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한껏 뿌듯한 표정으로 문재인 전 대표가 선언했다. 16일 열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7차 포럼’의 주제는 ‘성평등’이었다. 이 자리에서 문 전 대표가 던진 첫마디다. 그는 페미니스트 선언과 함께 한 사람의 인간, 여성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을 이야기했고, 자신의 딸도 경력단절여성이라 말했다.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무지했다고 고백했다.

현장에는 이미 프린트된 기조연설문이 배포되어있었다. 연설문을 훑어보았다. 좋은 말투성이. A4 두 장을 꽉꽉 눌러 채운 연설문에 나열된 약속은 십수 개였다. 성평등을 위해선 무엇이든 다 해내겠다는 의지인지, 핵심이 무엇인 줄 모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기조연설의 내용 중 내 가슴을 뛰게 한 부분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 선언한 한 문장뿐이었다.

조곤조곤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던 행사장 안에 떨리지만 단단한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문재인 전 대표님 이야기 들어주십시오. 저는 여성입니다. 그리고 동성애자입니다.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기총에 가셔서 차별금지법 반대하고 동성혼 할 수 없다고…"

진행자들은 기습발언한 이를 제지하러 나섰고 연단 위에서 문 전 대표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 연달아 말했다.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릴게요” 그 한마디에 갑자기 청중들은 '나중에'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중에”

▲ 장은선 닷페이스 에디터.
▲ 장은선 닷페이스 에디터.
기습발언한 이의 말대로 포럼 3일 전 문 전 대표는 기독교계 관계자들을 만나 차별금지법 반대 의사를 밝혔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문재인 전 대표가 비서실장으로 있던 노무현 정부의 공약이었다. 당장 2012년 대선으로만 돌아가 보아도 문 전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자기 부정인 셈이다.

1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나중’으로 밀려온 성소수자의 인권 앞에 문 전 대표는 또다시 ‘나중’을 말했다. 이들에게 이 ‘나중'이라는 소리가 어떻게 들렸을까.

잠깐의 소란 후 장내가 정리되자 청중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나중에'를 연호한 이들의 박수다. 그 박수가 기습시위를 한 이들을 향한 연대의 박수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장내 소란을 잘 정리한 문 전 대표에게 보내는 응원과 지지의 박수였다. 그렇게 문 전 대표는 ‘약자가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마지막 연설문 내용을 읽어나갔다.

행사 진행 측은 ‘나중에’ 발언 자리를 만들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가 하늘님이 발언했다. 그리고 이에 문 전 대표가 답했다.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을 만들겠느냐는 질문에 문 전 대표는 에둘러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차별금지조항에 관해 설명했다. 동성혼 합법화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리곤 개인의 견해가 아닌 사회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라 덧붙였다.

‘나중에’ 발언 기회를 드린다던 문 대표의 답은 결국 성소수자의 인권은 ‘나중에’ 챙기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떠나고 객석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기습 발언을 한 이들에게 다가가 "혼자 튀고 싶어 그러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사회는 여성 63.9%%, 성소수자의 84.7%가 자신의 정체성을 이유로 비난받을까 두려움을 느끼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니! 그 선언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행사장을 떠난 후 허무함이 밀려왔다.

이 페미니스트 선언은 틀렸다. "여성이고 동성애자인 제 평등권을 반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까?”는 외침처럼 성소수자의 인권은 쏙 빼놓은 채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은 어불성설이다. 한 사람의 인권을 반으로 쪼개거나 ‘나중’으로 미룰 순 없다. 나중은 없다. 문 전 대표는 지금 여기서 목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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