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원세훈 국정원 공략 대상 1호는 ‘노무현’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취임 직후 국정원이 심리전단을 동원해 겨냥한 첫 여론조작 대상은 사실상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원 전 원장은 심지어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도 심리전 대응 지시를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한겨레가 27일 국정원 등을 통해 확인한 ‘원 전 원장의 지시 상황과 이행 자료’ 내용을 보면, 2009년 2월12일 취임한 원 전 원장은 업무 파악이 끝난 직후인 3월3일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올린 국가보안법 반대 글에 대한 대응활동을 지시했다.

한겨레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반대한 이유는 그것이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고, 원 전 원장은 이 글을 겨냥한 반박심리전을 주문한 것”이라며 “이 지시가 내려온 이후 심리전단이 보고한 조처 결과는 구체적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겨레] 원세훈 국정원의 여론조작 대상 1호는 '노무현'이었다_종합 01면_20170828.jpg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은 원 전 원장의 지시 다음날부터 방송과 극우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 사이버 여론에 대응했다. 포털사이트 ‘다음’과 노 전 대통령이 개설한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 등 온라인 사이트에 반박 글을 800여 건 올렸고, ‘베스트 글 1·2위에 선정됐다’는 내용도 보고했다.

한겨레는 “전문가를 활용한 언론 기고, 안보지킴이라고 주장하는 한 극우 매체에 실린 온라인 칼럼, 한 종교방송에 출연한 인사의 노 전 대통령 규탄 발언 등이 심리전단 활동 결과로 보고됐다”며 “심리전단 보고서가 제출된 시기 등을 보면, 노 전 대통령 발언을 비난하는 대응은 3월 말까지 계속됐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에도 원 전 원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이 좌파에 있다는 것을 알리라’고 지시했고, 이에 심리전단은 ‘좌파 제압 논리를 개발해 사이버심리전을 전개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당시 검찰 수사의 배후로 지목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던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특히 당시 국정원 보고서에 ‘청와대가 국정원 활동에 격려했다’는 내용도 있어, 원 전 원장이 청와대와 교감 아래 여론조작을 진행했다는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이명박 고비 땐 “긍정적 여론 위해 전 역량 동원”

아울러 원 전 원장의 국정원은 국정의 주요 고비 때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총동원되기도 했다.

2009년 11월27일 원 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진행하자 ‘심리전단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날 밤 ‘국민과의 대화’는 7개 지상파·케이블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됐고 4대강 사업, 세종시 현안 등이 다뤄졌다.

[한겨레] 원세훈, MB '국민과의 대화' 전후 _심리전단 총동원 홍보하라__정치 03면_20170828.jpg
한겨레는 “국정원의 여론조작 활동은 그 전후에 집중적으로 진행됐다”며 “심리전단은 ‘가용 역량을 총가동해 VIP(대통령) 말씀 진정성을 확산했다’며, 대통령과의 대화 영상을 재편집해 DVD로 제작하고, 경제지 기사 등도 사이버심리전에 동원했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심리전단 활동과 관련해 청와대와 국정원의 유착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도 등장한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청와대가 ‘국정원 조정(하는) 건전단체’의 VIP 지지 성명에 대해 감사함을 나타낸 상황에 대해 같은 달 30일 원 전 원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겨레는 “당시 이 전 대통령 지지성명을 발표한 단체는 ‘자유주의진보연합’으로, 대통령과의 대화를 지지하고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지지성명을 냈다”며 “이후 청와대는 이 단체의 편집진을 오찬에 초청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원 전 원장 국정원의 인터넷 여론조작 의혹과 관련해 지난 주말에도 소환조사를 이어갔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와 공안2부(부장검사 진재성)로 구성된 국정원 댓글 전담수사팀은 사이버 외곽팀 활동과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차기식 선진미래연대 조직국장과 육해공군해병대예비역대령연합회(이하 대령연합회)의 양아무개 회장을 최근 불러 조사했다고 27일 밝혔다.

선진미래연대는 대표적인 친MB 단체로 2008년 10월 설립됐다. ‘자유통일을 추구하는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차씨는 2008∼2011년 개인 블로그에 190여 건의 글을 올렸다. 세계일보는 “이 글들은 이 전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국정원 활동을 옹호하고 야당과 진보단체의 활동을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검찰은 차씨가 인터넷에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글을 올리는 과정에서 국정원 관계자와 만났는지, 국정원 측으로부터 문제가 될 만한 요구 또는 주문을 받았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세계일보는 “1995년 설립된 대령연합회는 군 예비역 대령 전역자들 모임으로, 그간 국가안보와 정치·사회분야 주요 현안에서 보수성향의 목소리를 내왔다”며 “검찰은 이 단체 양 회장을 상대로 국정원과의 접촉 여부, 활동비 출처, 회원들의 활동내역 등을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 檢 '국정원 외곽팀 의혹' MB 지지단체 조사_사회 08면_20170828.jpg
검찰, 원세훈 재판에 추가 증거 제출… 변론 재개될까

세계일보에 따르면 앞서 국정원 적폐청산태스크포스(TF)의 조사 결과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은 원 전 원장 재직 시절 심리전단 사이버팀이 보수성향이 강한 예비역 장교들을 외곽팀장으로 두려 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들은 자신이 알고 지내던 다른 예비역 군인들을 모아 온라인 댓글 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사이버팀이 국정원과의 관계가 노출되지 않도록 민간인 외곽팀장을 비밀리에 관리한 단서도 잡았다. 세계일보는 “팀원들을 점조직처럼 관리했기 때문에 일반 팀원의 경우는 자신의 댓글 달기 활동이 국정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도 이 같은 인식 아래 외곽팀원들 가운데 ‘국정원을 돕는다’는 의식이 전혀 없었던 민간인을 선별하는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원 전 원장 파기환송심을 심리 중인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선고를 연기해 달라”는 검찰 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이르면 28일 결정할 방침이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27일 “선고가 30일로 예정돼 있어 이번 주 초에는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선고 VS 변론 재개… 원세훈 ‘운명의 한 주’_사회 10면_20170828.jpg
서울신문은 “법원이 변론 재개를 받아들일 경우 검찰은 새로 드러난 민간인들의 ‘댓글 작업’이 원 전 원장 공소사실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고 공소장 변경과 함께 추가 증거를 제출할 방침”이라며 “실제 국정원 적폐정산 TF가 발표한 민간인 외곽팀장 30명, ID 최대 3500개의 활동 내역은 지난번 ‘1차 국정원 댓글 수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문은 “검찰이 댓글 작업에 나선 민간인을 원 전 원장의 공범으로 보고 기소할 예정인 만큼 파기환송심에서도 양측의 공모관계를 밝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며 “검찰은 기존 공소장에 담기지 않은 원 전 원장의 국정원 예산 횡령 혐의는 별개의 범죄 사실이어서 추가 기소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광주서 기관총·수류탄… 전쟁 벌인 전두환 계엄군

경향신문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51만발이 넘는 각종 실탄을 사용했다는 군 기록문서가 처음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계엄군은 M16 소총 외에도 기관총과 수류탄, 헬기기관총 실탄 등 최소한 11개 이상의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경향신문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이 작성한 ‘광주사태 시 계엄군 실탄사용 현황’을 확인한 결과 군은 당시 51만2626발의 각종 실탄을 사용했다. 살상 범위가 넓은 수류탄 등도 무차별적으로 사용됐다. 발사한 기관총 실탄은 1만759발에 달했고, 사용된 수류탄은 194발로 적혀 있다. 군은 ‘실탄 및 수류탄의 80%는 특전사(공수부대)에서 사용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50만발이 넘는 실탄을 사용한 것을 두고 군 내부에서 ‘과다 소모’라는 지적이 나왔다는 내용도 있다.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된 각급 부대를 지휘했던 전교사가 5·18 직후인 1980년 9월 발행한 ‘광주소요사태 교훈집’에는 ‘실탄의 과다 소모’를 지적하며 “작전기간 중(7일간) 1인당 평균 59발을 소모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은 1만 명 정도다. 5·18 당시 총상으로 인한 사망자는 128명, 부상자는 364명이다.

[경향신문] TNT·클레이모어·수류탄까지… 계엄군, 광주서 '전쟁'을 했나_종합 03면_20170828.jpg
경향신문은 “당시 계엄군은 주택가 등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총을 쐈다. 그 때문에 5·18 사망자 중에는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 등 계엄군과 대치했던 장소가 아닌 주택가에서 총에 맞아 숨진 시민들이 적지 않다”며 “지난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포옹해 국민들을 눈물짓게 만든 5·18 유가족 김소형씨의 사연도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 탓”이라고 밝혔다.

계엄군이 사용한 총기 등에는 중화기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살상력이 높은 40㎜ 고폭 유탄도 60발 사용됐으며, 대전차무기인 66㎜ 로우도 74발을 지급돼 50발이나 사용했다. 경향신문은 “계엄군이 시민군이 탄 버스나 트럭, 당시 군수공장이던 아시아자동차에서 시민들이 몰고 나온 장갑차 등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공수부대 기록에는 TNT 폭탄 1200㎏과 클레이모어 30개를 소모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전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실탄 사용 자료에는 ‘헬기 기관총 사격(기총소사)’을 유력하게 뒷받침하는 내용도 있다. 광주에 파견된 육군 헬기 중 20㎜ 벌컨 기관총을 사용한 기종은 일명 ‘코브라’로 불리는 공격헬기 ‘AH-1J’뿐이다. 군은 5월22일 광주에 육군 31항공단 소속 ‘AH-1J’ 2대를 내려보냈다. 당시 이 헬기를 몰고 광주에 출동했던 항공대대장 이아무개씨는 1995년 검찰 조사에서 “대당 500발씩 벌컨 실탄으로 무장한 채 광주로 내려갔다”라고 진술했다.

경향신문은 “문서를 보면 군은 광주 도착 하루 뒤인 5월23일 항공대에 20㎜ 벌컨 실탄 1500발을 다시 공급했다. 출동 당시 가지고 온 실탄을 상당량 사용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며 “‘AH-1J’의 최대 실탄 적재량은 750발이어서 2대가 완전 무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동안 국방부는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