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박근혜 사람’이라도 두 공영방송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면 ‘임기 보장’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막강한 네트워크를 가진 두 공영방송은 한낱 사영 종편방송에 밀릴 만큼 이미 서릿발 심판을 받았다. 언론노조 김환균 위원장이 “공영방송 MBC의 수장이 그동안 제 역할을 해왔다면 우리가 여기 모여 ‘퇴진하라’고 외치지 않고 ‘임기를 보장하라’고 외쳤을 것”이라는 말의 진정성을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거기가 바닥이 아니었다. 이인호는 “회사를 구하기 위해 내가 용퇴해야 한다고 하는데 개인의 희생을 통해 회사가 회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생각 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런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희생? 퇴진을 ‘개인의 희생’으로 생각하는 저 후안무치 앞에 새삼 썩을 대로 썩은 이 나라 ‘보수’의 민낯을 본다. 이인호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갑작스러운 경영진 교체는 회사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연 특별한 사유가 없는가? 대체 자신이 KBS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코흘리개도 판단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탄핵 국면에서 사장에 임명된 김장겸 문화방송 사장은 최근 이사회 보고를 통해 “성과를 창출하는 직원들이 리더로 성장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권력에 부닐던 김장겸은 어느새 ‘유체이탈’ 화법까지 익힌 걸까. 언론계 후배를 비판하는 꼴이어서 민망하지만, 김장겸은 대체 어떤 ‘성과’로 ‘리더’가 되었단 말인가. 오늘의 문화방송 위상을 정말 모르는가.
나는 본란을 통해 권력의 서슬이 아직 시퍼렇던 박근혜에게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권고했다. 민생을 고통스럽게 하는 정책을 ‘민생 살리기’로 강변할 때였다. 그 말을 이인호와 김장겸에게 들려준다. ‘이인호’와 ‘김장겸’이라는 ‘기호’와 희생이나 독립이란 말은 생뚱맞다.
두 사람이 ‘호감’을 가질 법한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남은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부와 무관한 일을 추구하라”고 권했다. 이인호와 김장겸. 그만하면 됐다. 교수로서, 기자로서 본인의 능력에 견주어 여태 지나치게 누려왔다. 공영방송을 살리려는 방송인들 앞에, 무엇보다 인생 앞에 겸손하라. 퇴진은 ‘희생’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지식인으로서 양심의 문제, 인간으로서 최소한 지녀야 할 부끄러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