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겠죠. 일부 선배들처럼 언론의 자유를 방해하거나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비판받을 것이고요. 하지만 저는 언론인 편에서 함께 싸우는 동지 관계로 남고 싶어요.”

목소리는 반쯤 잠겨 있었지만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37) 표정은 인터뷰 내내 밝았고 생동감이 넘쳤다. 또 그의 정치적 소신은 뚜렷하고 확고했다. 그는 “목도 잠기고 몸도 뻐근하지만 너무나 즐겁다”고 말했다.

고 아나운서는 지난 4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북 콘서트 행사 진행을 시작으로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다. 친오빠들에게도 함구했을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됐던 그의 ‘문캠행’에 KBS 안팎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주고 싶지 않았다”며 “또 누가 말린다고 해서 바뀔 결심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고 아나운서는 문 전 대표에게서 무엇을 보고 느낀 걸까. ‘경제적 가장’이기도 한 그가 내린 선택에는 어떠한 고민이 담겨 있을까. KBS 구성원들이 공정방송 쟁취를 기치로 내걸고 파업 준비에 분주한 가운데, 그는 방송 민주화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었다.

▲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조기 대선이 점쳐지고 있다. 일정이 빡빡할 것 같다.

“하루가 한 달 같다. 목도 잠기고 몸도 뻐근한데 너무나 즐겁다. KBS를 다닐 때도 방송으로 힘든 적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한가했다.(웃음) 내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 문 전 대표 일정을 모두 따라다니며 도움을 주고 있는 건가?

“모든 곳에 따라가는 건 아니다.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곳 위주로 함께 하고 있다. 청년 취업과 관련해 노량진 고시학원 방문, 여성을 위한 일자리 행보 등에 함께 했다. 아직 캠프가 발족되지 않아 명함을 만들지 못했다. 캠프가 발족되면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명확해질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지 않고 있는 지금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 문 전 대표와 함께 하겠다고 결심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의 책이나 언론을 통해 생각이 가장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카메라 앞과 뒤가 다른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문 대표는 똑같았다. 사람 마음을 얻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데, 혹자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 단 한 푼의 돈을 들이지 않고 사람을 움직여야 ‘내 사람’을 만들 수 있다. 문 대표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그에게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을 느꼈다.”

- 새로운 도전이다. 주변 동료나 지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주위에서 ‘그리 험한 곳을 왜 갔느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고, ‘이겨내고 버텨내라’고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다. 생각했던 것만큼 비난이나 비판은 없었던 것 같다. 인생을 걸고 나왔지만(웃음) 미리 겁먹지는 않으려 한다.”

- KBS 아나운서로 활동할 때 겪었던 어려움이 있다면?

“가치관과 다른 방송을 해야 할 때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아나운서는 라디오 뉴스를 매일 소화해야 한다. 5분짜리 원고 뭉치를 받으면 첫 번째 순서가 박근혜 대통령 소식이었다. 반면 촛불집회 기사는 뒷부분에 배치돼 있고. 작은 방송이지만 내가 이렇게 방송을 해야 하나 싶었다. 최근 MBC 막내 기자들이 영상을 만들어 자사 보도를 반성하기도 했는데 비슷한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 문재인 캠프 합류를 선언할 때 해직언론인들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결정을 내리기 전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YTN·MBC 해직언론인들의 투쟁기를 다룬 영화)을 봤다. 같은 회사도 아니고 직종도 다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그분들이 왜 해직이라는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마음이 아프고 죄송했다. 특히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투병 중이지 않나. (안에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간다면 그들에게 더 힘을 실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문재인 전 대표와 해직언론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나?

“문 대표는 해직언론인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대선 패배가 그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자신이 2012년 대선에서 이기면 복직에 일조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미안함이 컸던 것 같다.”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인사인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가 4일 오후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북 콘서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탁현민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인사인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가 4일 오후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북 콘서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탁현민
고 아나운서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KBS 새노조) 소속 언론인이었다. 2010년 KBS 새노조 파업 이후 사측이 파업 참여 기자·PD·아나운서에 대한 대규모 징계 방침을 밝히자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우린 언제까지 그냥 회사원이어야 하나요. 언론인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러운 KBS인이 되면 안 되는 건가요. 따지지도 말라, 흥분하지도 말라! 우린 기계가 아니에요”라고 글을 올렸다. 그만큼 방송 민주화 운동에 관심이 컸던 언론인이었다. 이날도 고 아나운서는 기자에게 “KBS 새노조가 곧 파업을 한다는데, 상황이 어떻다고 하나요”라고 물었다.

- KBS에서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활동이 있다면?

“공영방송 언론인으로서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 것인지 늘 헷갈렸다. 세월호가 터졌을 때, 남편이 시인이기도 하니 광장에서 사람들과 시라도 한 편 읽고 싶었다. 인간 고민정의 입장에서 작은 자리라도 참여해 사람들과 함께 시를 읽으며 슬픔을 나누고자 했다. KBS 아나운서로서 치우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 KBS 타이틀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등에 고심하게 되더라.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나는 과연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기계에 불과한 건가. 지금은 SNS에 글 하나 올리는 것도 검열하게 되지 않나. 우린 앵무새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데 또 파업이나 집회 참여는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인데 (2010년 트위터를 올리고 나서) 바로 피드백이 들어오더라.”

- 한국 사회나 언론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복 경찰들이 회사에 난입했던 2008년 8월8일이다. (이날 KBS 이사회는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의결했고, KBS 기자·PD들은 온몸으로 저항했다. MB정부의 정연주 해임은 보수정권의 방송장악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방송사는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방어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곳임에도 사복경찰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동료들을 제압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아이를 낳고 한 달 후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까…. 또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의 모습을 보며 실망감을 넘어 분노가 솟구쳤다.”

- 여전히 언론인의 정치 행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KBS 앵커 출신의 민경욱 새누리당 의원, KBS 기자 출신 박선규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이 대표적이다. 고 아나운서도 이들을 많이 비판했을 텐데?

“민경욱·박선규 선배는 정치 일선에 직을 가지고 뛰어든 것이고, 나는 문 대표를 돕겠다고 나온 것이라 다른 부분이 있다고 본다. 내가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나에 대한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인간적으로 친한 선배도 있지만 (이들은) 언론을 장악하거나 탄압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평가에 이미 마침표가 찍힌 것 같다. 나도 언론의 자유를 방해한다면 부도덕한 언론인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론인들 편에서, 언론 자유의 적에 맞서 함께 싸우는 동지 관계로 남고 싶다.”

▲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안희정 충남지사가 문 전 대표를 추격하고 있는데 불안감은 없나?

“당연히 있다. 대표도,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기자: 정치권에서 문 전 대표에 대한 견제가 거세지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자신의 정책이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반문연대’를 꺼내는 등 문재인만 보고 정치를 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나아갈 거라고 바라고 믿는다. 마지막 결과는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최선을 다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 아나운서로서 문 전 대표의 화법이나 스피치를 평가한다면?

“말씀을 조금 빨리 하신다면 좋을 것 같은데.(웃음) 내가 봤을 때 문 대표는 유머러스한 분인데, 본인은 아직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유려한 화법은 아니지만 나름의 진솔한 매력이 있다. 14년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 기자와 PD, 시청자 사이에서 이음매 역할을 했던 것처럼 거친 걸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게 내 몫인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은 그의 남편 시인 조기영씨와 관련한 것이었다. “시인의 아내로만 기억되고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 그는 “남편과 결혼할 때도 그렇고 지금의 선택도 그렇고. 돈과 권력이라는 물질적 잣대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되레 안타까울 때가 있다”며 “얼마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내일을 잘 생각 안 해요. 오늘만 생각해요. 오늘 재밌게 살면 내일도 행복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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