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혁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혁신 앞에 중앙일보 기자들은 갈 곳을 잃었다. 이들은 ‘디지털 퍼스트’란 흐름 앞에 혁신의 적으로 취급되며 걸림돌 취급을 받고 있다. 해야 할 일은 많아졌는데 대우는 전보다 박해졌다는 내부 평가도 나온다. 조만간 중앙일보 기자들과 개발자의 대거 이탈이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사진=게티이미지. 디자인=안혜나 기자.
▲ 사진=게티이미지. 디자인=안혜나 기자.
출발

2015년 9월21일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창립50주년 중앙미디어컨퍼런스에서 홍정도 중앙일보·JTBC 대표이사가 강조한 건 혁신이었다. 그는 이날 “마감 시간을 정하고 뉴스를 가둬두면 뉴스가치가 0으로 수렴 한다”며 디지털퍼스트를 선언했다. 홍석현 당시 회장은 향후 중앙일보 혁신을 가리켜 “미디어를 재정의 하는 작업이다. 종전의 공식을 무너뜨리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후안 세뇨르 이노베이션 미디어 컨설팅 그룹 파트너는 “전 세계 93%의 수입은 종이신문에서 나온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재해석과 혁신이 필요하다”며 “종이신문 내 콘텐츠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뉴스룸의 구조조정과 재편이 필요하다”며 “5명의 기자 당 1명의 개발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혁신은 시작됐다. 관건은 지면 중심의 편집국을 디지털에 맞게 어떻게 전면 개편하느냐는 것이었다. 200명이 넘는 거대한 조직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앙일보는 2015년 12월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를 디지털기획실장으로 영입하며 디지털 분야 개발자에 대한 대규모 채용을 시작했다. 이듬해 7월 이석우씨는 중앙일보 디지털 총괄을 맡으며 디지털전략의 전권을 쥐게 된다. 디지털서비스 기획·디자인·개발을 총괄하는 디지털기획실은 80여명 수준으로 꾸려지며 힘을 받았다.

중앙일보의 모델은 뉴욕타임스였다.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퍼스트는 “종이신문의 제약에서 벗어나 디지털 뉴스 생산에 가능한 모든 역량을 투여하는 것”으로 “뉴스룸의 마지막 작업은 디지털 뉴스 중에서 가장 훌륭한 뉴스를 선별해 다음 날 종이신문에 담아내는 일”이었다. 중앙일보는 이 같은 기준에 맞춰 변화를 시도했다.

불안

지난해 중앙일보는 EYE24팀이 주간3교대로 속보를 담당하고 에코팀이 바이럴을 담당하는 식의 변화가 이뤄졌지만 혁신의 사례로 보긴 어려웠다. 이윽고 지난 4월, 혁신의 실체가 등장했다. 중앙일보는 기자가 디지털기사를 생산하면 지면편집담당 선임기자격인 라이팅에디터가 디지털기사를 재가공해 지면에 싣는 방식을 선보였다. 목적은 ‘편집인력 최소화’였다.

지난 4월21일 중앙일보 노동조합이 발행한 노보에는 당시 경영진의 디지털혁신 설명회 이후 기자들의 ‘멘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병상 편집인은 디지털 전환의 명확한 지향점이 무엇이냐는 노조의 질문에 “기자들은 인사이트 있는 기사를 쓰면 된다”며 “신문을 버리자는 게 아니다. 디지털이 자리 잡으면 신문은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에게는 종이신문을 버리고 너희는 온라인매체 기자가 되라는 것처럼 다가왔지만 종이신문에 미래가 없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중앙일보 기자 ㄱ씨는 “디지털에서 좋은 콘텐츠를 쓰면 골라서 지면에 편집하겠다는 건데 실제로는 기자들이 디지털과 지면 기사를 같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만 늘어났다는 뜻이었다.

당시 이석우 디지털 총괄은 노조와 간담회에서 “모바일은 24시간 켜져 있다. 종이매체가 아닌 모바일에 적합한 콘텐츠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객마인드로 찾아나갈 것”이라 밝혔다. 이에 기자들은 노보를 통해 “기자들이 열심히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도 인정받기 힘든 구조가 문제다”, “현장 상황을 명확히 알고, 현장 이야기를 더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간극은 명확했다. “이제는 사용자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취재 기본기는 같더라도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지는 다르게 고민해야 한다. 기자들은 이제 동영상을 다루고 편집을 하고, 개발을 공부하고,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획을 해야 한다.” 이석우 총괄의 주장은 중앙일보 혁신의 대상이 사실상 중앙일보 기자들이라는 말과 같았다. 뉴욕타임스는 혁신보고서에서 ‘혁신의 적은 내부 기자들’이라고 지적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석우 사단’으로 입사한 개발자 ㄴ씨는 이와 관련해 “기자들이 편집국 디지털변화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자들이 힘들어하는 건 당연하다. 안 하던 걸 하면 낯설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던 6월1일. 중앙일보 노보 734호의 제목은 이랬다.

“기자의 미래…보이시나요?”

이날 노보는 “지난해와 올해 기자직군 4명, 디지털 인력 포함 10여명이 회사를 그만뒀다”고 전하며 “장기적으로 회사에서 기자직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는 안팎으로 중앙일보의 디지털퍼스트 전략에 따른 ‘진통’으로 비춰졌다. 기자들은 조직개편의 내용이 뭔지 서로에게 묻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황을 반복했다.

지난 5월 중순, 경영진은 기자경력관리강화 프로세스를 선보이며 ‘대중적 인지도, 전문성, 인사이트를 갖춘 스타 저널리스트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라 밝혔다. 그러나 기자들의 불안을 잠재울만한 대책은 아니었다.

▲ 서울 서소문 삼성생명일보 건물에 있는 중앙일보 로고.
▲ 서울 서소문 삼성생명일보 건물에 있는 중앙일보 로고.
등장

지난 6월22일, 오병상 편집인은 4월에 이은 2차 개편안을 내놓았다. 미리 완성되어 있는 여러 형태의 지면 탬플릿에 맞춰 기사를 넣는 식으로 지면제작 부담을 최소화해 기존 신문편집기자들을 디지털편집 분야로 투입하는 방안이 2차 개편안의 핵심이었다. 중앙미디어그룹 관계자는 “탬플릿 포 디지털, 디지털을 위한 탬플릿이 이번 조직개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중앙일보에선 5~6개의 탬플릿에 기사만 앉히면 지면이 완성된다.

중앙미디어그룹 관계자는 “4월 1차 조직개편이 인테이크(Intake, 일종의 취재파트)와 아웃풋(Output, 일종의 편집파트)의 분리에 중점을 맞춰 취재와 신문발행을 나누자는 취지였다면 2차 조직개편의 핵심은 탬플릿 도입이다. 탬플릿을 도입하면 신문제작에 들어가는 인력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애초 신문 제작은 지면편집담당 선임기자 격인 라이팅에디터 10명의 몫이었는데 탬플릿을 통해 이를 4명으로 줄이고 6명을 인테이크 파트로 보냈다.

중앙일보는 7월1일자로 하반기 조직개편안을 내놨다. 개편 목적은 ‘디지털 혁신 방향 정립과 혁신 추진 가속화를 위한 인테이크-커맨드(Command)-아웃풋 간 재정립’으로 편집파트라 할 수 있는 아웃풋이 편집국장이 아닌 편집인 산하로 편제 변경됐다. 아웃풋은 제작1담당과 2담당으로 나뉘어 1담당은 중앙일보 지면을 책임지고 2담당은 중앙일보 경제 및 머니섹션 등을 맡는다.

제작담당 산하에는 편집에디터, 라이팅에디터, 프린트편집데스크, 디지털편집데스크, 디자인데스크, 그래픽데스크, 비디오데스크를 구성했다. 디지털총괄은 디지털컨버전스팀을 신설하고 디지털기획실은 프로젝트 중심의 5개 팀으로 재편했다. 이 팀은 뉴스서비스/UX비즈니스/모바일서비스/버티컬서비스/영화콘텐트로 구성됐다.

중앙일보는 7월3일 지면개편까지 나섰다. 오피니언 면을 기존 5개면에서 6개면으로 늘렸고 종합1면은 6칼럼에서 5칼럼으로 바뀌었다. 지면 활자는 9.7pt에서 10.2pt로 커졌다. 무엇보다 이날부터 탬플릿이 지면제작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단신이 줄고 기사의 볼륨이 커졌다. 영국 가디언이 디지털 기사를 쓰면 자동으로 타블로이드판이 나오는 실험을 하긴 했으나 이처럼 탬플릿을 지면제작 전면에 사용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 볼 수 있다.

이성규 메디아티 미디어테크랩장은 “종이신문은 남겨두되 온라인을 중심축으로 이동시키는 전략”이라며 “독자들이 있는 곳에 자원이 우선 배치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탬플릿으로 가면 신문지면 특유의 레이아웃이 갖는 장점을 살리긴 어려울 것이다. 지면을 내는 사람들의 자부심이나 지면 편집의 가치들에 대한 인식도 이 같은 변화와 부딪히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일러스트=권범철.
일러스트=권범철.
혼란

중앙일보 기자들 가운데 디지털퍼스트를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존의 관습을 벗기까지 뉴스룸에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기자들은 혼란스럽다. 현재까지는 부정적 반응이 많다.

이번 조직개편을 두고 중앙일보 기자 ㄷ씨는 “신문지면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게 조직개편 핵심인데 지금까진 신문제작이 편집국에 있다가 보니까 계속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개편에선 아예 제작파트를 편집국에서 빼버렸다. 편집국장 지휘체계 밖이다”라고 평가했다.

ㄷ씨는 “사회부는 젊은 기자들이 많아서 디지털에 빨리 적응을 해서 편집에 잘 쓸 수 있게 작업을 잘해주고 있지만 전반적인 노동 강도는 개편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지면기사의 경우 (디지털기사의) 업데이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유형의 문제가 있다. 3000~4000자 글을 지면에 그대로 실을 수는 없다”며 기자들이 디지털 기사와 지면 기사를 따로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중앙일보 기자 ㄹ씨는 “노동 강도는 아무래도 계속 높아질 것 같다. 회사는 덜 중요한 건 버리자고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일이 늘 수밖에 없다”고 전한 뒤 “3개월마다 조직이 바뀌는 것에 대한 피로도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JTBC는 사람이 없어서, 신문은 디지털 하면서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부장급 이상 간부들도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중앙일보 기자 ㄱ씨는 “애초 이석우 총괄에게 기대했던 건 새 비즈니스모델이다. 디지털로 가야 하는 건 맞는데 여전히 매출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게 지면광고라 애매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의 고민도 있다. 개발자 ㄴ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혁신의) 방향성이 안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그거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정보도 얻어듣고 하는데 도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거고 앞으로도 뭘 할 건지 아직 정리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디지털퍼스트의 중심은 ‘기사의 수준’, 즉 ‘독보적인 중앙일보만의 기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3개월간 디지털 분야에서 차별화된 킬러콘텐츠가 있었는지 내부에선 회의적이다. 조회 수와 체류 시간 같은 숫자로만 기사가 평가되는 상황에서 기사의 수준이 담보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ㄴ씨는 “처음에는 과도기인가 싶기도 했는데 1년이 지났는데 이쯤 되면 과도기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아마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정도 되면 (개발자 사이에서도) 퇴사자가 생길 것”이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중앙일보 기자들 사이에선 “우린 탬플릿에 맞춰 기사를 찍어내는 기계가 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영국 가디언은 편집국 내에서 종이신문을 보면 감점을 준다고 한다. 이제 중앙일보에서도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 중앙일보 기자들의 현실은 머지않아 타사 기자들이 겪게 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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