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른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관한 보도에 앞장서면서 ‘종횡무진’ 하던 TV조선이 암초에 부닥쳤다. 사건 취재에 나선 그 매체의 기자가 무단주거침입과 절도 혐의로 경찰에 출석했기 때문이다.

그 기자는 지난 18일 새벽 ‘드루킹 일파’의 근거지로 알려진 경기도 파주의 느릅나무출판사 앞에서 서성대다가 그 건물 3층에서 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한다고 자처하는 남자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드루킹이랑 한 식구로, 지금 이 사무실을 관리하고 있는데 생각이 있으면 같이 들어갑시다.” 

이미 여러 매체에 보도된 대로, TV조선 기자와 자칭 ‘인테리어업자’는 그 출판사 안에서 물건을 훔쳐 나왔다. 기자는 주인의 허락도 없이 태블릿PC와 휴대폰, USB를 가지고 가서 회사에 ‘신고’했고, 다른 남자는 그날부터 지난 21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양주 2병, 라면, 양말 등 20여 점을 도둑질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문제의 남자가 ‘좀도둑’이라면, TV조선 기자는 그 유명한 ‘최순실의 태블릿PC’에 버금가는 비밀이 담겨 있을 수도 있는 기기들을 ‘밀반출’한 혐의를 받았는데도 경찰은 24일에야 그를 소환했다.

▲ 4월2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댓글조작 사건의 핵심인 드루킹이 운영한 느릅나무 출판사가 경찰의 압수수색 이후 문을 닫고 잠겨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4월2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댓글조작 사건의 핵심인 드루킹이 운영한 느릅나무 출판사가 경찰의 압수수색 이후 문을 닫고 잠겨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여러 신문과 방송에 그 사건이 보도된 뒤 민주당이 강하게 비판을 하고 나서자 TV조선은 지난 23일 ‘뉴스9’을 통해 사과를 했다. “이런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시청자 여러분께 매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TV조선은 문제의 기자가 ‘수습’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보고를 받은 즉시 태블릿PC 등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무단침입과 절도는 일단 저지르고 나면 ‘범죄’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TV조선의 경영진이나 간부들은 정말 모르고 있을까? 기자, 피디, 자유기고가를 막론하고 언론인은 부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입수해서는 안된다. 특히 도둑질을 하는 순간부터 그는 실정법에 따라 처벌을 받고 소속 회사나 단체에서 엄중한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TV조선이 그런 조치를 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지난 여러 해 동안 TV조선이 채널A와 짝을 이루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부정과 비리를 덮어주거나 국정농단을 도외시한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두 종편방송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크게 바꾼 촛불혁명을 폄하하거나 매도했음은 물론이다. 

지난 14일 청와대 누리집의 ‘국민청원’ 난에는 ‘TV조선의 종편 허가 취소 청원’이 제기되었다. 발기문의 내용은 이렇다. “과거부터 현재진행형으로 허위, 과장, 날조 보도를 일삼고 국민의 알권리를 호도하는 TV조선의 종편 퇴출을 청원합니다. 이념을 떠나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은 뉴스를 생산 유통하는 방송사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이 글이 올라온 지 9일 만인 지난 23일 오후 7시까지 20만 600여명이 청원에 참여함으로써 청와대의 공식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25일 오전 7시 10분 현재 이 청원에 동참한 인원은 21만 3,532명이다.

▲ TV조선 재승인 취소 청원.(23일 오후 6시3분 기준)
▲ TV조선 재승인 취소 청원.(23일 오후 6시3분 기준)
이번의 드루킹 관련 절도 사건을 계기로 심각하게 제기된 문제는 TV조선과 자유한국당의 ‘유착’ 의혹이다. 그 당 원내대표 김성태는 TV조선 기자가 태블릿PC 등을 회사로 가지고 간 이튿날인 지난 19일 이런 말을 했다. “(경찰은) 사건을 축소하면 할수록 사건은 점점 더 커질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태블릿이 없을 것이라는 단정은 아직 이르다는 사실을···.” 

한편 자유한국당 의원 박성중은 지난 22일, KBS의 ‘일요토론’에 나와 민주당 전 의원 최민희와 대담을 하다가 뜬금없이 이렇게 단언했다. “TV조선은 직접 저희들하고 같이 해서 경찰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최민희가 “자유한국당이 지금 TV조선하고 손잡고 같이 뭐 한다는 말씀이세요?”라고 묻자 박성중은 “그저 TV조선을 예로 든 것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지난해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한 뒤인 3월24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편방송 채널사업자 TV조선에 ‘조건부’로 재승인 허가를 내주었다. 기준점인 650점에 한참 못 미치는 625.13점을 받았는데도 2020년 4월 21일까지 사업을 할 수 있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TV조선의 ‘편파, 오보, 막말’을 제대로 응징하지 않는다면 거의 모든 방송매체들이 TV조선을 본받을 가능성이 큰 데도 그렇게 ‘자비로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TV조선이 공공재인 전파를 앞으로 2년 동안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주권자들이라면 ‘종편 허가 취소 청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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