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출신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법제사법위원)이 이재용 항소심 판결을 ‘가짜’라고 혹평했다.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은 ‘마구잡이 공세’, ‘정치권이 갈 데까지 갔다’, ‘법치주의 부정’ 등의 표현을 쓰며 비난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판사가 말할 수 있는 전부인 판결에 대해 입법부가 비평하고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입법부의 견제기능을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박 의원은 판사 출신인 법조 전문가로서 이번 판결의 법리에 모순과 비약, 재판장의 주관이 들어간 치명적 오류가 있기 때문에 보수 진보, 여야를 떠나 비판하고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중앙일보는 8일자 사설 ‘나라를 뿌리째 뒤흔드는 여권 인사들의 막말’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범계 의원의 전날 최고위원 발언을 두고 “집권 여당이 사흘째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며 “판사 출신인 추 대표와 박 최고위원이 법원과 법관 개인에 대한 마구잡이 공세에 앞장서는 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중앙은 특히 “나라 운영을 책임진 집권당 지도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사법부의 판결을 난도질하는 것은 헌법의 척추인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망동”이라며 “대법원의 상고심에 영향을 미쳐 2심 판결을 뒤집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면 더욱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같은 날짜 11면 머리기사 ‘갈 데까지 갔다…법원 향한 ‘저주’’에서 한 변호사의 말을 빌어 “‘코드 판결’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법원 판결에 대한 정치권의 비난이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난했다. 김현 대한변협회장도 “재판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공격하는 건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사법부 독립을 해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전날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여당의 대표적 인사들이 앞장서 분노 운운하고 억측을 늘어놓는 것도 무책임하다”며 “입법부나 행정부의 판결에 대한 비판은 삼권(三權)분립 원칙의 훼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범계 “판결, 국회 비평 당연…하지말란 건 입법부 감시견제 포기 뜻”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판사를 했던 박범계 의원은 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헌법과 기본법, 형사법을 공부해본 사람으로서 가치중립적인 ‘법리’, 대체로 보수적이기까지 한 법리를 평생 배우고 현재 법사위에서도 이를 적용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그런 내 (경험과) 스탠스에 비춰봐도 이번 이재용의 판결은 상식과 우리가 배운 법리를 뛰어넘는 모순, 비약, 재판장의 주관이 점철된 판결이므로 비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건 코드의 문제도 아니고 여야, 진보 보수의 구분에 의한 것도 아니다”라며 “더구나 법원은 삼권분립이기 때문에 입법부로부터 감시와 견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국회 법사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국회 법사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그는 “국감때 판결은 예외인가.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수십년간 얘기해왔다. 판결문은 법관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전부에 해당한다”며 “그런데 입법부가 법원 판결을 비평할 수 없다면 국회 감시기능이 전무한 것으로, 감시와 견제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조중동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들의 비판을 비난하는 것 역시 이번 판결에 대한 비평이라는 것이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판결 비판을 할 수 있지만 누가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와 공감을 받는 판결이냐에 있다는 게 박 의원 주장의 핵심이다. 8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국민 58.9%가 이번 판결에 대해 공감가지 않는 판결이라고 응답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 특별감사, 파면 청원, 재판장 가족 계좌추적 등 인터넷 상에서 재판부 공격이 도를 넘었다는 조선일보 등의 주장에 대해 박 의원은 “법관의 재판을 절대화 성역화하는 것이야말로, 보수 기득권이 원하는 것”이라며 “입법 행정부는 4년, 5년에 한번씩 주권자의 심판을 받지만, 사법부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민주적 정당성에서 취약하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비판과 언로를 막겠다는 것이야말로 재갈을 물리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또 사법부의 부당한 판결을 청와대에 청원한 것을 두고 “국민들이 오죽했으면, 사법부 문제를 청와대에 청원했겠느냐. 과연 국민이 그것도 모르고 했겠느냐”며 “판결이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뻔뻔한 주장을 하니 국민이 분노한 것이다. (국민들의 항의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애초부터 특검의 공소자체가 무리였다는 항소심 판결과 조선일보 주장에 대해 박 의원은 “판결문 내용에 대해 조금만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들여다보면 법리 구성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며 이들은 그런 문제점을 전혀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박 의원은 이번 판결의 모순점 두 가지를 지목했다. 첫째,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오류는 뇌물을 무죄로 만든 논리가 정작 뇌물혐의를 적용했을 때는 빠져있다는 점이다. 즉 정형식 재판부는 뇌물 사건 무죄 논리의 큰 흐름으로 ‘경영권 승계작업(포괄적 현안)이 없었다’→‘명시적 묵시적 청탁이 없었다’→‘박근혜가 이재용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대가관계가 없었다’는 구조를 제시했다.

박 의원은 “한마디로 안종범 업무수첩 등의 증거능력을 배척한 어마어마한 얘기”라며 “수사기관과 법정에서까지 증언한 안종범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뜻이고, 결국 이런 논리면 국정농단 수사가 다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뇌물 이유 없다고 해놓고 적용한 뇌물혐의의 이유를 설명 안해…모순

여기서 문제는 뇌물의 원인인 경영승계, 부정청탁, 대가관계가 없었다고 해놓고, 정작 뇌물로 인정한 부분에서는 왜 이것이 뇌물인지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뇌물이 성립하려면 공무원의 직무상 관련해 경영권 승계작업과 같은 뇌물을 준 사람 쪽이 이익을 보는 대가관계가 있어야 한다. 삼성전자가 36억3484만 원의 용역대금 최순실 측(코어스포츠)에 송금한 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판결문을 샅샅이 뒤져봐도 이재용과 삼성전자 임원들이 왜 코어스포츠에 거액을 줬는지가 설명돼 있지 않다. 

박 의원은 “경영권 승계와 같은 이재용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포괄적인 현안이 존재하지 않았다 했고, 그러니 부정한 청탁도 없고, 대통령이 인식하지 못했다면서 뇌물죄의 전제조건을 다 부정했다”며 “그러고 나서 정작 38억3484만 원을 왜 줬는지 나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이런 이유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데, 그 설명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앞뒤가 안맞다는 설명이다.

박 의원은 “한마디로 ‘뇌물의 이유가 없다’는 대전제와 적용한 뇌물죄와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항소심 판결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돼 법원 밖을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항소심 판결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돼 법원 밖을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밖에도 박 의원은 재산국외도피 혐의가 무죄가 된 것도 치명적인 법리의 오류라고 지적했다.

재산국외도피, 내가 빼돌려도 내가 못쓰면 무죄? “거의 입법행위 수준 해석”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전자가 38억3484만 원을 독일에 있는 코어스포츠로 뇌물을 줬으나 삼성전자 자신이 이 돈을 처분할 수 없기 때문에 국외재산도피 혐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내가 돈을 은밀히 국외로 빼돌려 누군가에게 뇌물로 전달했다고 해도 내가 그 돈을 처분하거나 쓸 수 없기 때문에 무죄라는 논리다. 

박 의원은 ”항소심 재판부는 내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내가 쓸 수 없는 상태만 되면 재산국외도피가 무죄라는, 듣도 보도 못한 법리를 편 것”이라며 “특경가법상 기본구성요건을 항소심 재판부가 이재용의 무죄를 위해 새로운 입법을 한(법을 만든) 수준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보수와 진보, 코드를 떠나 정상적으로 헌법과 법률 체계의 법리를 공부하거나 종사한 사람이 볼 땐 모순과 비약 주관으로 점철된 판결”이라며 “상식적인 법관이 재판에 임하면 시정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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