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A기자는 지난해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소진돼 버렸다”고 했다. 일에 지친 게 처음은 아니었다. A기자는 “전에는 지쳐도 재미있는 취재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보완이 됐는데 그때는 ‘뭘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체력은 바닥난 상태였다. 소규모 매체에서 일했던 그는 “120%의 노동을 하는 상황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일이 언제 끝날지 알기 어렵다보니 규칙적인 일상을 영위할 수 없었다. 업무시간에 노력한다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업무가 일상을 지배했다. 

일이 잘될 리 없었다. 오히려 “이러면 안 된다”는 자책이 커져 꿈에서도 일을 했다. 출근길에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출근해서 또 뭘 쓰지. 도대체 나는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이 시간이 길어지자 포기 단계에 이르렀다. “어차피 나는 못 해.” 이른바 ‘번 아웃’(Burn Out), ‘탈진’이었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6년차 B기자 역시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다. 그가 속한 정치부는 특성상 취재원들과의 점심·저녁 약속이 끊이지 않는다. B기자는 “최소한 저녁은 머리를 털어내고 몸을 돌보는 시간이어야 하는데 일이 계속 된다”며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이 이어지고 긴장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와중에 써야할 기사는 쏟아진다. 아침 라디오 인터뷰부터 담당하는 정당의 오전 회의, 오후 일정 등을 챙기다 보면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간다. 절정은 국정감사 기간이다. B기자는 “하루에 받는 보도 자료가 수백 건인데 이걸 읽다보면 더 이상 텍스트를 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B기자는 잘 먹지 못하고 쉽게 잠들지 못한다. 몸무게가 급격하게 줄었다. B기자는 “머리가 복잡하니까 잠이 잘 안 온다”며 “잠을 제대로 못 자니까 몸은 항상 지쳐있다. 그러다보니 끌려가듯이 일을 하게 된다. 생산적이거나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발제를 못한다”고 말했다. 

5년차 C기자는 취재원들과의 만남에 질렸다. 사람들을 만나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감정노동이 심하다는 것. C기자는 “같이 있는 게 불편할 정도의 사람이라도 앞에서는 웃어야 한다”면서 “특히 상대가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앞에서는 웃다가 비판 기사를 써야한다. C기자는 “앞에서 웃은 다음 뒤돌아서 비판기사를 쓰고 나중에 만나서 또 웃을 때면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기사 때문에 취재원과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그는 “형·동생 하며 친하게 지냈던 사이도 기사 때문에 다시는 안 보는 사이가 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C기자는 정신과에서 ‘대인기피증’ 진단을 받았다. C기자는 벌써 두 번 휴직계를 제출했다. 그는 “사람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취재원이 곧 친구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취재원은 취재원이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사적인 관계가 없어지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이치열 기자
탈진을 겪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 몇 달 전에는 종합편성채널의 간판 앵커가 탈진을 이유로 장기간 휴직계를 냈다. 일단 노동시간이 과하다.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도 나빠진다는 건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가 노동자 1575명을 조사해 지난 9일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불안·번아웃도 높아졌다.

주당 노동시간이 56시간 이상인 노동자는 40~50시간 일하는 노동자보다 우울 34.0%, 불안 47.0%, 직무소진이 28.6% 더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3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인의식조사에 따르면 언론인은 하루 평균 10시간 38분간 일하며 법정근로시간을 2시간 38분 초과하고 있다. 기자직 특성상 노동시간과 여가시간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실제 노동시간은 더 길 것으로 추정된다. 

정재민 카이스트 교수와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이 2011년 진행한 ‘신문사 종사자의 탈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기자직군의 정서적 소진은 5점 만점에 3.20점으로 나타나 비편집국 종사자(3.04)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정서적 소진은 탈진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해당 연구에는 매출 상위 3개 신문사를 제외한 6개 일간지 종사자 352명이 참여했다. 

해당 연구는 기자직의 정서적 소진 정도가 높은 이유로 △마감시간 △특종에 대한 압박 △주말근무 △취재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등을 꼽았다. 모든 직종에서 마감이 있지만 기자들은 거의 매 순간 마감 압박에 시달린다. 온라인으로 속보가 쏟아지면서 이는 더 심화되는 추세다. 2013년 언론인의식조사에 따르면 1주일간 작성하는 기사 건수는 2009년 14.8건에서 2013년 31.3건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조선·중앙·동아·한겨레·경향·서울 6개 일간지 기자 167명의 탈진 정도를 측정한 2006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겨레·경향·서울신문 기자들의 정서적 탈진 정도가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젊을수록, 신문사 규모가 작을수록, 연차가 낮을수록 탈진의 정도가 높다는 해외 연구결과도 있다. 

특이할 점은 임금이 기자들의 정서적 소진에 영향을 미치는 유의미한 변인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직업만족도 항목은 직무, 상사, 동료, 보수, 성장 등 다섯 가지였는데 연구자들은 “같은 취재현장에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며 타사 기자들과 빈번히 접촉하기 때문에 임금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큰 것”으로 봤다. 

문제는 기자들의 탈진이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생산적이거나 건설적인 발제를 못 한다”는 B기자의 말처럼 “기자들의 탈진이 조직전념 저하, 이직의도 증가로 이어져 결국 조직의 성과, 저널리즘의 질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구자들은 “사회적으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인들의 탈진을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 처방을 통해 언론인으로서 책임감과 직무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양질의 저널리즘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자들에 따르면 탈진은 사후 처방보다 예방이 중요해 보인다. A기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우울증 증상이 급격히 완화됐다. 그러나 A기자는 “한번 번 아웃을 겪고 나면 조금만 기분이 좋지 않거나 의욕이 생기지 않아도 번 아웃이 올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B기자 역시 “다시 잠을 못 자고 그런 상황이 될까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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