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박근혜 대통령의 싸움은 조선일보의 승리로 끝나는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부패 언론인’으로 낙인찍힌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을 잃었지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날리고 박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을 사실상 끊어놨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 모양새다. 

독일 등에서 도피 중이라던 최순실(60)씨가 30일 오전 비밀리에 귀국했다는 소식에 대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박 대통령은 청와대 인사 교체를 단행했다. 

대통령 비선 실세 최씨의 국정농단과 연루된 우병우, 안종범 등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 ‘문고리 3인방’ 등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러면서 우 수석 후임으로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을 내정했다. 

최 전 지검장은 대검 수사기획관 재직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를 구속 수사했고 BBK 사건을 무혐의 처리해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으로 꼽히기도 했으나 세월호 사고 이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에 실패해 옷을 벗었다. 대표적 친이계 인사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조선일보’와의 관계다. 최 전 지검장은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인척(9촌 조카)이다. 최 전 대표의 아들은 TV조선 메인뉴스 ‘뉴스쇼’ 진행자였던 최희준 전 보도본부장이다.

아울러 최 전 지검장은 조선일보 출신 최구식 전 새누리당 의원과는 4촌지간이다. 

인사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 초 ‘조선일보 몫’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이를 내쳐 조선일보와 틀어졌다는 일화는 정치권에서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친박이나 측근이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던 박 대통령이 자신과 척을 졌던 조선일보와 관계된 인사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구심이 더해지는 까닭은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사태의 주인공인 최씨와 차은택(47)씨가 같은 날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청와대 인사들이 대거 교체되며 큰 판이 움직이는 상황에 있다. 

조선일보가 지난 26일 사설에서 “박 대통령은 내각 전면 개편 대신 여야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거국(擧國) 총리를 임명해 남은 1년간 경제와 내정(內政)을 맡겨야 한다”며 거국중립내각을 제안한 뒤 새누리당이 30일 이를 받아 청와대에 요구했고 같은 날 청와대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이번 청와대의 수습책이 이후 조선일보의 논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통령의 공백과 비례해 향후 조선일보의 정치적 지분은 지금보다 크게 확대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손발을 묶어 사태를 수습한 뒤 여론 반전을 꾀하고 결국 차기 정권을 위한 새 판을 짜려는 보수집권 세력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