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사건이 7년을 넘기면서 지진파로 천안함 침몰원인을 연구한 지진전문가가 재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천안함 사건 당시 발생한 지진파를 분석해 민군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지진규모와 실제 지진규모에 차이가 있으며, 폭발량도 크게 다르다고 주장했던 김소구 지진연구소장은 최근 내놓은 저서에서 재조사가 필요하다며서 진실을 말할 양심적 인물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7~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는 천안함 사건이 향후 거짓으로 밝혀진 베트남의 통킹만 사건과 같다고까지 평가하며 북한 어뢰 공격이라는 합조단의 결론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지난 2012년 박정희 정권 말에 백령도 연안에 아군이 매설해둔 육상조종기뢰가 폭발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게재한 적도 있다. 이번 저서에서는 천안함이 폭발 전에 좌초돼 프로펠러가 앞쪽 방향으로 휘었다는 대목도 수록됐다.

김 소장은 지난해 12월20일 내놓은 ‘우리들을 위협하는 지진과 생활’(도서출판 학산미디어)에서 “천안함 침몰에서 배가 침몰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며 “상식적으로 왜 이 배가 섬 가까이 접근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하와이 대학 해양지구물리탐사, 서해 신항만 해양탐사)에 비춰볼 때 “모든 선박은 연안에 접근할 때는 반드시 항로를 이탈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며 “수심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암초와 충돌에서 피해야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 내용은 천안함이 2010년 3월26일 21시21분57초에 백령도 서남쪽(37.9292N, 124.6006E) 해상에서 수심 47m 깊이의 바다 수심 6~9m 지점에서 고성능폭약 250kg이 담긴 북한제 어뢰 CHT-02D의 비접촉 수중폭발로 파괴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김 소장은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그것에 관해서 반론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신뢰성이 부족해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결론적으로 천안함 침몰은 수중폭발에 의해서 발생한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어뢰인지 기뢰인지는 현재 자료분석으로 99.9999%는 기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 수심 약 44m 깊이의 바다의 8m 깊이에서 약 TNT 136kg 규모의 폭약량에 의한 수중폭발로 침몰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천안함의 프로펠러가 바다 바닥에 좌초됐다가 나갈 때 프로펠러에 얽혀서 끌려오던 그물에 걸린 기뢰가 터졌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천안함이 좌초나 선체 손상시 선체하부 부식을 위해서 설치한 강압캐소드 보호전류(ICCP:Impressed Current Cathodic Protection)가 흘러나와 끌려오는 기뢰의 뇌관을 건드려 수중폭발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 과거 우리 군이 심었다는 육상조종기뢰(수압식 MK-6 폭뢰를 전기식 조종기뢰로 개조한 것). 사진=합조단 보고서 90쪽
▲ 과거 우리 군이 심었다는 육상조종기뢰(수압식 MK-6 폭뢰를 전기식 조종기뢰로 개조한 것). 사진=합조단 보고서 90쪽
그는 그러나 “더 신빙성 있는 자료(정확한 침몰 장소 위치와 수심, 사고전 항적기록과 일지, GPS 데이터 Side-Scan SONAR 기록지) 및 목격자들과 책임있는 자들의 정확하고 신빙성 있는 기술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김 소장은 “베트남 전쟁의 도발원인을 전쟁이 끝난 후 그 원인의 진실을 북 베트남 장군과 미국정부에서 털어놓은 것처럼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누군가 진실을 털어놓는 양심적인 인물이 우리 역사에 있으면 좋겠다”고 역설했다.

김 소장은 “확실한 자료는 지진파와 초저주파 기록 그리고 파괴된 선체 뿐”이라며 “(합조단이) 불과 두달 안에 사고조사를 마치고 결론을 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령도 앞바다와 같은 천해(淺海:얕은 바다)에서 수중폭발에 의한 침몰한 예는 극히 드문 경우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건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규명하면 재발을 막을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엄청난 창조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 소장은 수중폭발의 근거에 대해 백령도 지진관측소에서 탐지한 지진기록을 들어 종파인 P파(Primary wave)가 먼저 뚜렷이 나타나고, 가스버블과 수중음파가 해저에 반사돼 돌아오는 반향파, T위상(T phace) 등이 보이고, 음파관측소에서 초저주파가 탐지됐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데이터는 폭발에서 나타나며 암초 또는 잠수함과 충돌할 경우엔 '초동(지진기록지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나타나는 기록)'이 급격하게 치솟는 상향 압축종파가 나타나기 어렵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한 그는 천안함 절단면의 단면이 반듯하고 매끈한 점을 들어 “좌현쪽에서 강력한 충격의 힘이 순간적으로 부딛혀서 칼로 자른 듯(Clean cut) 부러져 나갔다”며 “이 현상을 버블제트(bubble jet) 혹은 제트 임팩트(jet impact)라고 부른다”고 주장했다. 이를두고 김 소장은 “선체가 마치 태권도 선수가 벽돌을 여러 장 쌓아놓고 순간적으로 내려쳐서 두 동강으로 내는 것과 같다”며 “그러므로 선체 안에 있는 인명과 설비(유리창, 형광등)에는 덜 피해를 주었지만 선체는 두 동강을 내고 말았다”고 썼다.

이와 함께 김 소장은 지난 7~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새 정부의 적폐청산과 관련해 천안함 진상규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김소구 지진연구소장은 “천안함 진상규명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데도 현재 멈춰있다”며 “과학자(물리학자)로서 자존심이 상한다. 과학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당연히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그동안 북한의 어뢰 폭침이라고 하도 많이 떠들어놔서 다르게 쓰면 금새 종북으로 몰린다”며 “이젠 반드시 재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육상조종기뢰 설치지역. 사진=합조단 보고서
▲ 육상조종기뢰 설치지역. 사진=합조단 보고서
특히 자신이 저서에 ‘진실을 털어놓는 양심적인 인물이 있었으면 한다’는 주장에 대해 김 소장은 “베트남 통킹만 사건과 똑같을 것이라고 본다”며 “당시 그 사건 이후 베트남이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트집을 잡은 것이며, 훗날 맥나마라가 (회고록에서) 거짓말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이 사건처럼 양심선언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통킹만 사건은 1964년 8월4일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미국 제7함대의 구축함 매독스 호가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의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하면서 알려진 사건으로, 이를 계기로 미국이 베트남전에 직접 참전했다. 그러나 1972년 미국 언론이 ‘국방성비밀문서’를 인용해 “통킹만사건은 미군이 북베트남 영토를 먼저 공격함에 따라 유발된 것이었다”고 폭로했고, 1995년 맥나마라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자작극이었다고 고백했다.

수중폭발이 일어났다면서 왜 어뢰는 아니고 기뢰이냐는 질의에 김 소장은 인터뷰에서 “어뢰의 폭약량(폭발량) 계산이 틀리고 안수명 박사 말처럼 서해에서 어뢰를 정확하게 터뜨릴 가능성이 희박할 뿐 아니라 (합조단이 발표한) 버블주기와 수심, 폭약량 등이 맞지 않다”며 “이는 어뢰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안다”고 말했다.

기뢰폭발에 앞서 좌초됐다고 보는 이유에 대해 김 소장은 “먼저 좌초 됐다가 뒤로 밀려갔다가 그물에 걸렸다. 1차로 좌초했다”며 “무엇보다 배가 섬에 절대로 가까이 가면 안된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든 가까이 갔다가 (해저) 바닥을 긁고 그물에 걸린 것이다. 그래서 기뢰를 끌어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프로펠러가 휜 방향을 보면, 뒤에서 앞으로 휘어져있다”며 “배는 커브 트는 게 어렵다. 갑자기 백령도 쪽으로 왔다가 방향을 뒤로 바꾸려 했을 때 이 과정에서 그물에 걸렸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좌초될 수 있는 저수심 지대 까지 갔다는 것이냐는 질의에 김 소장은 “항적을 공개해야 한다.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문제다. 몇시몇분 몇초까지 다 나온다. 그것만 보여주면 끝난다”고 말했다.

▲ 부설 위치 및 방법에 따른 기뢰 종류. 사진=합조단 보고서 76쪽
▲ 부설 위치 및 방법에 따른 기뢰 종류. 사진=합조단 보고서 76쪽
터진 기뢰파편이 없고, 폭발의 증거나 흔적이 없다는 반론에 김소구 소장은 “폭발은 99.99%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또 “말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털어놓게 해야 한다”며 “실제 항적도 찾고, 당시 과거 수거한 물건 있는 그대로 다 찾아야 한다. 수거한 사람과 데이터도 다 찾고 확실히 다시 조사해야 한다. 천안함의 폭발 전후 한 시간씩만 정밀조사하면 금새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좌초 후 기뢰 폭발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기뢰가 매설된 백령도 해안가에 실제로 가까이 간 사실이 있어야 이 가설이 성립될 수 있다. 또한 그 당시 천안함이 후진했다는 것도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천안함 당직자와 합조단, 또 1심 재판부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이다.

2년 전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의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의 이흥권 재판장은 2015년 12월 결심공판에서 “사건 발생전 천안함은 백령도 서남쪽 해상에서 항로를 따라 오르내리며 항해하다 21시21분과 21시22분 사이에 발신 신호가 끊어졌고, 2분~3분 후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 재판장은 “본래 항로를 벗어나 해안가 근접하거나 백령도 남방과 대청도 중간 해역에 진입한 일이 없었다”며 “사고 직전에 멈췄거나 후진해 진행한 일도 없었다. 일정 속도로 진행하던 중 갑자기 발신 신호가 끊어져 상황이 발생한 것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천안함 사고 당일 당직사관이었던 박연수 대위는 법정에 출석해 천안함이 후진기동을 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기뢰폭발 가능성 자체에 대해도 국방부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반박한 바 있다. 김민석 당시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012년 9월27일 보도해명자료에서 육상조종기뢰를 1985년 불능화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주)한국화약에 ‘군용 전기뇌관의 해수중 기폭 가능성’을 검토 의뢰한 결과, 전기 뇌관이 품질 특성상 최소 0.45A의 전류가 공급되어야 기폭이 가능하고, 해수 중에 이종 금속 간 전원차로 발생한 전류에 의한 기폭이 불가하며, 에너지원에 의한 전류 미공급 시 기폭이 불가능하다는 회신을 접수했다고 했다. 또한 국방부는 “해저에 잔류한 전원공급 케이블이 함정 스크류에 끌려와 폭발한다는 가정을 하여도 스크류 부분에서 폭발되어야 하나 스크류가 있는 함미부분은 정상 상태이므로 가능성이 없었다”며 “TNT 폭약량 230kg 이하의 폭발유형은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판단되었다”고 덧붙였다.

김소구 소장의 주장에 대해 이진우 국방부 공보과장(대령)은 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미 합조단에서 발표했으며 발표내용에 대해 반박하고 부정하는 목소리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렇게 말하는 분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하고 있다. 그런 목소리 나온다 해서 국방부 입장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오히려 기뢰가 폭발했다면 폭발한 기뢰의 조각과 같은 증거가 남아있어야 하며, 폭발흔적이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생존자와 시신의 상처에는 화염에 의한 화상이나 총상, 관통상, 파편상과 같은 근접 폭발시 발생하는 효과가 나타나있지 않는 점도 주요 반론이다.

▲ 천안함 함미 우현의 휘어진 프로펠러. 사진=조현호 기자
▲ 천안함 함미 우현의 휘어진 프로펠러. 사진=조현호 기자
▲ 경기도 평택의 해군2함대 내 천안함기념관에 전시해둔 천안함 함미 인양 사진. 사진=조현호 기자
▲ 경기도 평택의 해군2함대 내 천안함기념관에 전시해둔 천안함 함미 인양 사진. 사진=조현호 기자
▲ 김소구 지진연구소장. 사진=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 김소구 지진연구소장. 사진=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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