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친위부대’였던 원세훈 국정원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은 ‘MB 지키기’ 최전방 공격수였다. 이 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사람이면 여야 정치인, 보수·진보 학자·언론인·문화예술계 인사 등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제압’ 공작을 펼쳤다.

‘원세훈 국정원’은 주로 당시 야당·진보 인사를 표적으로 삼았지만, 홍준표·원희룡·권영세 등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여권·보수 인사를 상대로도 댓글 공작을 벌인 사실이 확인됐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25일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로부터 ‘MB 정부 비판세력 제압활동’ 조사 결과를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보고 내용에 따르면 국정원의 첫 타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국정원은 ‘盧 자살 관련 좌파 제압논리 개발·활용계획’ 등 문건을 작성해 심리전을 폈다.

국정원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결국 본인의 선택이며 측근과 가족의 책임’, ‘자살과 범죄는 별개로 수사 결과를 국민 앞에 발표해야’ 등 내용을 담은 토론글(300여 건)과 댓글(200여 건)을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게시했다.

[한겨레] '노무현 서거' MB비난 거세자…_측근·가족 책임_ 집요한 공작_정치 03면_20170926.jpg
경향신문은 “친노·야당의 비판에 대해서는 ‘정치 재기를 노린 이중적·기회주의적 행태’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대해서는 ‘대통령 재임 중 개인적 비리를 저지른 자연인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유포했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댓글 공작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지시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은 2009년 5월29일 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이 좌파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알릴 수 있는 논리를 개발·활용하라”고 지시했다.

한겨레는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가 전국적으로 달아오르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노 전 대통령이 숨진 지 일주일도 안 돼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정략적 악용을 제압하고 대국민 선동을 차단’하기 위한 대응 논리 개발을 주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심리전단은 원장 지시 나흘 만인 6월1일 ‘노 전 대통령 자살 이후 국민화합 유도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를 퍼뜨리기 시작했고, ‘노 자살 관련 좌파 제압 논리 개발·활용 계획’(6월2일), ‘노 자살 관련 좌파매체 분열상 활용 사이버심리전 전개’(6월4일) 계획을 잇따라 보고·실행했다.

MB 건드리면 보수 정치인도 가차 없이 공격

이명박 정부 국정의 심리전 실태를 보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한 인사에게는 여야를 막론하고 저인망식으로 댓글 부대가 달라붙었다.

국정원은 송영길 인천시장이 2011년 2월 “인천시를 대북평화 전진기지로 조성하겠다”고 발언하자 종북행위로 규정하고 댓글 공작을 벌였다. 김황식 총리 후보자를 비판한 박지원 의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도 댓글 공격을 받았다.

국정원은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조국 민정수석을 “교수라는 양의 탈을 쓰고 체제변혁을 노력하는 대한민국의 늑대”로 규정하고 공격했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한 이상돈 당시 중앙대 교수도 “적의 노리개가 된 보수논객”, “박쥐 같은 인간”이라며 공격했다.

손학규·정동영·천정배·최문순·유시민·김재윤·김진애 등 야권 인사들은 물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사쿠라”라고 비난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을 놓고는 “이완용과 같다”고 했다.

[한겨레] _홍준표, 아군에 총부리_ _이상돈, 박쥐_ 여당·보수학자도 예외 아니었다_정치 03면_20170926.jpg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 당시 여당·보수 인사들도 공격 대상이 됐다. 국정원은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현 자유한국당 대표)을 겨냥해 “자꾸 총부리를 아군에 겨누고 있다. 그러다 아군이 전멸하면 홀로 정치하려는가? 적군 앞에선 단합할 땐 해야지, 사돈 남 보듯 집안 흉을 봐서 뜨려는 구시대적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는 글을 퍼뜨렸다.

한겨레는 “원세훈 전 원장은 2009년 5월 ‘우파 위장 좌파교수 이상돈 비판 심리전 전개’라는 지시를 직접 내렸다”며 “보수논객으로 분류되던 이상돈 중앙대 교수(현 국민의당 의원)가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에서”라고 전했다.

국정원 개혁위 발표 내용에 따르면 국정원은 중앙대 누리집과 트위터 등에 “박쥐”, “좌익 노리개” 등의 글을 퍼뜨렸고, 이 교수 개인 이메일로 ‘카멜레온 정치교수는 자진사퇴하라’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이상돈 의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국정원의 이런 활동을 짐작하고 있었고, 언젠가 밝혀질 걸로 알았다”며 “원 전 원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매주 독대했으니 (제압 활동을) 보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또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현 창원시장)에게는 “보온병으로 꺼져가는 본인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돌출발언”, 원조 소장파인 원희룡 의원(제주도지사)에게는 “애국인사들에게 언제든 뒤에서 칼을 꽂을 사람”이라는 비난글을 유포했다. 윤창중 문화일보 논설위원(전 박근혜 청와대 대변인)에 대해서는 “보수라며 한나라당과 대통령을 분리하려고 선동하는 글을 보면 구역질 난다”고 했다. 친박계 권영세 당시 의원도 트위터 공작 리스트에 올랐다.

변희재·어버이연합 등 극우세력 돈줄 된 국정원

국정원은 이 전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사회 각계 인사들을 공격하고 폄훼하는 데 보수 인터넷 매체와 일간지 광고, 급조한 보수단체를 앞세운 가두집회·성명 등을 총동원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대대적인 온·오프라인 공작을 통해 국정원이 MB 정부의 ‘방패막이’로 직접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정원 개혁위가 적폐청산 TF로부터 보고받아 공개한 ‘정치인·교수 등 MB 정부 비판세력 제압활동’ 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원은 원세훈 전 원장 취임 즈음에 창간한 극우 인터넷 매체 ‘미디어워치’를 적극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워치는 극우 논객 변희재씨가 대표를 역임한 곳이다.

[경향신문] 보수논객 변희재의 '미디어워치' MB정부 '방패막이'로 활용_종합 03면_20170926.jpg
국정원은 2009년 2월 미디어워치 창간 재원 마련부터 조언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해 5월 ‘미디어워치, 운영실태 및 활성화 지원방안’을, 8월엔 ‘미디어워치 활성화 중간보고’를 차례로 지휘부에 보고했다. 2012년 3월에는 청와대에 ‘건전 인터넷 매체(미디어워치) 경영난으로 종북매체 대응 위축 우려’라는 내용을 보고하기도 했다.

국정원 개혁위는 당시 국정원이 전국경제인연합회·삼성 등 26개 민간기업과 한국전력공사 등 10개 공공기관에 대해 미디어워치에 광고 지원을 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이에 미디어워치가 2009년 4월부터 2013년 2월 사이 광고비 4억여 원을 수주했다는 것”이라며 “변씨와 미디어워치는 MB정부에는 우호적이고 반대 측에는 비판적인 기사로 화답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국정원 개혁위는 또 다른 극우매체 뉴데일리가 2009년 3월20일 “좌파 교수 비리 의혹을 기사화해 달라”는 변씨 요청에 따라 ‘한예종 사업 좌파 나눠먹기 의혹’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고 밝혔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20여일 앞둔 5월13일에는 한명숙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비난하는 미디어워치 호외판 10만부가 발행·배포됐다고 국정원 개혁위는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변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나는 국정원과 아무 관계가 없다. 광고 수주는 내가 직접 업체 리스트를 들고 다니며 한 것이고 (개혁위 발표는) 국정원 직원이 실적을 위해 허위보고한 것”이라며 “한명숙 후보 관련 호와판도 장사가 될 것으로 판단해 매체 홍보를 위해 뿌린 것”이라고 부인했다.

국정원은 종합일간지도 심리전에 이용했다. 2010년 11~12월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한국위기관리연구소·국제외교안보포럼 등 보수단체 명의로 조선·중앙·동아·국민·문화일보 등 5개 신문사에 시국 광고를 게재했다.

경향신문은 “당시는 2010년 11월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진보·보수 진영 간 대립이 커질 때였다”며 “신문에 실린 ‘종북세력 햇볕정책 비판’ ‘이정희, 정동영, 송영길 북 옹호발언 비판’ ‘김대중·노무현 정부 햇볕정책 비판’ 등의 광고비 5600만원은 국정원 예산으로 집행됐다”고 밝혔다.

중진공 채용비리, 최경환 외에도 4명 더 있다

201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의 인턴 직원 외에도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에 외부 청탁으로 입사한 직원이 4명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제대로 수사되지 않아 성적 조작 사실이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한겨레가 중진공 내부 서류 등을 확보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3년 합격자 중 안○○와 최○○ 이름 옆에 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름이 적혔고, 이○○ 이름 옆에도 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름이 적혔다.

정○○ 이름에는 19대 의원이었던 전 민주당 의원의 이름이 붙었다. 한겨레는 “모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로 (최경환 인턴 부정합격에 중진공 탈락한) 조씨 외에 27, 28, 29, 30등도 피해자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황씨(최경환 인턴)는 논란이 일자 사표를 냈지만, 또다른 중진공 청탁 합격자들은 아무 일 없었던 듯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최경환 인턴 외 중진공 채용청탁자 4명 더 있었다_종합 04면_20170926.jpg
한겨레는 “2012년 신입 공채 때도 성적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며 “당시 부정 합격한 3명의 사원은 지금도 중진공에서 근무 중이다. 이들 때문에 발생한 억울한 탈락자도 조씨처럼 다른 부정 합격자에 의해 탈락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본인의 실력 부족을 탓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가 국회 각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실 16곳을 통해 정부 지정 공공기관 332곳 가운데 313곳(94.3%)으로부터 채용 관련 감사 자료들을 받아 분석한 결과,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특혜를 입은 합격자가 최소 578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겨레는 “하지만 이런 부정행위가 드러나 합격 내지 임용이 취소된 이들은 14명(2.4%)뿐이었다”며 “회사 안팎 감사 기구가 해임 처분을 통보했거나 검찰 수사가 착수된 뒤였고, 불공정 합격자 100명 중 97명은 채용 비리에 따른 법적 책임은커녕 신분상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313곳 가운데 2013년 1월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만 외부 감사기구들로부터 ‘부적정한 채용’으로 지적받은 곳이 58곳으로 파악됐다. 분석 대상의 18.5%를 차지한다.

한겨레는 “이는 최소치다. 언론 보도 뒤에야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해 사실로 확인한 부정채용 사례도 있다”면서 “여전히 숨은 사례가 많다는 추정이 지나치지 않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수년에 걸쳐 이뤄진 채용 비리를 구조화된 설문지를 바탕으로 전수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부적정한 채용이 있었던 58곳 중 37곳(64%)에선 심각한 부정이 이뤄졌다. 지원자 또는 제3자가 채용 청탁을 했거나 성적증명서, 경력증명서 등 문서를 위·변조했다. 채용기관의 사장이나 고위 간부의 부당한 지시와 개입으로 점수 조작, 전형 기준과 절차 변경, 채용 인원 증대 등 적극적인 불법행위도 있었다.

한겨레는 “부정 채용은 도덕적 해이를 넘어, 심각한 범죄 행위이지만 불공정한 게임의 결과를 ‘원인 무효화’해 바로잡는 경우가 드물다”며 “공공기관 채용 비리의 대부분이 지원자 본인의 서류 조작보다는 해당 기관장이나 고위 임원의 인맥, ‘힘 있는 제3자’의 청탁, 낙하산 인사 등 정치적 거래에서 비롯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원자가 허위 서류를 제출하는 등 본인의 귀책사유가 확인되고 그 행위가 채용기관이 공지한 ‘합격 취소’ 요건에 부합해야, 그것을 근거로 ‘임용 취소’ 처분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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