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허남식 전 부산시장이 특정 범죄 가중처벌법 뇌물·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부산지법에서 징역 3년 및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은 가운데, 허 전 시장 측과 부산 지역 언론과의 유착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판결문을 통해 공개됐다. 

당초 검찰은 허 전 시장의 비선 참모이자 고교 동기인 이아무개씨(67)를 통해 엘시티 시행사 이영복(67) 회장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허 전 시장을 재판에 넘기며 징역 5년에 벌금 6000만 원을 구형했다. 법원은 이씨에게는 징역 2년 6월과 벌금 3000만 원, 추징금 3000만 원을 선고했다. 

판결문을 보면 이씨는 허 전 시장과 지역 언론의 매개 역할을 주도적으로 했다. 이씨는 부산 지역 일간지인 국제신문, 부산일보, 부산매일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한 원로 언론인으로 2010년 6월 부산시장 선거에서 허 전 시장의 선거캠프 참모로서 기획 및 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권력과 지역 언론의 유착을 보여주는 단서는 이씨가 작성한 문건들이었다. 판결문을 보면 이씨는 허 전 시장과 관련해 4개의 문서를 작성했다. 

그 가운데서도 ‘부산 언론인 접촉 중간결과 보고서’(이하 보고서)는 눈에 띈다. 이 문건은 이씨가 2009년 12월경 허 전 시장의 2010년 부산시장 선거를 대비해 언론인들을 만나 언론사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허 전 시장의 이미지메이킹을 하는데 역할을 했다는 것을 허 전 시장에게 전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9월 63명에게 추석선물로 최상급 소갈비 한 상자씩 전달”, “일선 기자들에 대해서도 새해부턴 크로스 스킨십 절대 필요. 곧 간부, 기자들에 대한 대규모 인사가 있을 부산일보에 대해서는 특단의 대책 필요” 등이었다. 

판결문을 보면 이씨는 소갈비 부분에 대해서 “소갈비 선물을 보낸 63명은 언론사 부장 이상 간부들도 기억하고, 추석 명절 겸 허남식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 확산을 위해 선물한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7일 오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허남식(68) 전 부산시장이 부산법원종합청사를 나서고 있다. 허 전 시장은 측근을 통해 엘시티 시행사 이영복 회장에게서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 연합뉴스
▲ 지난 7일 오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허남식(68) 전 부산시장이 부산법원종합청사를 나서고 있다. 허 전 시장은 측근을 통해 엘시티 시행사 이영복 회장에게서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 연합뉴스

보고서에는 “언론인, 부산시의원, 부산시 공무원 등과 접촉해 허남식에 대한 호의적 여론을 생산, 확산시켜 부산시장 3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크게 퇴조했다”는 대목이 있다.

‘2010년 부산시장 선거에 대한 소회’라는 문건(이하 ‘소회 문건’)은 이씨가 2010년 6월 그해 부산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느낀 감회,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 향후 시정 운영 방향 제시 등을 위해 작성한 것으로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위한 로비 정황 등이 담겨 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적시한 문건의 주요 내용을 보면 “부산 MBC에서 지지율 조사 결과 허남식 후보의 지지율이 39%로 터무니없게 적게 나오자 폐기처분을 지시. 조사 담당 동의대 측은 부랴부랴 다시 조사한 결과 57%를 내놓아 부산일보와 공동 보도했고 이 과정에서 (상대 진영인 민주당) 김정길 (후보) 측이 강하게 반발”, “국제신문도 허후보 측의 지지율 37%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발표 전 사전에 이를 간파한 캠프와 이씨의 심한 항의를 받았음. 그래서 1면 톱 제목 부제의 하나로 ‘당선가능성 허후보 67%, 김후보 6%’라고 표제” 등이다. 

부산일보는 2010년 5월27일 “허남식 57.2% 김정길 31.5%”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부산일보-부산MBC 2차 지방선거 여론조사 결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허남식 한나라당 후보가 김정길 야권단일 후보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국제신문도 “허남식 37.6% 김정길 24.9%… 당선 가능성 許 62%· 金 6%”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내달 2일 실시되는 부산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허남식 후보가 민주당 김정길 후보를 비교적 여유 있게 앞서가고 있지만 부동층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또한 소회 문건에는 “MBC와 KNN 프로듀서들은 토론회 전에 미리 질문사항을 우리 팀에 귀띔해줘 도움”이 됐다는 내용과 “언론의 이와 같은 태도는 그전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결과” 등의 구절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언론의 우호적인 태도가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언론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골프 초청을 추진했다는 대목도 있다. “OO그룹 조아무개 회장이 부산 언론사 사장단들을 7월17일과 18일 중국에 골프 초청”을 했으며 이씨는 “6월12일 조선일보 등 중앙지, 13일 부산일보, 19일 KNN, 7월3일 국제신문 기자들과 골프회동을 갖는 등 순차적으로 ‘보은 행사’를 준비”했다. 

재판부는 개인별 출입국현황을 통해 조 회장 및 당시 부산 MBC 사장, 부산일보 사장, 국제신문 사장, KNN 사장, 연합뉴스 상무이사는 모두 2010년 7월17일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같은 달 18일 귀국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이씨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보면, 이씨가 OOO컨트리클럽에서 2010년 6월12일 99만7300원, 2010년 6월13일 112만8000원, 2010년 6월19일 167만9800원 등을 결제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허 전 시장 측은 재판에서 2010년 부산시장선거 당시 김정길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20~30% 앞서고 있었고 당선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씨의 언론인에 대한 불법적인 접대를 용인할 이유나 동기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2010년 부산시장선거는 이전 선거와는 다르게 2010년 5월 야권 단일화로 상대 후보가 김정길 1명 밖에 없었고 선거 결과도 이전 선거에 비해 허남식의 득표율이 10% 정도 하락한 것에 비춰보면 이전 선거에 비해 당선이 확실한 상황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부산 지역 언론이 향응 접대를 받고 여론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7월14일 오후 5시30분 반론 추가]

한편, 2010년 당시 부산 MBC 보도국장이었던 이아무개 전 국장은 “이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닐 뿐더러 부산 MBC 및 당시 보도 책임자였던 저에 대한 심대한 명예훼손이자 모독 행위”라며 “당시 부산 MBC 보도책임자로서 이씨나 허 전 시장 측 캠프 또는 비선라인 쪽으로부터 어떤 청탁이나 요청을 받은 바 없다. 이씨가 진술한 골프접대 명단이나 카드 사용 내역에 부산 MBC 기자가 없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고 반박했다.

이 전 국장은 ‘여론조사 폐기 처분 지시’와 관련한 대목에 대해서도 “여론조사 잠정 결과를 중간 보고 받은 바, 무응답층이 무려 40% 이상에 이른다는 점과 야권에서 단일 후보로 여야 2명이 확정된 가운데 지지율 합계가 50%를 조금 넘는다는 보고를 해 기사 가치가 없는 조사라며 직접 이의 제기를 통해 보완 요구를 한 것”이라며 “선거 일주일 전이고 후보 2명뿐인데도 40% 이상이 무응답, 모름 처리로 모두 부동층으로 분류한 결과여서 두 후보의 지지율 여부와 관계없이 여론조사 자체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부산MBC와 관련해 이씨의 주장이 허위사실이자 억지라는 것이다.

이 전 국장은 “당시 검찰의 수사 과정이나 법원의 심리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부산 MBC나 당시 보도책임자였던 본인에 대해 문의나 확인 과정이 없었다”며 “그럼에도 판결문까지 인용된 점은 비록 일부분이라 할지라도 법원의 신뢰와 공정성을 의심하게 할 우려가 높아 유감스럽다”고 했다.

이어 “공정 보도와 언론인의 양심을 걸고 언론 정도를 위해 노력해왔던 당시 보도책임자 입장에서 엄청난 명예훼손과 모욕을 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법적 구제를 검찰 및 재판부에 강력히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