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기자들의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취재진을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태극기 깃발 봉을 무기삼아 가격하는 등 의도적으로 시비를 벌이는 현장이 수차례 목격되면서 언론의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언론사들은 고소로 대응하고 있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는 태극기 집회에서 폭력 사태 재발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소문로에서는 CBS 기자가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했다. CBS가 14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영상에는 김아무개 CBS 기자의 스마트폰 촬영에 반발한 집회 참가자가 태극기 깃발 봉으로 그의 머리를 강타하는 등 아찔한 순간이 담겨 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빨갱이 기자 XX야”, “저 녀석들을 죽여라”, “야이 개XX야”, “저 XX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등의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경찰이 신변 보호에 나섰지만 그 과정에서도 폭행과 욕설은 계속됐다. 이 사건으로 김 기자는 안면부 찰과상과 허리부상을 입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CBS 동료 기자는 “기자가 태극기 봉에 맞아 얼굴에 상처를 입었고 현재도 통증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 12일자 뉴스타파 “‘시간 끌기’에 성난 촛불…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 뉴스타파 기자 폭행” 보도 영상 갈무리.
▲ 12일자 뉴스타파 “‘시간 끌기’에 성난 촛불…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 뉴스타파 기자 폭행” 보도 영상 갈무리.
노란리본에 흥분하는 태극기 집회

같은 날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앞 도로에서는 신아무개 뉴스타파 촬영기자가 폭행을 당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취재진의 촬영을 막고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 다리를 차는 등 폭력을 휘둘렀다. 집회 참가자들을 흥분케 한 건 뉴스타파 카메라에 붙어 있던 ‘세월호 노란리본’이었다.

노란리본을 발견한 집회 참가자들은 “여기 빨갱이, 빨갱이”, “어딜 노려봐 X놈의 XX야”, “빨갱이 XX 안 잡고 뭐해. 너희가 경찰이야”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신 기자는 “촬영을 하지 않고 카메라를 밑으로 들고 탄핵 반대 집회 행진을 따라가고만 있었는데 집회 참가자가 카메라에 붙어있는 노란 리본을 보더니 시비를 걸었다”며 “다른 참가자가 뉴스타파 로고를 보고 소리치자 완전히 둘러싸여 밀고 잡아당기며 발로 차고 등도 때렸다”고 말했다.

YTN 취재진 3명도 지난달 21일 서울광장에서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로부터 수십 차례 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YTN 취재진을 30~40m가량 밀치며 취재진의 신체와 카메라를 손바닥과 주먹, 들고 있는 태극기로 가격했다. 경찰이 사태를 파악하고 중재에 나섰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 봉으로 오디오맨의 안면을 가격했다.

폭행을 당한 YTN의 한 기자는 “취재를 하는 도중 느닷없이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빨갱이’로 몰아세우자 참가자들에게 둘러싸였다”며 “태극기 봉을 취재진을 향해 휘두르는 등 당시 위협을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CBS와 YTN은 이번 사건에 대해 폭행 혐의 등으로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해놓은 상태다.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항의 집회에서도 70대 남성 참가자가 취재를 하던 신종훈 민중의소리 기자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해 상처를 입힌 바 있다.

언론계 “폭행 가담자 처벌해야”

탄핵 반대 집회에서 기자들이 잇따라 폭행을 당하자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수집회 현장을 자주 찾았던 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 김정환씨는 “보수집회에 나갈 때는 (노란리본 등이 부착돼 있지 않은) 카메라를 갖고 나갈 정도로 현장 분위기는 살벌하다”며 “내게 ‘어디서 나왔느냐’고 계속 물어보는데, 무시하고 있으면 위아래로 훑어보는 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김씨는 “문제는 경찰이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폭행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피해자만 데리고 나오는 게 전부”라며 “그렇다보니 보수집회 참여자들이 사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하든지 엄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 CBS가 14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영상에는 김아무개 CBS 기자의 스마트폰 촬영에 반발한 집회 참가자가 태극기 깃발 봉으로 그의 머리를 강타하는 등 아찔한 순간이 담겨 있다. 사진=CBS 김현정의 뉴스쇼 페이스북
▲ CBS가 14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영상에는 김아무개 CBS 기자의 스마트폰 촬영에 반발한 집회 참가자가 태극기 깃발 봉으로 그의 머리를 강타하는 등 아찔한 순간이 담겨 있다. 사진=CBS 김현정의 뉴스쇼 페이스북
언론 관련 단체들의 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는 지난 6일 “뉴스 현장에서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앞으로 취재 현장에서 기자들의 정당한 취재 활동을 방해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가 계속되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3일 “이번 기자 폭행의 사태를 언론 자유 침해로 규정하고 주최 측의 재발 방지에 대한 사과와 함께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한다”고 밝힌 뒤 “기자들이 취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재발 방지책과 안전한 취재 환경 마련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기자 폭행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라며 “경찰은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제라도 수사에 나서서 폭행 가담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