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댓글 사건 수사를 받던 국가정보원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이끌던 검찰 특별수사팀 와해를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근혜 청와대는 당시 채 전 총장 혼외자 관련 사찰 행위에 대해 ‘정당한 감찰활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에 추가로 발견된 국정원 보고서에 따라 국정원 댓글 수사로 정권에 부담을 줬던 채 전 총장 ‘찍어내기’가 청와대와 국정원의 합작품이었다는 의혹은 더욱 확고해졌다.

지난 12일 연합뉴스 등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남재준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등에 보고한 수사 대응 문건들을 추가로 발견해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에 이첩했다.

이 문건 중 일부는 지난 2013년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혐의로 기소된 후 7월 대통령이던 박근혜씨에게 채 전 총장의 조직 운영 문제점을 보고한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3년 9월30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채 전 총장은 이날 혼외자 의혹으로 총장 직에서 내려왔다. ⓒ 연합뉴스
지난 2013년 9월30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채 전 총장은 이날 혼외자 의혹으로 총장 직에서 내려왔다. ⓒ 연합뉴스
이 보고서에서 국정원은 “채동욱 총장이 공안통을 배제하고 특수통 검사들만 중용하면서 특수통 검사들의 ‘소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며 “검찰 내부에서 불만이 증폭돼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적시했다.

국정원은 이어 “채 총장의 검찰 조직 운영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자체의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외부의 힘에 의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외부의 힘에 의한 특단의 조치’에선 다양한 경로로 채 전 총장에게 압박을 가했음을 유추할 수 있는데, 실제로 국정원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13년 6월부터 채 전 총장 혼외아들 관련한 감찰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청와대 민정수석은 곽상도 현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그리고 청와대 문건 작성 두 달 후인 9월6일 조선일보가 채동욱 혼외자 의혹을 보도했다. 당시 편집국장은 강효상 한국당 의원이었다. 곽상도·강효상 의원은 대구 대건고 선후배 사이다.

국정원은 또 박근혜 청와대에 순환보직 원칙을 활용해 특수통 검사들을 흩어놓아야 하며 이를 위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채 전 총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게 국정원법과 함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적용하는 문제로 황교안 전 장관과 갈등을 빚고 있을 때였다.

아울러 국정원은 특별수사팀 검사들의 뒷조사 내용을 담은 문건을 만들어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보냈는데, 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해선 통제가 안 된다며 인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게다가 수사팀 검사들에 대해선 ‘할아버지가 전라도 출신’이라고 문제 삼는가 하면 대학 시절 학생운동 경력까지 지적하며 ‘건전 성향 법조인’으로 수사팀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 TF로부터 보고서를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은 댓글 사건 진상을 은폐하려던 국정원이 2013년 수사팀 와해를 위해 검찰총장과 수사팀을 흔든 것으로 보고, 남재준 전 원장을 ‘사법 방해' 혐의로 추가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왼쪽)과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강효상 한국당 의원(오른쪽). 사진=노컷뉴스, 민중의소리
▲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왼쪽)과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강효상 한국당 의원(오른쪽). 사진=노컷뉴스, 민중의소리
앞서 지난 10월 채 전 총장의 개인정보 유출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이번 문건은 적폐청산 TF가 추가로 발견해 검찰에 이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유식 국정원 개혁위 공보간사(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에 보도된 (검찰 댓글 수사팀 와해) 문건은 개혁위에 따로 보고한 것은 아니고 검찰에 바로 보낸 것 같다”며 “개혁위 발표 때 보고 내용에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아니어서 우리와 따로 얘기는 안 됐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국정원 청와대 보고 문건엔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첩보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개혁위는 10월23일 “국정원 존안 보고서·출력물 등 내부 자료를 면밀히 확인하고 당시 청와대 파견관 등 관련 직원에 대해서도 심층 면담조사를 했지만, 채 총장 혼외자 관련 내용에 대해 청와대의 보고 요청이 있었다거나 국정원 지휘부에서 별도 보고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국정원 작성 자료가 조선일보에 유출된 증거나 정황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정원 적폐청산 TF의 추가 문건 발견을 통해 당시 국정원과 청와대에서 채 전 총장 찍어내기에 가담한 ‘윗선’이 검찰 수사로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관련기사 : 채동욱 혼외아들 개인정보 유출, 검찰이 눈감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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