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행태로 촉발돼 대한항공 전반에 대한 편법 및 법률 위반 사례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세관당국 인사가 대한항공 측에 좌석 변경 편의를 요청한 정황이 나왔다. 대한항공 측은 좌석 배치 변경 요청 사항을 실무진에 통보했고 실제 좌석 변경이 이뤄졌다. 항공사를 감독 감시해야 하는 세관이 오히려 편법을 자행한 것이다.

지난해 3월 22일 대한항공사 인천국제공항 수하물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최아무개씨는 “인천공항세관 SEAT ASSIGN RQST입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인천공항 좌석 배치 총괄 담당자에게 보냈다. ‘SEAT ASSIGN RQST’는 좌석 배정 요청이라는 뜻이다. 최씨는 이메일에서 “인천공항세관 감시과장으로부터 아래와 같이 SEAT ASSIGN RQ를 부탁 받은 바 검토 후 조치 부탁드립니다”라고 썼다. 이어 최씨는 인천공항세관 감시과장으로부터 받은 비행 예약 정보를 공지했다.

‘인천공항세관 감시과장’이 좌석 배정을 요청한 승객 이름은 원아무개, 김아무개, 김아무개, 윤아무개 4명이다. KE901 비행기편으로 2017년 3월 2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파리드골공항으로 간다고 돼 있다. 비행정보를 명시한 티켓팅 번호는 4******번이라며 대한항공 직원 최씨는 “가능하면 꼭 좀 FIRST ROW로 SEAT ASSIGN 부탁드립니다”라고 썼다. FIRST ROW는 퍼스트, 비지니스, 이코노미 등 3등급으로 나눠진 좌석 중에서 등급마다 가장 편한 자리로 분류되는 좌석이다.

최씨의 메일을 받은 인천공항 자리 배정 총괄담당자(ICNKK EDITING)는 “요청사항 아래와 같이 반영하였고, INF 예약 유입 시 자리 변경 가능성 있음을 승객에게 안내 부탁드립니다”라고 회신했다.

INF는 승객 중 24개월 미만 영유아를 동반한 승객에 우선적으로 배치되는 좌석을 뜻한다. 최씨는 ‘인천공항세관 감시과장’으로부터 이코노미석 중 가장 편한(FIRST ROW) 좌석으로 배치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실무진에 통보하자 영유아 동반 승객에게 우선적으로 자리를 예약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 인천국제공항 수하물서비스담당 최아무개 담당자가 2017년 3월 인천 세관 공무원의 요청이라며 전달한 지시 메일.
▲ 인천국제공항 수하물서비스담당 최아무개 담당자가 2017년 3월 인천 세관 공무원의 요청이라며 전달한 지시 메일.
답신 메일에는 자리 배치 변경 요청을 받은 사람의 좌석을 30D부터 30G에 배치했다고 나와있다. 항공사 관계자는 “메일에 나와 있는 KE901편은 항공 기종이 에어버스 380이고 30D부터 30G 자리는 3등석인 이코노미 자리 중 최고로 편한 자리에 해당한다”며 “비행기 기종이 넓어서 해당 자리는 다른 비행기 기종의 퍼스트 클래스의 넓이와 버금간다”고 말했다.

특히 INF 좌석은 24개월 미만 영유아들의 안전시트를 놓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아이들과 여행하는 승객에게 우선 예약의 권리가 주어지는데 세관 공무원은 자리가 편한다는 이유로 해당 좌석을 요청하고 대한항공이 좌석을 내어준 것이다.

항공사 관계자는 “항공기 안에서도 편한 곳이 있고, 냄새가 나는 곳이 있는 곳 등으로 나눠져 있는데 메일을 보면 티켓팅시 부여된 노선별 비행정보와 실제 좌석이 변경된 위치를 비교해보면 이코노미 3등석의 최고 편한 자리를 내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같은 자리 배치 변경 요청은 좌석특혜에 해당한다. 지난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지고 난 후 이같이 좌석을 변경하는 것은 보안상 문제가 커질 수 있어 관행상 항공사 직원들끼리 좌석 배치를 변경시키는 것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9. 11 테러 당시 티켓팅상 부여된 번호의 비행정보와 사망자의 정보가 달라 사상자 파악에 애를 먹으면서 이후 항공업계에서도 좌석 배치 변경 관행에 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항공사 관계자는 “공항 직원끼리도 이런 관행을 지양하고 있는데 세관이나 정부 관계자 등을 비일비재로 좌석 변경을 요청한다. 이들은 가족 여행 등 사적으로 항공을 이용하면서 티켓팅을 한 후 항공사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좌석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공항에 일상적으로 전화를 하기 때문에 이들의 휴대폰 착신번호까지 저장돼 있다”고 비판했다.

조양호 회장 일가가 세관을 따돌리고 해외에서 들여온 물품을 들여올 수 있는 이유도 세관 측이 눈을 감아주고 좌석 변경 등의 편의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메일 속 ‘인천공항세관 감시과장’으로부터 자리 배치 요구를 받고 승인을 요청했던 대한항공 직원 최씨는 취재 요청을 받자 전화를 끊고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시 인천공항세관 감시과장으로 근무했던 A씨는 “김영란법 문제 때문에 그런 요청을 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차 확인을 요구하는 질문에 A씨는 “좌석 변경 요청을 한 적도 없고, 대한항공 직원 최씨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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