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째 되풀이되는 진행자 정치 편향 논란

KBS가 새롭게 선보인 시사토크쇼 <오늘밤 김제동>이 9월10일 처음으로 방송됐다. 방송사의 프로그램 개편이 있을 때마다 시선이 쏠리는 곳 중 하나는 시사프로그램의 새 진행자이다. 새롭게 등장한 시사프로 진행자의 면면을 두고 여지없이 따라붙는 건 “이 사람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인지”에 대한 해묵은 말들이다. KBS의 이번 개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진행자 김제동의 적격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몇몇 언론은 ‘김제동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할 자격이 없다’고 공공연히 비판했다.

김제동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물인가? 그가 2016년 경북 성주 사드배치 문제를 비롯해 몇몇 현안에서 목소리를 낸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는 사실이 그의 ‘편향성’을 보여주는 사정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김제동이 ‘편향됐다’고 주장하려면, 김제동이 사안 자체가 아닌 진영 논리에 따라 이리저리 입장을 바꾸어 왔다는 점이 확인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김제동이 보여 온 행보에서 그런 혐의를 찾기는 어렵다. 최근 김제동을 문제삼은 몇몇 기사들에서도 ‘김제동이 정치적 현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보여온 인물’. ‘이번 정권 사람이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며 트집 잡을 뿐, 그의 ‘편향성’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정을 밝히지는 못했다.

▲ KBS1TV ‘오늘밤 김제동’ 첫방송 화면 갈무리.
▲ KBS1TV ‘오늘밤 김제동’ 첫방송 화면 갈무리.
2018년 8월15일 중앙일보에 실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의 칼럼 “김제동의 NPR의 진행자였다면”을 보자. 김 총국장은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이던 후안 윌리엄스가 다른 방송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NPR에서 해고됐다며,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정치적으로 편향된 김제동 역시 부적격자’라고 일갈한다. 이 사안에서 문제가 된 후안 윌리엄스의 발언(“이슬람 복장을 한 승객이 비행기에 타고 있으면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은 무슬림에 대한 인종혐오였고, 그 자체로 NPR의 편집 기준에 위배될 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는 비교적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문제 발언이었다. 김제동이 사드배치에 반대하거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헌법 유린을 비판한 것을 인종 혐오 발언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온당한지 의문이다.

시사프로 진행자는 “모든 사안에 아무 의견도 낸 적이 없어야” 하나

방송인이 어떠한 ‘성향’을 직·간접으로 드러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시사프로 부적격자’라고 낙인찍는 고약한 습관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김미화가 그랬고 정관용도 마찬가지였다. 김흥국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도 아니었는데 선거지원 유세를 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그 유탄을 맞아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민주공화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어느 만큼의 정치적 견해를 갖게 마련이다. 모든 사안은 아니더라도 주요 현안 몇 가지에 대해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때로 그 생각을 외부에 표출해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중을 상대로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유독 정치적인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입장을 보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물’이라고 몰아세운다면, 사사프로그램 진행자는 모름지기 “모든 사안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낸 적이 없어야” 한다는 웃지 못 할 결론에 이른다. 김제동을 싫어하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공적인 문제에 대해 발언한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편향된 인물’로 낙인찍는 건, 비겁한 야유 이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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