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안그랬어요’라고 한 번 거짓말해도 피해자는 순식간에 바보가 돼버리고… 피해자는 진실을 얘기하면서도 ‘믿어 달라’며 이게 왜 진실인지 설명까지 해야 하는 현실을 3년째 겪어 오고 있습니다. 힘이 듭니다.”

‘동국대 레지던트 데이트폭력 사건’ 피해자 A(가명·29)씨는 지난 17일 “너무 억울하고 지친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가해자 B씨가 결백을 호소한 입장문을 많은 언론사들이 받아쓴 기사를 보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A씨는 B씨가 “폭행한 적이 없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는 말을 3년 간 들어왔다. A씨는 2016년 1월 B씨를 폭행죄로 고소한 이후 경찰청·검찰청·법원에서 법적 다툼을 벌여왔다. A씨가 원한 것은 진정한 반성과 원칙에 따른 처벌이었다. A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까지 지금까지 싸워온 까닭은 B씨로부터 단 한 번도 진정성있는 사과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폭행 후 119엔 내가 수면제를 과다복용했다고 거짓말했다”

A씨는 1년 2개월 가량 B씨로부터 상습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 동안 응급실을 갈 정도로 심하게 맞은 적만 3번이다. 2015년 11월 폭행 땐 119 구급차량에 실려갔다. 당시 구급대원는 일지에 “환자가 ‘머리가 아파요’ ‘때리지 마세요’‘잘못했어요’ 말 반복함”이라고 적었다. A씨를 진료한 동국대학교 응급실 의사도 “질문에 제대로 답을 안해. ‘잘못했어요’를 반복하고 있어. 제대로 협조 안되고 있음”이라고 썼다.

▲ 2015년 11월15일 폭행 당시 구급일지(위)와 진료기록. B씨가 수사기관에서 폭행 혐의를 부인하자 A씨는 당시 상황을 목격한 구급대원을 찾아갔다. 그때 구급대원이 구급일지를 발급해줬다.
▲ 2015년 11월15일 폭행 당시 구급일지(위)와 진료기록. B씨가 수사기관에서 폭행 혐의를 부인하자 A씨는 당시 상황을 목격한 구급대원을 찾아갔다. 그때 구급대원이 구급일지를 발급해줬다.

A씨는 당시 B씨가 “발로 축구공을 차듯이 머리를 걷어 찼다”며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B씨는 보호자로 동승해 구급대원과 의사에게 ‘A가 스틸녹스(수면제) 20알을 먹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구급일지와 진료기록에 적혔다. A씨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당시 B씨 폭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불면증을 겪어 수면제를 먹었던 A씨는 “2~3알 먹은 게 다였다”고 말했다.

A씨는 동국대학교 병원 간호사였고 B씨는 같은 병원 레지던트(수련의)였다. 둘은 2012년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했다. A씨는 B씨가 화가 났을 때 물건을 바닥에 던지거나 벽을 치는 것을 종종 봤지만 교제 이후 1여 년 간 자신을 때린 적은 없었다. 그러던 중 2014년 10월 최초 폭행이 발생했다.

A씨는 그날 전치 2주 부상을 입었다. 인대 손상 가능성이 있어 1~2주 가량 깁스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A씨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 2014년 10월14일 동국대 의료원 응급실 진료 기록. A씨는 진료를 받는 와중 B씨가 갑자기 응급실을 방문해 지인 의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 2014년 10월14일 동국대 의료원 응급실 진료 기록. A씨는 진료를 받는 와중 B씨가 갑자기 응급실을 방문해 지인 의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주먹으로 머리, 어깨, 배·가슴 부위 등을 쳤다. 맞을 땐 너무 아파 정신이 혼미하다. 맞을 때마다 휘청거리며 물러나니 4m 가량 뒤로 밀렸다. 어깨를 때린 다음 다리를 걸면서 몸을 주먹으로 치니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고꾸라진 상태에서도 폭행을 당했는데, 그때 다리가 꺾이면서 인대를 다쳤다. 몇 일 후 B가 무릎을 꿇고 울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어서 고소하지 않았다.”

A씨는 집에서 가까웠던 동국대학교 의료원을 가지 않고 택시를 타고 ㅍ정형외과를 찾아야 했다. B씨가 ‘병원에서 진료를 보면 자신을 의심할 수 있으니 동국대 병원은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몇 일 후 도저히 통증을 참을 수 없어 근무 중에 동국대 응급실을 찾았다. 진료 받던 중 B씨가 황급히 응급실로 내려와 지인이었던 의사에게 ‘A가 뭐래요?’ ‘누가 밀었대요?’라고 물었다.

결별 직전인 2015년 12월 A씨는 또 발목에 깁스를 했다. 이 또한 B씨의 폭행으로 인한 것이었다. A씨는 인대손상에 따른 후유증으로 이제 굽있는 신발을 신지 못한다. 남은 구두는 전부 친구에게 줬다. A씨는 “응급실 기록으로 남은 폭행만 3번이지 B가 주먹으로 머리, 어깨, 가슴 등을 강타하고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일은 1년 동안 꾸준히 있었다”고 말했다.

폭행 후 피해자 의료기록 무단 열람도

“돈을 요구했대.” “쟤 의사랑 결혼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래.” “(A가 B) 가지고 논거지.” 경찰 고소 후 간호사 A씨는 꽃뱀과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병원 안에 자신에 대한 흑색 소문이 퍼져 자신의 귀에까지 계속 들어왔다.

그러나 B씨가 A씨를 구타한 사실은 B씨의 기소유예 처분서에서 확인된다. B씨는 A씨의 진료기록이 남은 3가지 사건에 한해 상해죄가 인정됐다.

▲ B씨의 의료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 B씨의 의료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B씨는 A씨의 동국대학교 의료원 의무기록을 무단 열람해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 백만 원을 선고받았다. 1심 판결문엔 “자신의 폭행이 원인이 돼 발생된 A의 상해 사실에 대해 A가 담당 의사에게 어떻게 주장했는지 확인할 목적으로, 주치의가 아님에도 (동국대) 병원 재직 신분을 이용해 A에 대한 의무기록을 함부로 열람했다”고 적혀 있다.

B씨는 지난 17일 복수의 언론사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단언컨대 제가 A를 수 년간 상습폭행하였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대가 두 번이나 끊어지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맞아서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SBS 8시 뉴스 앵커의 멘트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죄가 인정된 3가지 상해 사건의 경우 B씨는 “합계 3건이었다”며 “이게 상습폭행인가요?”라고 반문했다.

▲ 멍 자국(왼쪽)과 2015년 12월 발목 깁스 사진. B씨는 이에 대해 정맥 주사 바늘 자국일 수 있으며, 대학병원 의사가 한 깁스같지 않다고 반박했다.
▲ 멍 자국(왼쪽)과 2015년 12월 발목 깁스 사진. B씨는 이에 대해 정맥 주사 바늘 자국일 수 있으며, 대학병원 의사가 한 깁스같지 않다고 반박했다.

B씨는 A씨가 찍어 둔 멍 자국 사진에 대해 “바늘자국이 있는 점으로 보아 구타로 인한 멍자국이 아니라 정맥 주사 부위에 발생할 수 있는 멍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의 인대 깁스 사진에 대해 그는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한 것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잡한 솜씨로 감은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의사한테 시집보내려고?” “로드킬 당해라” 계속된 공격

B씨는 입장문을 통해 “A는 합의금으로 3000만원을 지급받은 후 욕설문자를 수 없이 보내왔고, 심지어 2016년 겨울에는 새벽 한 시, 두 시 이런 시간대에 갑자기 제 집의 현관문을 두들기면서 아파트를 소란스럽게 하여 제가 경찰에 몇차례 신고해야 했다”며 “하루에도 300여통의 통화가 쏟아져 (발신번호도 제각각에 휴대전화, 병원 전화,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심지어 공중전화까지) 저의 일상생활 및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B씨는 ‘접근금지가처분 신청’도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 2015년 6월 B씨 아버지의 카카오톡 사진. A씨는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려고 B씨에게 집요하게 연락했다고 밝혔다.
▲ 2015년 6월 B씨 아버지의 카카오톡 사진. A씨는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려고 B씨에게 집요하게 연락했다고 밝혔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시 A씨는 B씨와 B씨 아버지의 사과를 요구했다. B씨가 A씨의 어머니에게 ‘A가 맞을 짓을 했다’거나 ‘아줌마는 양심없게 딸을 간호사로 키워놓고 의사한테 시집보내려고 그랬어요? 이 아줌마 양심없네’ 라는 등의 폭언을 했다는 점에서다.

B씨의 아버지는 폭행과 관련해 합의가 이뤄진 직후 카카오톡 프로필에 “로드킬 당할년!” “니네 부모는 너를 텐프로(로) 키웠니?” “악마녀를 보았다” 등의 문구를 올렸다. A씨는 “B가 주장하는 ‘전화 300통’은 그때 내가 사과를 하라고 연락을 계속 했을 때”라며 “하루 300통은 과장됐다”고 말했다.

B씨의 입장을 보도한 한 기사엔 A씨가 B씨의 집에 쓰레기를 무단투기했다는 사진이 실렸다. 이는 이미 검찰 조사에서 거짓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결별 후 자신의 집에 남은 B씨의 물건을 B씨 집 앞에 뒀다. 옷가지는 세탁까지해 접어서 놔뒀다. 이후 이 물건이 어떻게 어질러졌고 쓰레기봉투에 들어갔는지 과정을 A씨는 보지 못했다. A씨는 이와 관련 B씨가 검찰 대질신문에서 ‘앞집 사람이 쓰레기봉투에 넣은 것 같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무수한 ‘꽃뱀’ 낙인 댓글

A씨를 가장 괴롭힌 ‘돈을 노린 꽃뱀’이었다는 병원에서의 소문이었다. B씨 또한 A씨가 합의금을 노렸다며 “돈을 처음에 이렇게 얼마를 불렀다가 합의를 안 해 준다 하면서 얼마 이상 뜯어내고” “제가 2천에 합의 안하겠다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결국은 B가 3천에 하더라구요” 등의 음성이 남긴 A씨 녹취록을 공개했다. 다수 언론은 B씨 입장을 그대로 실었다.

A씨는 녹음에 대해 “그날 부부에게 속아 너무 화가 나서 열받게 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합의할 생각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는 합의를 한 지 8개월이 지난 때였다. A씨는 B씨의 배우자가 결혼을 앞두고 B씨의 폭력성에 대해 알고싶다고 만남을 제안하자, 그를 도우려는 마음에 증거자료를 모두 가지고 나갔다. 피해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A씨는 B씨와 B씨 배우자가 서로 쪽지를 교환하는 것을 봤다. 자신을 속이고 증거를 보기 위해 불러냈다고 판단해 분노를 느낀 A씨는 ‘얼마 이상 뜯어낸다’ ‘3천에 하자고 하더라’ 등의 말을 뱉었다.

“이 사람은 직업이 의사라서 기소유예 나올 확률이 99.9%다.” A씨는 조정위원이 합의를 종용해 B씨와 합의했다. 조정위원은 A씨에게 ‘앞으로 의술로 다른 사람을 살려서 죗값을 덜고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식의 반성문을 제출하면 벌금형도 안 나올 수 있다’며 ‘차라리 합의를 하고 더이상 병원에 나쁜 소문을 내지 말라고 요구해라’고 제안했다. A씨는 합의문에 소문을 낼 시 ‘1회당 50만원을 배상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 2016년 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한 내용. '맞는 꿈을 꾼다' '병원이 사직을 강요한다' 등의 내용이 2년 가량 반복 등장한다.
▲ 2016년 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한 내용. '맞는 꿈을 꾼다' '병원이 사직을 강요한다' 등의 내용이 2년 가량 반복 등장한다.

“병원은 소송 취하, 사직을 강요했다”

A씨는 사과와 반성을 보고 3년을 견뎠다고 말했다. 그런 A씨는 그 동안 딱 한 번 사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경찰관이 ‘사과하라’고 하니 B씨는 ‘미안하다. 됐냐?’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는 것이다.

“잠을 자면 남자친구가 나와서 때린다” “동료 레지던트가 큰 소리만 쳐도 불안해서 미칠 것 같다” “기가 막히다. 경찰 앞에서 거짓말을 치더라.” “내가 간호사와 결혼하겠냐고, A가 분수파악 못하고 나댄다는 말을 간호사들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병원에선 소송 그만해라, 사직해라 압박이 들어온다” 경찰 고소 후 1년 간 기록된 A씨의 정신과 상담 내용이다. A씨는 폭행이 시작된 후부터 수면제·신경안정제를 끊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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