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이 한마디에 힘든 일도 국익을 위해 기꺼이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드러나는 국정원의 더러운 커넥션은 “음지에서 정치 보복을 위해 일하다 정치 권력의 개가 됐다”는 비난에 직면했고 그 수장들은 줄줄이 법의 심판대에 직면하게 됐다.

청와대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치 권력은 국정원에 원세훈 같은 맹목적인 충성파를 기용하여 조직을 망치고 제도를 망가뜨렸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불쌍한 권력의 희생물로 시대의 역적, 불법 행동대장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이명박의 정치 보복 행동대장이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국민적 망신주기에 앞장 섰던 국정원은 그를 ‘논두렁 시계사건’으로 정치적 타살로 몰고갔다. 그리고 검찰과 언론을 수족처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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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검찰과 짬짜미하여 “고가 시계 수수건은 중요한 사안은 아니지만 언론에 흘려서 망신주기에 활용하라”는 지침을 내린다. 검찰과 국정원은 뒤늦게 서로 ‘우리가 언론플레이 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둘중 하나 아니면 둘다 관련된 사건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망신주기 활용’에 동원된 언론은 SBS와 KBS였다. 권언유착의 표본으로 SBS 출신 청와대 홍보수석을 가장 많이 배출한 방송사답게 SBS는 8뉴스 톱으로 “시계,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가 나갔다.

▲ 2009년 5월13일 SBS 8뉴스 리포트 갈무리
▲ 2009년 5월13일 SBS 8뉴스 리포트 갈무리
국정원 개혁위에 따르면 2009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이중적 행태를 부각하라’는 방침에 따라 일부 언론 담당 IO(Intelligence Officer·국내 정보 담당관)가 방송사에 수사상황을 적극 보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국내정보부서 언론담당 팀장 등 국정원 직원 4명이 SBS 사장을 접촉해 노 전 대통령 수사상황을 적극 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개혁위는 밝혔다.

2009년 당시 SBS 사장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대통령실장을 지낸 하금열이었다. 권언유착은 서로주고 받기 하면서 이뤄지는 법이다. KBS와 조중동은 물론 전 언론사가 대서특필해 ‘논두렁 시계사건’은 국정원의 의도대로 시골에 내려와 살고자했던 전직 대통령을 대망신 주는데 성공했다.

당시 언론은 언론이 아니었다. 국정원과 검찰의 ‘정치보복’행태, 불법 언론플레이에 대해 비판이나 감시는 없고 나팔수처럼 권력의 입맛에 자발적으로 놀아났다. 지금에 와서야 검찰과 국정원 비판에 나서는 언론, 사과없이 손가락질 하는 모습은 국정원만큼이나 후안무치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공영방송의 타락은 더욱 심각했다. 권력의 언론플레이를 견제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홍보하는데 앞장섰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2009년 5월 당시 고대영 KBS 보도국장(현 KBS 사장)이 국정원으로부터 보도 협조 명목으로 현금 2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9월1일 저녁에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에 입장하는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9월1일 저녁에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에 입장하는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국정원 개혁위가 밝힌 적폐청산 TF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관여 사건’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KBS 담당 IO가 2009년 5월7일자 조선일보의 ‘국정원 수사개입 의혹’ 기사에 대한 불보도를 협조요청한 사실을 확인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KBS 담당 IO가 당시 보도국장을 상대로 불보도 협조 명목으로 현금 200만원을 집행한 것에 대한 예산신청서·자금결산서 및 담당 IO의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진위가 밝혀지겠지만 이 와중에 금품수수 의혹까지 불거진 것은 KBS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청와대를 정점으로 국정원, 검찰의 언론 플레이는 계속 이어졌다. 국정원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둘러싸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정치권력에 저항하자 청와대는 조선일보를 동원하여 압박에 나섰다.

조선일보 2013년 9월6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아들을 숨겨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등장하는 가족관계등록부, 출입국 기록 및 학적기록부 등은 기자들이 합법적으로 입수할 수 없는 사적영역의 내밀한 자료들이란 점에서 처음부터 국정원 등 권력과의 결탁 산물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청와대 의지대로 채 총장은 낙마했고 당시 조선일보 보도책임자는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받아 국회의원 뱃지를 달게 된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권언유착의 검은 거래라는 비판은 계속 제기됐다.

‘야비한 권력’은 검찰과 국정원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그 결과 언론까지 타락하게 만든다. 정치보복과 불법비리를 분간하지 않으려 하거나 못하는 국회의원들 역시 사회정의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촬영한 국정원 로고. ⓒ 연합뉴스
▲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촬영한 국정원 로고. ⓒ 연합뉴스
국정원, 검찰은 과거사 진상조사를 통해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를 감시하기는커녕 거꾸로 놀아난 공영방송사를 비롯한 언론 권력이 저질렀던 잘못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권력, 언론, 언론인에 대한 책임추궁조차 없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공영방송은 견제와 감시가 없는 신문재벌, 언론권력 조중동 등에 대한 감시 프로그램을 상설화하여 왜곡보도, 언론플레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확한 팩트체크 등을 통해 국민에게 비판적으로 뉴스를 소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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