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스, 오바마(Thanks, Obama)!’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자 관객들은 웃음이 터진다. 미국인들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풍자한 모습을 담은 해당 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대통령의 예능감은 그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오바마 전 대통령뿐 아니라 힐러리 전 후보도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를 흉내내며 예능감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예능감있는 모습은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자 스스로에 대한 홍보가 됐다. 


한국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일 방송된 JTBC ‘썰전’에 이어 12일 ‘SBS 대국민면접’에 출연했다. 문 전 대표가 출연한 ‘썰전’은 8.174%(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 기준), ‘대국민면접’은 7.3%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관심도가 높았다.

안희정 충청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JTBC의 ‘말하는 대로’에 출연해 15분 정도 가량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말하는 대로’의 경우도 이재명 성남시장이과 안희정 충남지사 모두 3.9% 시청률이 나와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JTBC ‘썰전’과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했다.

▲ JTBC '썰전'에 출연한 문재인 전 대표.
▲ JTBC '썰전'에 출연한 문재인 전 대표.
3월 초 방영되는 KBS ‘해피투게더’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 대선주자 5인이 함께 출연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정치인들이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홍보 효과를 누린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지난 18대 대선을 앞둔 시점에도 세명의 주요 대선주자들(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이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적이 있다.

지난 대선과 달라진 점이라면 정치인들의 예능출연이 TV프로그램을 넘어 모바일 콘텐츠까지 확장됐다는 것이다. 안희정 충청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SBS 양세형의 숏터뷰’영상에, 유승민 의원도 한국일보 SNS 콘텐츠 ‘대선주자 악플을 읽어봤다’에 출연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유니클로 히트텍’ 홍보 영상 패러디 등으로 모바일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 'SBS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지사.
▲ 'SBS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지사.
유력 정치인들의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한 홍보의 이유는 우선적으로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TV보다는 모바일에 익숙한 2030세대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과 달리 대부분의 방송국들이 모바일 플랫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바일 콘텐츠로의 확장이 이뤄지는 부분도 있다. 대선주자가 TV 프로그램 촬영 차 방문했을 때 모바일팀이 함께 붙는 식이다.

한 야권 후보의 캠프 공보담당은 “일단 방송촬영을 위해 대기하고 있으면 들이대는 식”이라며 “사실 두 개의 다른 형식의 촬영을 하려면 하나하나 섭외를 하는 게 맞는데, 조금 더 가벼운 모바일팀의 경우에도 당연히 촬영에 응하는 것으로 대하다보니 조금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고 밝혔다.

대중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어 vs 편집된 이미지로 홍보 수단에 불과

정치인의 예능출연은 정치에 대한 친근함을 증가시킨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안희정 충청지사 캠프 측은 예능 출연에 대해 “젊은 층에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기존에 후보가 가졌던 이미지뿐만 아니라 예능감을 가진 모습 등 후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모습을 유권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밝혔다.

대중적인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은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18대 대선 당시 정치인들이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후 세명 후보 모두가 지지율이 상승했다.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우 ‘SBS 양세형의 숏터뷰’ 출연 이후 호평을 받으며 지지율 상승 중에 있다.

▲ 지난 18대 대선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 지난 18대 대선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정치를 친근하게 만들고 정치인 개인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정치인의 ‘편집된 이미지’만을 전달한다는 점, 예능 프로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예민한 사안이나 갈등 등은 삭제되기에 정치인의 ‘홍보’로 전락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1시간 가량으로 편집된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아주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인이 제작자와 사전조율을 했을 가능성 등 만들어진 이미지만을 보여준다. 후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만을 강조하는 효과도 있다. 

신동진 MBC 아나운서는 ‘SBS 대국민면접’에 대해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방송을 통해 후보자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짧은 시간동안 유권자가 후보자에 대해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객관성 측면에서도 가급적 편집 없는 생방송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나 패널에 의해 주관적 감상이나 평가가 더해지는 것도 문제다. JTBC ‘썰전’의 경우 유시민 작가는 진보성향으로, 전원책 변호사는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데 정치인의 발언 뒤 덧붙이는 이들의 발언이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 '썰전'에 고정패널로 출연하는 전원책 변호사의 모습(왼쪽)
▲ '썰전'에 고정패널로 출연하는 전원책 변호사의 모습(왼쪽)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정치 예능에서 정치인을 뒷받침하는 패널들은 대부분 굉장히 자신의 정치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정치인과 이야기하며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내놓는데, 이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없이 시청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능 특유의 형식 안에서 예민한 사안에 대한 검증 없이 재미있는 장면이 이어지다보면 결국 정치인에 대한 홍보수단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시사평론가는 “이번 ‘SBS 대국민면접’의 경우 ‘정치인이 아니라, 패널들을 먼저 검증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떤 기준으로 패널을 정했는지 알 수 없었다”라며 “공적인 신뢰를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정치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저 정치인의 이미지를 포장해 주는 것밖에 안된다”고 평가했다.

▲ 'SBS 국민면접' 문재인 편에 출연한 패널들.
▲ 'SBS 국민면접' 문재인 편에 출연한 패널들.
특히 ‘SBS 대국민면접’의 경우 검증을 위해 구성된 패널들이 예민한 사안에 대한 추가질문을 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신동진 아나운서는 ‘SBS 대국민면접’에 대해 “지금처럼 엄중한 시대 분위기에선 좀 더 진중한 분위기가 필요한 것 같다. 적어도 연성화해서 예능처럼 만들 때는 아닌 것 같다”라며 “패널들이 후보의 질문에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했고 후보자를 검증하기엔 산만해 보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검증은 검증대로, 예능 프로는 예능 프로 대로 소화하며 서로 보완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야권 관계자는 “검증을 거부하고 예능만 나온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검증의 무대에서는 날카롭게, 예능의 무대에서는 부드럽게 모든 걸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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