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박근혜씨 파면 이후 구체적인 공약을 꺼내들었다 대한민국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노동시간의 정상화를 하자는 ‘삶이 있는 일자리’ 정책과 국가안보최고회의를 만들어 안보외교를 담당할 기구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안 지사는 과거와 달리 강도 높은 재벌개혁 공약도 언급했다.

안희정 지사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안희정이 제안하는 시대교체 정책설명회’를 열었다. 안 지사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시대의 다섯가지 상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통합의 시대 △공정·정의의 시대 △쉼표 있는 시대 △자치분권 시대 △안심 시대 등이다.

특히 이날 안 지사가 제시한 ‘쉼표 있는 시대’를 위해 제시한 공약은 전국민 안식제다. ‘삶이 있는 일자리’ 라며 지난 대선에 출마선언했던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큰 공감을 샀던 캐치 프레이즈인 ‘저녁이 있는 삶’과 거의 유사하다.

최근 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손학규 전 의장도 '저녁이 있는 삶' 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법에는 단계적 정시퇴근제와 최소 휴식시간제, 노동시간 상한제가 포함된다.  또한 손 전 의장은 연차휴가 사용 확대와 2주일의 여름 휴가를 확대추진하고 노동시간 단축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안희정 지사의 공약은 구체적으로는 10년에 1년씩, 1년에 1달씩 전 국민이 쉴 수 있도록 전국민 안식제를 실시하자는 내용이다. 휴식은 모두 유급이며, 안식월제의 경우 현행 법정 휴가를 25일로 상향하는 방식이다. 10년에 1년 휴가를 지급하되 임금 동결을 전제로 하며, 임금동결에 따른 재정감축분으로 신규 채용과 비정규직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안 지사는 “분열의 시대에서 통합의 시대로 가자고 제안하겠다”며 국가안보최고회의를 구성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안보와 외교 정책이 바뀌지 않도록 하기 위해 초당적 국가 합의기구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 안희정 충남지사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희정이 제안하는 시대교체 정책설명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안희정 충남지사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희정이 제안하는 시대교체 정책설명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또한 안 지사는 지방분권강화를 위해 제2국무회의를 만들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현행 국무회의에는 총리와 대통령, 국회의장 등이 참석하도록 돼있는데, 대통령과 지방정부의 책임자들이 공동으로 참석하는 제2국무회의를 별도로 신설하자는 제안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분권과 협치가 가능한 시스템을 정착하겠다는 취지다.

안희정 지사는 ‘반칙·편법의 시대에서 공정·정의의 시대’로 가기 위한 공약으로 사법검찰 개혁을 꺼내들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사의 수사이력제 등과 함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안 지사의 발언은 최근 자신의 발언과도 다소 배치된다. 안 지사는 지난 2일 열린 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는 “별도의 수사처는 옥상옥(屋上屋) 같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안 지사 측은 세미나 직후 “공수처는 당론이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라며 재차 설명했다.

이날 내놓은 안 지사의 공약은 그동안 민주당 내 의원들이 캠프로 다수 영입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제안했던 공약들을 수렴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안 지사가 재벌 문제 해결 방안을 설명할 때는 이전과 달리 민주당 당론과 비슷한 수위의 발언들이 엿보였다.

지난 2월2일 국회 기자회견 당시 “산업구조 개편 때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없으면 많은 기업들이 가라앉게 된다”며 “경제민주화 조치를 어떤 방식으로 취하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 많은 전문가들이 논의해야 한다”며 재벌 개혁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또한 당시 안 지사는 “대한민국 정치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하거나 민주주의 원칙보다는 경쟁적으로 문제를 풀어왔다”며 시장 질서에 기본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을 한 바 있다. 당시 공약의 각론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에도 “각론은 의회와 국민 모두의 타협과정이 필요한 것”이라며 정치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 지사는 16일에는 구체적이고 선명하지만 과거 자신의 발언과는 다소 결이 다른 공약을 내놓았다. 안 지사는 “반칙과 편법의 시대에서 공정과 정의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세부적인 저의 제안은 재벌개혁”이라며 “경제민주화와 기울어진 운동장, 그리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향해 반드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재벌개혁이라는 우리 시대의 과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재벌개혁은 우리 경제가 혁신형으로 가기 위한 핵심과제”라며 순환출자 방지와 지주회사 체제 강화 등을 통해 경제 집중을 완화하고 지배주주 이외의 주주권한을 확대하고 부당 내부와 일감의 내부 몰아주기 등을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과징금 등 규제를 강화하고 집단소송제도 등을 통해 공정한 시장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안 지사는 노동을 강조하며 공정노동위원회를 신설하고 불법노동행위를 별도의 노동법원 신설을 통해 근절하겠다는 공약도 꺼내들었다. 지방분권 전략을 위해 지방 국공립대를 지원해 지역 인재가 지역의 발전동력을 이끌도록 하겠다는 공약도 언급했다.

안 지사가 충남도정을 운영하며 구상했던 화력발전소 기반 에너지 공급 시스템 개선과 미세먼지 대책, ICT 기술을 통한 국민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공약 등도 이번 공약 발표에 포함됐다.

안희정 지사는 “민주정부의 신념과 역대 정부가 국가와 합의한 국가과제가 자신의 공약이자 정책이었다”고 설명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제가 가진 시대교체와 문제의식에 입각해 구체적인 몇 개의 정책을 소개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가 똑바로 돼야 이 모든 정책이 들판에 꽃처럼 피어나지 않겠나”며 평소 강조한 정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다만 이날 정책 발표에는 정치 개혁 공약은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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