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좀 괴롭히세요. 아유, 참 실망입니다.”

지난 4월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TV토론에서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향해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의 ‘평양대사’ 발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안 후보는 날카롭게 반응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안철수·유승민 대표는 경제 분야에선 상당한 접점을 보였지만, 김대중 정권을 계승한 국민의당 ‘햇볕정책’에 대한 입장 등 안보 분야에선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했다.

지난 10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론이 제기됐을 때 유승민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지금 같은 안보 상황에서 과거 햇볕정책을 버리고 강한 안보를 지지하겠다고 하면, 또한 특정 지역에만 기대는 지역주의를 과감히 떨쳐내겠다고 한다면 그런 분들과 통합 논의를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조건을 달았던 것도 국민의당과 합당 추진 과정에서 불거질 국민의당 내분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안 대표와의 회동과 관련해 “안 대표와 만나서 ‘당신과 내가 해보고 싶은 정치가 있다면 극복해야 할 게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며 “안 대표도 고민 많을 것이지만 뜻이 맞으면 (통합)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통합포럼 '양당 정책연대의 과제와 향후 발전방안' 세미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통합포럼 '양당 정책연대의 과제와 향후 발전방안' 세미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안철수 대표는 26일 YTN ‘호준석의 뉴스人’과 인터뷰에서 “바른정당과 경제 정책은 놀랄 만한 수준으로 같다”면서도 햇볕정책에 대한 인식 차이에 대해선 “충분히 서로 논의하고 설득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라는 불확실한 답변을 내놓았다. 향후 두 당의 합당 과정이나 합당 후에라도 언제든 대북정책이 ‘뇌관’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전술핵 재배치와 관련해서도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계속 상반된 입장을 보여왔다. 유승민 대표는 최근까지도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가 우리 정부의 전략적 카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안 대표는 “미국의 저항이 사드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클 것”이라며 “국내 전술핵 재배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양 정당의 정체성과 철학이 충돌하는 지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호남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 합당 반대파들의 반발이 큰 건 당연히 예견됐던 결과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뉴스의 광장’에 출연해 “대북 문제만 봐도 바른정당은 대화와 타협, 교류 협력보다는 강경 정책을 고수해서 우리와 정체성, 혈액형이 다른데 어떻게 통합을 하느냐”며 “안 대표는 새정치와 제3당을 주장했다가 중도개혁, 극중주의, 공화주의로 바뀌고 이제는 보수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자신의 가치, 보수를 지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정체성을 존중하고 반대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안 대표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밝히지 않고 국민과 당원, 국회의원들을 속이고 바른정당에 끌려가면서 보수대야합을 추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도 cpbc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안 대표의 바른정당과 합당 추진에 대해 ”정치적·역사적 의미에서 이른바 보수 통합, 적폐 통합으로 가는 것”이라며 “큰 의미에서 우리 개혁세력의 분열이라고 보고 적폐세력을 강화시켜주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안 대표는 합당 반대파 의원들의 이 같은 반발에 대해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해서 세부적인 내용을 하나씩 짚어가 보면 의외로 굉장히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정책의 세부적인 내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서로 가지고 있었던 많은 오해가 풀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국민의당 의원들 모임인 ‘나쁜투표 거부운동본부’가 지난 25일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한 전당원 투표 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한 심리가 이날 진행됐다.

박지원 의원은 “법원의 투표 금지 가처분신청 인용 여부와 상관없이 투표 거부 운동을 해 나갈 것”이라며 “만약 당원 여러분께 재신임 투표 전화가 오면 반드시 끊어 주시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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