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보도국이 ‘최순실 TF’(태스크포스) 특별취재팀을 구성했다가 해체한 가운데, 전 최순실 TF 소속 이동경 기자가 28일 사내 게시판에 “시청률 떨어지는 게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환자의 심장박동 같다”며 MBC 간부들을 비판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최순실 TF팀에서 일한 이동경 MBC 기자는 “JTBC에서 ‘연설문 특종’이 터진 지 엿새째 되던 날, 저희는 가진 게 하나도 없어서 그림부터 찍었다”며 “몸이 고된 것보다 견디기 힘든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MBC는 왜 이제야 와”, “그만 좀 물어봐 대답하기 귀찮아 죽겠어” “우리 건물에서 찍지마 XX, 발도 들이지 말라고!” 등 취재 과정에서 겪은 수모를 나열한 뒤 “옆 가게 사장은 저뿐만 아니라 부장급 카메라 기자에게도 쌍욕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대통령이 자리를 내놔야 할 일이 터졌다”며 “제보하는 사람도 자기 인생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그 사람들이 당연히 해온 게 없는 MBC에 제보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촛불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의 항의에 철수하는 MBC 취재진. (페이스북 유저 장은주씨가 업로드한 영상 갈무리)
이 기자는 “우리 뉴스는 그동안 대통령과 대통령의 사람들을 성역으로 취급해 왔다”며 “대통령에 제기되는 비판을 애써 외면했고 그러다 문제가 커지면 여야 공방으로 떠넘겼으며 그마저도 싫으면 리포트도 하지 않고 단신 두어줄로 처리했다”고 자성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땐 앞장서서 유족을 모욕했고, 정윤회 문건 유출 때도 취재다운 취재가 없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공영방송 보도국장을 거칠게 밀어 붙인 사실이 드러났는 데도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며 “우리 뉴스를 봐서는 이화여대에 무슨 일이 난 건지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이걸 보고도 저처럼 가만히 있던 사람은 남았다. 이대로 안된다고 말한 기자는 밖으로 쫓겨났다”며 “이 빈틈 역시 누군가가 메웠다. 사람들은 나라에 큰일이 생겨서 눈과 귀를 TV에 모으고 있는데, 그런 바람을 우리 뉴스를 통해 해소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나 길어졌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김장겸 MBC 보도본부장과 최기화 보도국장을 겨냥해 “시청률은 이제 3%대로 접어들었다. 시청률 떨어지는 게 마치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환자의 심장박동 같다”며 “MBC가 시청률 30% 일때 회사를 다니셨던 두 분은 이 상황이 원통하지도 않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보도국의 큰 어른이신 두 분은 이런 후배에게 과연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주려 하느냐”며 “또 어떤 선배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라고 물으며 글을 마쳤다. 아래는 이 기자의 게시글 전문.

▲ 김장겸 MBC보도본부장(왼쪽)과 최기화 보도국장. (사진=한국언론인연합회, 미디어오늘)
문제도 답도 명백합니다

지난 한 달간 보도국에서 ‘최순실TF’에서 일했습니다. 첫 임무는 그림 모으기였습니다. 최순실의 집과 회의 장소, 임시 거쳐로 삼은 오피스텔, 그 일가가 전횡을 저지른 여러 장소들을 찍으러 다녔습니다.

JTBC에서 ‘연설문 특종’이 터진 지 엿새째 되던 날, 저희는 가진 게 하나도 없어서 그림부터 찍었습니다. 몸이 고된 것보다 견디기 힘든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MBC는 왜 이제야 와.”, “그만 좀 물어봐 대답하기 귀찮아 죽겠어.”, “우리 건물에서 찍지마 XX, 발도 들이지 말라고!”

옆 가게 사장은 저뿐만 아니라 부장급 카메라 기자에게도 쌍욕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몇달째 괴롭히면 장사 어떻게 하냐”는 말은 특히 뼈아팠습니다. 언론 취재가 하루이틀이 아니었고 또 우리가 너무 늦었다는 데는 이만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키를 쥔 사람은 모두 숨었습니다. 작정이나 한 것처럼 접촉할 수 없었고, 모두가 입을 닫았습니다. 그래도 매일 어디선가 단독기사는 나왔습니다. 신문 기사라도 받으라는데 싱크 확보가 안돼 제작이 물 건너 간 적도 많았습니다.

대통령이 자리를 내놔야 할 일이 터졌습니다. 제보하는 사람도 자기 인생을 걸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당연히 해온 게 없는 MBC에 제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기사를 발굴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겨우 찾아온 제보자마저도 “MBC는 대통령과 관련된 거면 안 나간다는 데 괜찮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한 달 동안의 특취팀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명백해 보입니다. 우리 뉴스는 그동안 대통령과 대통령의 사람들을 성역으로 취급해 왔습니다. 대통령에게 제기되는 비판을 애써 외면했고 그러다 문제가 커지면 여야 공방으로 떠넘겼으며 그마저도 싫으면 리포트도 안하고 단신 두어줄로 처리했습니다. 그 빈틈을 메운 건 '생활밀착형' 뉴스였습니다.

정말 비정상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땐 앞장서서 유족을 모욕했고, 정윤회 문건 유출 때도 취재다운 취재가 없었습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공영방송 보도국장을 거칠게 밀어붙인 사실이 드러났는 데도 제대로 보도조차 안했습니다. 우리 뉴스를 봐서는 이화여대에 무슨 일이 난 건지도 제대로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 와중에도 시민을 때 렸다는 세월호 유족과 국회의원의 소식은 작은 수사 소식마저 빠지지 않고 전달했고, 세월호 특조위가 대통령을 모욕하며 박수를 쳤다는 소식은 기민한 대처를 했다며 상금까지 쥐어 격려했습니다. 이걸 보고도 저처럼 가만히 있던 사람은 남았습니다. 이대로 안된다고 말한 기자는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이 빈틈 역시 누군가가 메웠습니다.

사람들은 나라에 큰 일이 생겨서 눈과 귀를 TV에 모으고 있는데, 쏟아지는 활자 속에서 쉽고 명료한 방송 뉴스로 사안을 정리하길 원하는데 그런 바람을 우리 뉴스를 통해 해소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나 길어졌습니다.

본부장님 국장님께 묻고 싶습니다. 후배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자락을 깔아 주시고 거기서 보람을 얻으셔야 할 분들이 어찌 그동안 이토록 보도를 외면하고 통제해 오셨습니까.

시청률은 이제 3%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시청률 떨어지는 게 마치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환자의 심장박동 같습니다. MBC가 시청률 30% 일때 회사 다니셨던 두 분은 이 상황이 원통하지도 않으십니까.

지금 많이 늦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쫓아낸 기자들을 다시 불러 다가올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를 준비하고 그리고 더 먼, 그러나 아주 가까이에 있는 MBC 뉴스의 미래도 함께 대비해야 합니다.

그게 자리에 있는 사람의 책임이고 소명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들은 한결같이 ‘옛날 MBC뉴스는 이렇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선배들은 돌아갈 마음의 고향이라도 있지만, 저는 그것조차 없습니다.

보도국의 큰 어른이신 두 분은 이런 후배에게 과연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주려 하십니까. 또 어떤 선배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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