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근거없는 추측성 보도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경우 치명적이고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SNS 등으로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퍼져나가는 빠른 전파력을 감안하면 특히 그렇다. 나중에 정정보도를 하더라도 이미 이미지에 손상을 입고난 뒤라 현재의 언론피해구제 제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최근 청와대의 탄저균 백신 수입 논란 보도는 언론피해구제 제도를 점검해보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극우매체로 알려진 뉴스타운은 문제투성이 기고글을 실었다. 지만원 박사는 ‘청와대 식구들, 탄저균 백신 수입해 주사 맞았다’라는 글에서 “청와대는 지난 6월6일, 현충일에 식약청에 공문을 보내 백신 주사약 수입을 명령했다… 어느 날 백신은 도착했고, 아마도 500명이 이 백신 주사를 맞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만원 박사는 “청와대에는 핵무기에 안전한 벙커시설이 있다. 여기에 더해 탄저균 백신 주사를 맞았다… 특별히 탄저균에 대한 백신을 주문했다는 것은 북한이 탄저균을 사용할 것이라는 귀띔을 해주었다는 말이 된다. 청와대 빨갱이들에게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남한 인구를 탄저균으로 깨끗이 청소할 테니 너희들 500명은 백신 주사 맞고 살아 남아라’ 이런 뜻일 것”이라고 비난했다.

▲ 2015년 3월19일 지만원 박사가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5·18 역사의 진실 대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2015년 3월19일 지만원 박사가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5·18 역사의 진실 대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를 두고, 미디어오늘은 “지만원 박사는 청와대 참모진 500명이 백신 주사를 맞았다라고 확신하면서 마치 국민 안전을 내팽개치고 청와대를 자신만 살아남으려는 파렴치 집단으로 몰아버렸다”고 평가했다.

[ 관련기사 : 청와대 탄저균 백신 수입 논란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

청와대는 “탄저 백신은 국내 임상시험이 시행되지 않아 부작용 등을 우려해 예방접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매우 악의적인 해석을 함으로써 현 정부와 청와대 신뢰를 결과적으로 훼손시켰다. 해당 매체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강력한 법적 조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극우매체에서 극우인사의 기고문은 악의적이고 고의성이 다분하다. 이는 기고문 내용을 검토하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청와대가 아무리 강력한 법적 조처를 취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뉴스타운이라는 매체는 기고문을 받아 게재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고 지 박사는 김상훈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의 보도자료에 기초하여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 것이라고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청와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기고라 하더라도 그것을 게재하는 언론사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보도자료에 기초하더라도 근거없는 주장에 대해서는 민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언론자유(?)를 내세우는 극우매체, 극우인사들의 비난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사례를 잘 보여준 사례가 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010년 3월 일선 기동대장을 상대로 “바로 전날 10만 원권 수표가 입금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라는 근거없는 주장을 했다.

그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유가족들은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벌였지만 조중동은 대서특필하며 보도를 키워나갔다. 특히 동아일보는 명예훼손 소송 과정에 피의자 조 전 청장의 일방적 주장 “조현오 전 경찰청장 ‘어느 은행 누구 명의’인지 다 깐다”(2012년 5월4일)는 선정적 제목으로 허위보도를 일삼았다.

▲ 2012년 5월9일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 2012년 5월9일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다른 지면에서도 “조현오 까겠다 발언, 사실로 드러나면”이라는 가정법을 동원해 “조현오 파일 실체존재한다면 대선판 전체 흔들 뇌관”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명예훼손 소송과정에서 언론사는 피의자 말을 인용하여 터무니없는 주장을 키워나갔다.

결국 조 전 청장의 발언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고 그의 유죄판결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허위보도를 일삼았던 동아일보는 어떤 책임을 졌던가. 그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 고의성이 다분한 허위보도, 과장보도를 일삼았지만 동아일보는 법적 책임에서는 자유로웠다. 

언론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악의적 보도, 고의성이 다분한 보도에 대해서는 법이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줘야한다. 형사처벌은 지양하더라도 외국처럼 법원이 징벌적보상제도(punitive damage)를 원용하여 언론사에 책임의식을 드높일 수 있는 실질적 억제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언론윤리강령, 보도준칙 등 내적 규제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타율규제의 존재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영국은 기존의 언론불만처리위원회( Press Complaints Commission. PCC )가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대중의 불만 때문에 1990년에 만들어졌지만 2014년 9월 8일 문을 닫았다.

자율규제의 한계를 드러내고 문제해결에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비판 속에 여러 차례 회생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용도폐기 됐다. 대신 보다 강력한 언론규제기구가 필요하다는 영국정부의 입장과 언론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돼야 한다는 언론계의 주장이 대립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2011년 훈트경이 중심이 되어 PCC를 대체할 보다 강력하고 실질적인 언론규제기구 연구에 착수했다. 신문, 잡지는 물론 인터넷 세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파워 블로거 등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규제기구는 2014년에 완성됐다.

영국의 새로운 언론자율규제기구, IPSO (The Independent Press Standards Organisation)는 PCC를 대체하며 2014년 9월8일 공식 출범했다. IPSO는 영국의 미디어 산업을 활성화 시키며 동시에 저널리즘의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희망을 밝히며 닻을 올렸다. IPSO는 2016년 1100개의 인쇄매체와 1500개의 온라인 매체의 윤리강령 준수 여부를 다루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규제기관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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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SO는 각 언론사의 윤리강령 준수 여부를 자체조사하며 언론불만처리문제를 다투게 된다. 필요할 경우, 언론사에 연간 윤리강령 준수 보고서를 요청할 수 있으며 모니터 작업도 병행하게 된다. 특히 과거와 다른 점은 IPSO의 권한이 대폭 강화된 부분이다. IPSO는 필요시 정정보도나 불리한 평결을 눈에 띄게 게재할 것을 요청할 권한을 가지며, 윤리강령 위배가 구조적이고 심각할 경우 과징금까지도 부과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한국의 언론중재제도가 좀 더 진일보하여 법적분쟁 이전단계에서 제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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