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최소 8년 전부터 대한항공을 통해 고가의 해외 물품을 밀반입해온 정황이 확인된 반면, 승무원들은 “엄격한 법규 준수가 요구된다”며 회사로부터 매일같이 관세법을 교육받았다. 하청업체 직원들은 면세품 구매 사실이 발각된 즉시 파면 처리됐다.

대한항공 1차 하청업체인 한국공항의 장아무개 당시 안전보안팀 과장은 7여 년 전 공항·항공사 직원 전용 보안검색대에서 면세 화장품 구매 사실이 탄로나 즉시 파면됐다. 장 전 과장은 항공사 직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저질렀다는 판단에 즉시 사직서를 제출했다. 한국공항은 사직서를 반려하고 파면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 대한항공 본사 사진. 사진=연합뉴스
▲ 대한항공 본사 사진. 사진=연합뉴스

당시 상황을 아는 관계자 증언을 종합하면 장 전 과장은 계류장 순찰을 돌던 중 평소 친분이 있던 기내 면세품 판매원에게 ‘아내 생일인데 화장품을 하나 사주고 싶다’며 프랑스 화장품 ‘올랑’을 구매했다. 장 전 과장은 이후 화장품을 상자 째로 가방에 넣고 퇴근하다 보안검색대에서 적발된 것이다.

파면은 쉽게 말하면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회사로부터 쫓겨나는 것으로 동종업계 재취업 길도 막히는 중징계다. 이 사건이 알려진 후 안전보안팀원들은 모두 강제 전보됐다.

기내 청소를 맡은 또 다른 하청업체 ‘이케이맨파워’에서도 최근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뉴스토마토’는 50대 후반의 청소노동자가 지난 달 일등석을 청소하다 쓰레기 봉투에서 승객이 버린 고가의 화장품 ‘다비(DAVI)’ 샘플을 발견한 후 이를 가지고 나오다 상주직원 전용통로 검색대에서 발각됐다고 보도했다. 업체는 “기내 서비스물품을 반출하는 행위 절대 엄금”이라며 해고 징계를 내렸다.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비행 전 브리핑 때마다 관세법 준수 교육을 받는다. 익명의 10년 차 승무원은 “브리핑 때마다 ‘중점 강조 사항’으로 관리자가 전달하는 것”이라며 “객실 승무원의 경우 휴대품 면세 범위는 150달러고 이를 어길 시 징계를 받는다”고 말했다.

▲ 2013년 하반기 대한항공 승무원 대상 관세법 준수 교육 내용
▲ 2013년 하반기 대한항공 승무원 대상 관세법 준수 교육 내용

2013년 하반기 관세법 준수 교육 내용을 보면 승무원들은 200달러 이하 물품에 한해 구매가 가능하며 100달러 이상 구매 시 세관에 의무적으로 자진신고를 해야 한다. 200~400달러 규모의 면세품을 구매하면 정직 1개월, 400~1000달러 물품을 구매해 적발되면 정직 3개월 처벌을 받았다. 규정 위반 면세품 구매가 2회 이상 적발되거나 1000달러 이상 물품을 구매하면 승무원은 즉시 파면된다.

대한항공 및 하청업체 직원들에겐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반면, 조양호 회장 일가는 4000여 만 원의 웨딩드레스, 커피머신 및 가구 등 고가의 해외 물품을 적절한 통관 없이 밀반입한 혐의를 사고 있다.

익명의 전 대한항공 직원은 지난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10년 조현아 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이 4000만 원 가량의 웨딩드레스를 밀반입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누가 봐도 구겨지지 않게끔 성인 남성 두 명이 안아야지만 서로 손이 닿을 만큼의 부피였다”면서 “사이즈가 (검색대) 엑스레이 기계를 통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시에도 아는 세관 계장님이 있어서 그냥 들고 나갔다. 인사하고, 나가라고 해서 들고 나가서, 하얏트호텔까지 배달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한항공 직원은 지난 2014년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해 인천에 도착한 대한 항공 화물기에 무게 100kg 이상의 조 회장 일가 물품이 실렸었다고 고발했다. 증언에 따르면 해당 물품엔 커피머신, 가구 등 해외에서 구매한 고가물품이 포함돼있었다. 복수의 대한항공 전 직원들은 이와 같이 운송된 물품은 세관 신고를 하지 않고 대한항공 중형차량으로 운반돼 서울 평창동 자택으로 옮겨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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