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언론개혁은 부패한 권력과 싸워 독립성을 쟁취하는 것, 왜곡된 시장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언론개혁에는 중요한 과제 하나가 더해질 것이다. 바로 언론인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내던지고 시민과 소통하는 과제 말이다.”(‘권력과 언론’ 박성제 저, P.294)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지난 7월31일 펴낸 책 ‘권력과 언론’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책의 부제이기도 한 ‘기레기 저널리즘의 시대’에서 기자가 살아남기 위해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부터 해야 한다는 뜻이다. 권력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여전히 보수 편향적 언론 지형은 변한 것이 없건만 매체 환경은 다변화했고 시민들은 각성했다. 지난 정권에서 ‘못난’ 언론의 민낯을 목도한 시민들은 “우리 언론의 문제가 단순히 보수·진보의 이념대결 구도가 아니라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질곡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체득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박 기자가 단순히 공영방송 문제뿐 아니라 종합편성채널·진보언론·디지털 미디어 등 미디어 전반을 책에 담은 까닭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민동기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최승호 전 MBC PD수첩 PD,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와 대담을 나눴다. 사이사이에 권태선 KBS 이사, 김경래 전 KBS 기자, 채널A 출신 이명선 ‘셜록’ 기자, 배정훈 SBS ‘그것이알고싶다’ PD 인터뷰가 실려 있다. 책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더 이상 언론 문제는 공영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며 보수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 ‘권력과 언론’ 저자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뒤에 리영희·송건호 선생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권력과 언론’ 저자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뒤에 리영희·송건호 선생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지난 7일 박성제 해직기자를 서울 중구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났다. 7년 전인 2008년 8월7일 박 기자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을 강제 해임하려는 MB 정부 규탄 촛불집회에서 경찰에 강제 연행됐다. 감사원·검찰·국세청 등 사정기관이 총동원된 정 전 사장 해임은 MB 정부 방송 장악의 시작이었다. 4년 뒤 그는 MBC 170일 파업 과정에서 ‘근거 없이’ 해고됐으며 5년이 지난 지금 MBC 정상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 ‘권력과 언론’ 프롤로그는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의 학술대회 발표 내용이다.

“손석희 선배에게 인터뷰를 정중하게 요청했지만 정중히 고사했다. 인터뷰 시 아마도 MBC 친정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다가 지난 4월 학술대회에서 방송 공정성을 주제로 발표한다는 걸 알고 찾아갔다.”

- 손석희가 말하는 공정성은 무엇이었나?

“책을 보면 나온다.(웃음) 그런 대목이 있다. 합리적 시민사회의 철학을 대변한다는 것. 여야 5대5를 지키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거다. 그럼 무엇이 ‘시민사회의 철학’일까. 이는 언론인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정립된다는 것이다.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 책이 술술 읽힌다.

“우리 어머니도 읽어보시더니 이해가 된다고 하시더라.(웃음) 언론 전문가들과의 어려운 논의를 담기보다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편할 것 같았다. 언론 문제에 관심이 있는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든 이해할 수 있다. 전문 용어도 쉽게 풀어서 묻고 답했다. 기자·PD를 지망하는 언론 지망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쓴 ‘권력과 언론’/창비.
▲ 박성제 MBC 해직기자가 쓴 ‘권력과 언론’/창비.
- 종편 출신 이명선 기자와의 인터뷰도 남달랐을 것 같다.

“내가 종편 탄생을 반대하며 언론사 파업을 했다가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하기도 했다. 이명선 기자가 채널A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디어법 파업 때 우리가 걱정했던 것이 현실이었구나 싶었다. 종편은 가장 상업적이면서 보수적이다. 편파와 왜곡의 끝을 보여줬다. 방송을 하향평준화했다. 공영방송에도 악역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그러면서도 JTBC와 손석희를 생각하면 ‘리더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고.(웃음)”

- 최승호 PD와의 대담에서 인상적인 것은 ‘방송사 노동조합’ 부분이었다. 최 PD는 “손석희 사장이 노조를 허용하고 노조와 대화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노조로부터 비판도 받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손석희 사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JTBC도 ‘하나의 종편’에 불과했다. 최승호 PD와의 대담은 개인 한 사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강조한 것이다. 기자협회나 노조를 통해 언론 종사자들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노조가 중요한 것은 지금 MBC도 마찬가지다. 노조가 없었다면 해직 언론인들은 제대로 활동할 수가 없다. 일각에선 MBC 언론인에 대해 ‘너희는 지난 9년 동안 뭐했느냐’고 비판하지만 노조를 중심으로 처절하게 싸웠고 버텨내고 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MBC는 이미 민영화됐을 수 있다. 싸워왔던 경험과 투쟁 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공영방송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력은 자신에게 개처럼 충성할 수 있는 사장을 내려 보내려고 한다.”

- 노조가 강하다고 평가받는 MBC가 가장 처참히 무너졌고 언론 공정성 수준이 독재정권 수준으로 후퇴했다.

“권력의 방송 장악 시도가 전무했다고까지 말할 순 없지만 DJ-노무현 시대엔 느슨했다. 이 시기 공영방송 언론인들은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위험성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전두환 시절 수준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나. 언론 자유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투쟁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권력이 언제든 다시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망각했다. 만약 홍준표 같은 인사가 권력을 잡으면 이명박·박근혜 때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사장을 제대로 뽑아야 하며 보도국장 등 보도책임자 선발에 구성원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도 필요하다.”

- 최근 김민식 MBC 드라마 PD가 “김장겸은 물러나라”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MBC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이 달라졌다고 보나?

“처음에 MBC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내면 ‘너희들 5년 동안 뭐하다가 지금에 와서 이러느냐’는 비판이 팽배했다. 지금은 그래도 이해해주려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시민들이 응원해줄 자세를 갖게 되신 것 같다. 나머지는 우리 몫이다. KBS·MBC 언론인들의 봉기가 필요하다.(웃음) 대충해서는 안 된다. 향후 우리 싸움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을 것이다. 지난해 촛불집회 시민들이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을 걱정하시고 거리에 나오셨나? 그들은 정의 하나만 생각하고 나갔다. 우리도 모든 것을 던지는 싸움이 필요하다.”

- 보수 야당에서는 ‘공영방송 사장 임기는 보장돼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임기가 남은 박근혜를 탄핵한 까닭이 무엇인가. 대통령 의무 위반이다. 공영방송 사장 의무도 방송법에 명시돼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때 각종 오보와 무책임한 보도, 진실 외면에 대해 MBC 경영진은 어떠한 책임을 졌나? 이제는 그 책임을 물을 때다. 국정농단을 방조했을 뿐 아니라 탄핵을 막으려고 했다. 중범죄를 저질렀으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제 너희는 내려와라’ 이런 논리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 YTN 해직자들의 복직이 결정됐다. 같은 해직자로서 부럽지 않나?

“YTN은 사장이 물러난 뒤 해직 기자가 복직하고 지금은 좋은 사장을 뽑기 위해 노력 중이니까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웃음) 우리는 그런 협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대법원에서 복직 판결을 받고 돌아가고 싶다.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해직된 우리가 정당했음을 판례로 남기면 앞으로 후배 언론인들이 싸울 때 도움이 될 것이다. 공정방송을 위해 싸우려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판례를 만들어 놓고 들어가고 싶다.”

▲ 2012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MBC 사장 모습. 박성제 기자는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지만 백종문 MBC 부사장은 그를 근거없이 해고했다고 실토했다. 법원은 2012년 파업이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2012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MBC 사장 모습. 박성제 기자는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지만 백종문 MBC 부사장은 그를 근거없이 해고했다고 실토했다. 법원은 2012년 파업이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최 PD의 영화 ‘공범자들’ 개봉을 앞두고 MBC 경영진들이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박성제 기자 책에도 출판금지가처분 신청하는 것 아닌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웃음) 영화 공범자들에서도 나오지만 MB를 포함해 언론장악 세력들은 하나 같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 그들 가운데 하나라도 ‘미안하다’ ‘후회가 된다’고 했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들이 사법 처리가 된다고 해도 미안한 감정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타협하면 안 될 것이다.”

- 책을 사볼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대한민국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대담을 쉽게 풀어 담았다.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으실 것 같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경오’ 진보 언론과 관련해서도 생각을 정리해봤다. 그건 결말에 담았다. 복잡한 한국 언론을 이해하는 데 내 책이 미력하게나마 도움이 된다면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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