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청와대.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자 전 군부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이 내려지고, 청와대에서도 사진이 철거되는 등 사회 곳곳에서 대통령의 궐위를 나타내는 수정작업들이 진행중이다.

불어오는 바람 끝이 아직은 옷깃을 올리게 하던 16일 오전에 찾은 청와대 사랑채에 아직 박근혜 전 대통령의 흔적이 남아있다. 청와대 사랑채는 오는 5월 9일 조기대선으로 선출될 다음 정부가 새롭게 단장할 예정할 예정이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분수대 쪽으로 걸어들어가는 기자에게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청와대 경호경찰직원이 용무를 묻는다. 기본 인적사항이 적힌 국회출입기자증을 제시하며 취재용무를 알리자 웃으며 얼굴을 확인한다. 

청와대앞 분수대 건너편에 자리 잡은 청와대 사랑채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발자취와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종합관광홍보관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기록은 2층 청와대 관에 있다. 

오전과 점심 나절은 관광객의 발길이 뜸했고 직원들만이 간간히 텅빈 전시관을 오갔다. 갑작스런 사드배치로 인해 중국 관광객들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후가 되자 간간히 대만 단체관광객들이 방문했고, 간혹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내 방문객도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천정에서 내리비치는 조명이 진한 남색 배경 위의 봉황 휘장을 비추고 그 앞을 감싸고 있는 유리진열장 위엔 헌법 제69조의 대통령취임선서문이 씌여 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지난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어내려갔던 주문이 떠오른다.


▲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청와대 사랑채 2층의 청와대관 입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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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시아 최초의 여성대통령 박근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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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관 입구에 전시된 헌법 제69조의 대통령 취임선서문.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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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출마선언때와 취임식에서 했던 말이  청와대 사랑채 방문객들을 향한 인사말로 벽면에 적혀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안으로 한 발 더 들어가면 이승만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재직 당시 사진이 통로 오른쪽에 설치된 모니터 각 한 대 씩에서 무한반복 상영되고 있다. 그 길이 끝나는 곳 왼쪽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생애를 보여주는 20여장의 사진액자가 벽에 전시돼 있고, 그 정면엔 눈부신 붉은 옷을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상반신 사진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니터 위로 일그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웃는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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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관의 역대 대통령 재직 당시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는 대만 관광객.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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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대만 단체관광객들이 청와대사랑채 2층 대통령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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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과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상 모니터.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면 ‘창조경제’, ‘세계 최고의 국가 신용도’, ‘새마을운동 전세계 확산’ 등 이제는 공허한 박근혜 정부의 주요 치적을 홍보하는 문구로 꾸며진 선전물과 대통령과 사진찍기, 청와대 집무실 포토존 등이 있다. 주인 잃은 청와대 집무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텅빈 대통령 집무 책상 포토존에서 관광객들은 열심히 국정을 돌보는 듯, 빈 모니터를 쳐다보거나 책상위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집어드는 포즈로 즐겁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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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대만 관광객이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포토존에서 전화를 받는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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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이 뜸한 시간, 청와대사랑채 관리직원이 대통령 집무실 포토존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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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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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관광객이 청와대 상춘재 배경의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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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외국 관광객이 VR죤에서 청와대 홍보 3D 영상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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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관 관람을 마치고 나온 대만관광객들이 청와대를 배경으로 180도 3D 점프샷을 찍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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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관을 구경하고 나온 대만 관광객들이 창밖으로 보이는 청와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한 관광객이 청와대 경호실 홍보부스에서 증강현실을 이용한 경호체험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한 관광객이 청와대 경호실 홍보부스에서 증강현실을 이용한 경호체험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인상적인 것은 현직 대통령에 할애된 면적만큼의 공간이 청와대 경호실 홍보 부스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군인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노태우 정권 이후로 군대와 청와대 경호실의 위상이 이만큼 높았던 적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청와대 대표적인 공간 여섯 곳을 배경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진찍을 수 있는 포토존에서 청와대 푸른 잔디마당 사진을 골라 박 전 대통령과 처음이자 마지막 기념사진을 남겨본다. 청와대관을 다 둘러보고 나와 다시 청와대 앞 분수대 쪽으로 나오자 대만 단체관광객들 서너팀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그들의 들뜬 목소리 사이로 “미디어오늘 기자, 사랑채에서 나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계속 사진 찍고 있습니다.”라는 청와대 경호경찰의 꼼꼼한 '사찰' 아닌 '보고'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파고든다. 주인 잃은 '보고'는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 16일 오후 청와대앞 분수대에서 대만단체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6일 오후 청와대앞 분수대에서 대만단체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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