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도 좋고 용기도 좋은데 안 되는 일이라고 했어요. 일개 형사반장이 무슨 힘이 있다고 사건을 뒤집느냐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듣고 나중에는 수사비도 다 끊어버려서 내 돈으로 수사를 했어요. 다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죠. 그런데 결국 계란으로 바위 깼잖아요.”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 웃으며 말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재조명 받으면서 황 반장을 찾는 언론도 많아졌다. 황 반장이 없었다면 살인범으로 몰렸던 최성필씨는 끝내 무죄를 선고받지 못했을지 모른다. 최씨는 지난해 11월 16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은 최근 영화 <재심>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황 반장은 박상규 기자, 박준영 변호사 등이 진행하는 ‘재심 프로젝트’의 숨은 조력자다. 그는 삼례 나라슈퍼 3인조 재심도 도왔다. 살인강도범으로 몰렸던 3인조도 재심을 통해 17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 이들은 ‘셜록’ 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셜록은 기자-변호사-전직 형사가 결합된 진실 탐사 그룹이다. 제대로 된 언론이 필요하다는 절실함도 셜록 합류 결정에 한몫했다. 23일 서울 용산에서 황 반장을 만났다. 

▲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사진=박상규 제공
“미안하다. 내가 너를 풀어주고 싶었는데”

2015년 4월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너를 풀어주고 싶었는데…” 황 반장이 최씨를 만난 첫 자리에서 말했다. 최씨는 아내와 젖먹이 아이와 함께였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두 사람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씨는 2000년 8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재판부는 10년 형을 선고했다. 당연히 변호사를 구해야했지만 돈이 없었다. 당시 최씨의 나이는 16살. 배달 일을 하고 있었다. 

황 반장이 이 사건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건 2003년이다. 그해 6월에는 새로운 용의자 김아무개씨를 붙잡았다. 김씨는 네 차례나 자신이 택시기사를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진술도 사건과 딱딱 들어맞았다. 범행 직후 김씨를 숨겨 준 친구는 다섯 차례나 자백을 했다. 자필로 진술서도 썼다. 

“저는 지금도 그 아이를 미워하지 않아요. 그 사람은 저를 만나는 순간에 처벌을 받으려고 각오가 돼 있었어요. 경찰서에 같이 온 엄마, 할머니, 이모, 외삼촌 등 친척들 앞에서 자백을 했어요. 경찰서가 아주 초상집이었다니까. 걔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건 검사에요.”

“네 번 자백한 범인 풀어주려니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검찰은 황 반장에게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가져오라”고 했다. 사건이 벌어진 지 3년이 흐른 뒤였다. 김씨는 흉기를 자신의 집 화단에 묻은 다음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자백을 해도 구속이 안 되자 김씨는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뒤 황 반장은 파출소로 발령된다. 1976년 경찰이 돼 수 십 년 간 수사 부서에서 일한 그에게 파출소 발령은 수사에서 손을 때라는 신호였다. 그는 “내가 잡은 애가 범인이 분명한데, 분통이 터졌다”고 말했다. 황 반장은 2014년 파출소에서 정년  퇴임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미쳤다는 소리였다. 살인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경찰 관계자들은 훈장과 상금을 받았다. 검찰은 최씨를 구속했고 재판부는 최씨에게 10년을 선고했다. 이를 뒤집는다는 건 경찰, 검찰, 재판부가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약촌오거리를 마음에서 지우려고 마음먹었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를 감옥에서 꺼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네 차례나 자백을 한 김씨를 놓쳤다는 허탈함 등이 뒤섞였다. 김씨와 더불어 자백을 했던 임아무개씨는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황상만 반장과 박준영 변호사. 사진=박상규 제공
기자+형사+변호사의 새로운 저널리즘

퇴임을 2년 앞둔 2012년, 최씨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황 반장을 찾아왔다. 관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최씨도 온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황 반장은 결국 박 변호사와 함께 재심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무죄를 이끌어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 변호사-기자와 한 팀이 돼 셜록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여기에는 언론에 대한 아쉬움도 한 몫 했다. 고마운 기자도 많았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끝까지 추적하지 않았다. 

“김씨가 자백했던 날, 발 디딜 틈 없이 기자들이 많이 왔어요. 그런데 구속이 안 되니까 싹 빠졌죠. 그 이후에는 필요할 때만 찾더라고요. 물론 언론사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걸 알지만 줄기차게 취재를 해줬더라면 좋은 결과가 빨리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래서 황 반장은 “하나의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는 프로젝트”에 결합하게 됐다. 변호사와 형사가 함께 하는 저널리즘은 어떤 모습일까. 황 반장은 법리-실무-표현의 조합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변호사나 기자가 할 수 없는 ‘사건 실무’를 담당할 수 있다고 했다. 가령 삼례 3인조 사건의 현장검증 동영상을 보고 황 반장은 ‘엉터리’ 라고 말했다. 현장검증 절차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장검증은 증거로 작용하지 못한다. 환갑을 넘긴 황 반장은 “기록만 봐도 어떻게 수사를 했는지 훤히 보인다”고 말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도, 삼례 3인조 사건도 기록이 모두 엉망이었다. 조작했기 때문이다. 

인터뷰 말미, 황 반장은 억울한 최씨를 10년이나 옥살이시킨 검사가 최씨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 십 년간 ‘법질서’를 강조하는 조직에 있었던 전직 경찰은 “(검찰이) 확정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사건을 뒤집는 순간 법질서가 교란된다고 하더라고요. 사법질서, 그게 인권보다 중요한가요?”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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