승을 한편으로는 반기면서 그 순위의 상승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가리는 우리 언론의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한국의 언론은 자유를 더욱 많이 얻음으로써 더욱 언론다워지고 있는 것인가. 언론자유지수의 상승이 곧 언론신뢰도의 상승인 것인가. 언론자유지수가 한국 언론의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것인가.

언론자유라는 창을 통해 보이는 우리 언론의 현실은 반쪽의 현실에 불과할 수 있다. 한국의 언론 현실은 언론자유지수의 급추락과 급상승이라는 수치로 단순히 요약될 수 없는 것이다. 1년 새 순위의 급상승에도 상승에도 불구하고 최상위권에는 못 미치는 언론자유지수가 드러내듯 한국의 언론에 ‘자유’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것은 실제의 구체적인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언론 자유 확대의 노정에는 결코 끝이 있을 수 없다는 명제가 당위적 과제로서도 부과되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국의 언론에 ‘자유’는 한편으론 과잉이다. 풍요를 넘어서 범람이다. ‘자기 절제 없는 자유는 방종’이라는 금언이 경고하는 무절제한 자유의 폐해야말로 오늘의 한국 언론의 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기레기’라는 생경한 신조어가 이제는 ‘당당히’ 표준어급으로 정착되고 있는 것에 그 한 단면이 보이듯 언론에 대한 비판은 상당 부분 개탄과 분노를 넘어서 조롱과 멸시를 받고 있는 지경이다. 진실과 사실이 침묵과 왜곡으로 가려지고 있고, 유력 언론은 언론의 이름으로 공론을 가로막는다. 사실의 이름으로 진실을 유린하고 있다. 누구보다 깊은 반성을 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우리 사회를 나무라고 있다. 무례함과 무지와 무책임이 지금의 언론의 적나라한 한 표상이다. 언론이되 언론이 아닌 언론, 언론을 스스로 박탈한 언론이며, 스스로 언론이길 포기한 언론이다. 그리하여 반(反)언론의 언론, 비(非)언론의 언론이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양 날개 필요

한국의 언론, 이제 자유와 함께 ‘책임’을 얘기할 때다. 아니 자유 이상으로 책임을 얘기해야 할 때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 언론에 자유와 함께 책임이라는 다른 쪽의 날개를 제대로 달아줘야 할 때다. 우리 언론에는 지금 언론자유지수와 함께 ‘언론책임지수’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우리 언론자유운동의 빛나는 기념비인 자유언론실천선언 44주년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1974년 10월24일, 숨 막히는 군사정권의 폭압을 뚫고 ‘언론 자유’의 고고성을 울린 동아일보의 기자들은 ‘자유언론’에 대해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44년 전 그날, 정의롭게 살고 싶어서, 언론의 책무를 다하고 싶어서 자유언론의 깃발을 들었던 이들은 이제 70, 80대의 노년이 돼 있다. 그 ‘자유언론 투쟁’의 정신을 ‘기레기 언론’ ‘무책임 언론’이 횡행하는 오늘에 발전적으로 이어받는 길, 그 하나의 길은 언론의 책임에 대한 자기 다짐과 각오일 것이다. 그리고 자기책임의 강화야말로 실은 자유의 구속이 아닌 ‘더 큰 자유’로 이어질 것이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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