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일반 의사, 판사, 검사들은 대체적으로 믿을 만하고 성실하다. 그러나 이들이 병원장이 되고 부장판사가 되고 검사장이 되는 등 정치와 권력이 결합된 직위로 옮겨가게 되면 괴물로 바뀌는 모습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목격하게 된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식의 전두환 군부독재시절 경찰의 새빨간 거짓말을 21세기 오늘날에도 접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그것도 국내 최고 의료기관이라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병원장과 전문의가 흰 가운을 입고 기자회견까지 하며 ‘병사’라고 주장한 백남기 농민 사망 원인을 뒤늦게 ‘외인사’로 수정하며 사과하는 모습은 의사들의 윤리, 전문의의 윤리관을 되묻게 하고 서울대학교 병원의 위상과 권위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2015년 11월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백남기 농민 사인과 관련, 서울대병원측이 6월15일 서울대병원 강의실에서 언론설명회를 열어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김연수 서울대병원 부원장이 “오늘 아침에 (고 백남기 농민의) 유족을 만났고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 드렸다.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를 드렸다. 이 자리를 빌어 지성의 전당이라 생각되는 서울대병원이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고인의 주치의인 백선하 교수나 서울대병원을 책임지고 있는 서창석 병원장은 ‘병사’ 표기가 옳다고 주장했다. 주치의나 병원장이 사망진단서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지, 어떻게 병원장, 부병원장의 주장이 다르고 어제 말 다르고 오늘 말 다른지… 이쯤되면 국민은 진실은 무엇인지, 왜 이렇게 의사들끼리 오락가락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 6월15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씨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에서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6월15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씨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에서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알고보면 별로 의문을 가질 일도 아니다. 권력을 갖게되면 인간의 본성이 나타나고 의사의 양심을 저버리고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된다. 더구나 대통령 주치의까지 겸하면서 정치권력에 부담이 가는 일이라면 알아서 기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폴레옹도 “권력을 잡게 되면 그 사람의 본성이 나타나는 법”이라고 했다.

정직하게 양심적으로는 권력을 잡기도 힘들고 지키기는 더 힘들다. 의사 뿐만 아니다. 판사, 검사들도 앞에 부장판사 부장검사, 검찰국장, 검사장 등 직위가 더해지고 올라갈수록 위선과 가까워지고 비겁해진다.

지난해 새롭게 도입된 부정청탁금지법 시행과 함께 이에 앞장 서야 할 검찰과 법무부는 거꾸로 ‘돈봉투 잔치’를 벌였다. 최근 청와대의 감찰지시로 부정한 현찰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법무부의 검찰국장, 검사장급 검사들이 평검사를 졸개 거느리듯 데리고 가서 돈봉투 주고받는 불법행위를 저지르고도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식으로 뻣뻣했다.

언론에 보도되자 사과는커녕 도리어 내부제보자 색출에 나설 정도로 법무부와 검찰조직이 병든 모습을 드러냈다. 청와대의 감찰지시가 나오고 나서야 그 위선의 얼굴을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소위 작은 권력이라도 갖게 되면 본분을 잊기가 쉽다. 더구나 법무부 검찰 같은 힘센 조직은 누가 견제, 감시도 하지 않기 때문에 타락해도 웬만하면 변호사 개업에도 문제없다. 보라 이번에는 부장판사의 대담한 범법행위를.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대법원장 직속 법원행정처가 골프 및 룸살롱 접대를 받은 현직 부장판사의 비위사실을 검찰로부터 통보받고도 징계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해, 당사자가 무사히 변호사 개업까지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이 신문은 “검찰로부터 해당 부장판사의 비위사실 통보를 받은 사람은 법원행정처의 실무를 총괄하던 임종헌 전 차장으로 그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이런 내용을 보고했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며 “법조계에선 임 전 차장 등 대법원 고위층이 비난 가능성 등을 의식해 고의로 징계 절차를 밟지 않고 해당 부장판사의 사직을 묵인했다면 직무유기 등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했다.

뒤늦게 드러난 부장판사의 골프와 술접대 향응도 사법부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위 사실을 접하고도 검찰과 대법원이 보인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미온적인 대응방식이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도록 배려한 오만한 조직의 모습 속에 국민의 실망과 좌절은 불가피하다.

▲ 2013년 9월1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의 태극기와 검찰깃발 아래로 적색 신호등이 켜져 있다. ⓒ 연합뉴스
▲ 2013년 9월1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의 태극기와 검찰깃발 아래로 적색 신호등이 켜져 있다. ⓒ 연합뉴스
사법부, 검찰, 서울대병원 모두를 부정하고 탓할 필요는 없다. 어느 조직에나 그 조직의 신뢰를 망치는 것은 일부 권력을 쥔 부당한 인사들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일부를 견제, 감시하는 제도가 없거나 있어도 형식에 불과하다면 개선이 시급하다.

사법부의 양심회복, 서울대병원의 신뢰회복을 개인의 도덕성에 맡기는 것은 전근대적이다. 직책이 중요한 것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책임추궁이 따르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식의 위선과 거짓말은 반복될 것이다. 법적 책임 추궁과 함께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 선진사회이고 신용사회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는 상호 견제와 감시 시스템이다. 대통령이 파면당하는 극단적 사태까지 왔다는 것은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입법, 사법부도 언론도 견제, 감시에 실패했다는 반증이다.

대통령 파면과 구속은 3부의 장과 제4부로 불리는 언론에도 동반책임을 묻고 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바로 병원장, 부장판사, 검사장 등 조직의 일부가 살짝 보여준 부패한 모습이다. 촛불의 정신은 바로 이런 적폐를 이 기회에 정리하고 직책에는 막중한 책임감과 정의감, 양심이 따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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