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잘못된 언론 보도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2014년 4월16일 아침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침몰 사고가 그랬다. 충격과 슬픔을 더했던 ‘전원 구조’ 오보의 진실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1분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보도가 있었다면 한 사람이라도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디어오늘이 활동 종료를 앞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비공개 조사 내용을 입수해 당시 급박했던 상황과 언론 보도를 다시 구성해 봤다.

처음 배가 기운 건 오전 8시49분이었다.
단원고 학생 최덕하군이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119에 신고한 게 8시52분.
119 상황실이 최덕하군의 전화를 목포 해양경찰에 넘긴 게 8시54분.
세월호 강원식 항해사가 제주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 통화한 건 그보다 늦은 8시55분이었다.
해경 123정이 출동명령을 받은 건 9시2분. 헬기 511호가 출발한 건 9시10분이었다. (123정의 최대 정원은 50명, 헬기는 최대 6명을 더 태울 수 있을 뿐이었다.)

인근을 지나던 둘라에이스호가 구조요청을 받고 도착한 게 9시19분. 둘라에이스호는 105미터 길이의 대형 유조선으로 세월호에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지만 만약 세월호 승객들이 바다에 뛰어내렸다면 500명 정도는 충분히 올라탈 수 있는 규모였다.

YTN에 첫 보도가 나간 것도 9시19분이었다. 세월호는 9시20분에 이미 45도 이상 기울었다.

123정이 도착한 건 9시34분. 그리고 구명 보트를 내려 갑판에 기대 서 있던 기관부 선원 5명을 태운 게 9시38분이었다. 세월호와 진도VTS의 교신도 9시48분에 끊겼다. 이때까지도 세월호 선내에서는 “이동하지 말고 안전하게 대기해주시기 바란다”는 방송이 나왔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9시45분에도 계속됐다. 이준석 선장은 9시46분에 123정으로 옮겨 탔다.

9시54분에 세월호는 이미 64도 이상 기울어 좌현이 완전히 침수됐다. 수거된 사망자 핸드폰을 포함해 선내에서 발신된 메시지는 10시17분이 마지막이었다. 10시20분에 전남201호가 마지막 승객 40명을 구조한 것을 끝으로 10시31분 세월호는 완전히 뒤집힌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그 급박한 순간에 계속됐던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오보였다.

KBS는 10시14분에 “해경 관계자는 침몰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1~2시간 안에 모든 인명 구조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한 데 이어 10시30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조가 된 상황”이라는 해경 항공기 부기장의 인터뷰를 내보낸다. 그리고 10시47분부터 11시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해군, “탑승객 전원 선박 이탈… 구명장비 투척 구조 중””이라는 자막을 내보낸다.

“전원 구조” 오보는 MBN과 MBC가 거의 동시에 내보냈다. MBN이 11시1분7초에 “단원고 측 “학생 모두 구조””라고 자막을 내보냈고 MBC가 11시1분26초에 “안산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MBC는 12시45분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분들도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12시48분까지도 “승객 대부분이 구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오보를 계속 내보냈다.

이 때는 배가 완전히 뒤집혀서 급격히 가라앉고 있었고 현실적으로 에어포켓이 아니라면 이미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었지만 방송에서는 근거 없는 낙관적인 보도가 계속됐다.

전원 구조 오보 이전에도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쏟아졌다. 보도 시간을 보면 연합뉴스에서 최초 보도하고 KBS와 MBC, SBS 등의 지상파 방송사들이 그대로 받아쓰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3차 청문회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세월호 특조위는 이날 오전 오보의 확산 경로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가 오전 9시55분, 승객 120명을 구조했다고 보도하자 MBC와 SBS가 10시6분, KBS는 10시9분에 방송을 내보낸다. 이어 연합뉴스가 10시17분에 190명을 구조했다고 보도한 뒤 KBS와 MBC가 10시21분에 방송을 내보내고 SBS는 10시42분에 따라간다. 실제로 구조 인원은 최대 83명을 넘지 않았을 거라는 게 세월호 특조위 분석이다.

▲ '전원 구조' 오보 이전 KBS 보도. 최민희 전 더민주 의원실 자료.
승객들에게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선내방송이 나오고 있다는 보도를 처음 내보낸 곳도 연합뉴스였다. 연합뉴스 보도는 10시8분, KBS는 10시12분, MBC는 10시13분, SBS는 10시43분에 같은 내용의 방송이 나갔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방송은 나오지도 않았고 오히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이후에 선장 등이 탈출하고 배는 이미 전복되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전원 구조’를 자막이 아니라 공식 보도로 내보낸 것도 연합뉴스가 11시25분, KBS와 MBC가 각각 11시29분, SBS는 11시32분이었다.

전원 구조 오보의 출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세월호 참사 직후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사에 따르면 MBN은 단원고 강당에서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이 말하는 걸 듣고 기사를 내보냈다고 밝혔는데 이 MBN 기자는 세월호 특조위 조사에서 말을 바꿨다. MBC는 서울시경찰청 기자실에서 MBN 기자의 통화 내용을 듣고 단원고 현지 취재 중인 기자에게 확인을 했다고 밝혔으나 단원고에서도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였다. MBC는 심지어 팽목항 현장에 나가 있는 목포MBC 기자가 “전원 구조가 아닐 수도 있다”고 거듭 보고한 뒤에도 ‘전원 구조’ 자막을 계속 내보냈다.

▲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MBC 보도. 최민희 전 더민주 의원실 자료.
최근 미디어오늘이 만난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세월호 특조위는 최근 KBS와 연합뉴스 등 기자들을 상대로 진술조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KBS 조아무개 기자는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보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술했고 연합뉴스 조아무개 기자는 “9시20분 목포해경 상황실에 도착해 해경 직원에게 들었다”고 진술했다. 연합뉴스 기자는 구조 인원 보도는 본인이 취재한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합뉴스 기자의 진술은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많다. 실제로 특조위 조사에 따르면 목포해경 상황실은 직접 구조 현황을 파악한 게 아니라 YTN 보도를 보고 상황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120명 또는 190명 등의 보도는 해경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선내 방송이 있었다”는 보도와 관련, 연합뉴스 기자는 “해경 123정의 방송을 잘못 전달했다”고 진술했으나 선외 방송을 선내 방송으로 오해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특조위의 잠정 결론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이나 경찰 윗선에서 누군가가 언론에 잘못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크지만 기사를 쓴 기자들이 취재원 보호라는 이유로 함구하고 있고 특조위 조사도 여기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이대로 가면 세월호 참사 특조위는 이달 말 사실상 강제 해산된다. 정부가 잡은 활동 종료 시점이 이미 지난 6월 말로 끝났고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추가 3개월을 더해 이달 말이면 모든 지원이 끊는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일부 조사관들은 강제 해산 이후에도 출근 투쟁이라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석 달 가까이 급여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데다 조사 협조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추가 조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조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익명의 제보자는 “전원 구조 오보도 심각했지만 탑승객 전원 선박 이탈 등의 오보가 계속되지 않았다면 사고 직후 좀 더 적극적인 구조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면서 “팩트 확인을 제대로 못한 언론의 잘못도 크지만 해경 또는 경찰 윗선에서 잘못된 정보를 흘렸다면 정확하게 실태를 파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텐데 이대로 묻어두고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경의 지휘·보고라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였지만 잘못된 언론 보도로 구조에 심각한 혼선을 불러온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믿을만한 고위 관계자가 건넨 정보가 아니었다면 여러 기자들이 그렇게 확정적으로 숫자를 받아썼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연합뉴스 기자의 취재원이 누구였는지는 반드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특조위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보자는 “급박한 순간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렸을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세월호 침몰 전후 언론 보도를 면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제보자는 “특조위가 이런 식으로 강제 종료되면 ‘전원 구조’ 오보 등의 숨은 진실을 영원히 밝힐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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