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임명된 최승호 사장의 MBC는 공영방송 정상화라는 과제와 더불어 대규모 적자를 떠안았다. 지난해 MBC 적자규모가 565억 원대를 기록했고 올 2월 누계 영업 손실만 해도 162억 원에 달한다. 최 사장은 지난 1월 취임 첫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 MBC 적자 규모가 7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도 콘텐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제작 예산을 130억 이상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변창립 MBC 부사장은 지난 5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MBC 공정성 지표가 하락해왔다. 채널 경쟁력 역시 지상파 3사 중 최악”이라면서도 “지금이 MBC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변 사장 표현을 빌리면 “무모하고 비상식적 편성”을 강행해서라도 생존 방향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MBC에 대한 시청자 평가를 감안하면 적자를 이유로 체질 개선을 미뤄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MBC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종합 편성 등 8개 채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시청자평가지수(KI) 조사에서 2010년 이후 지상파 최하위를 유지해왔다. 국내 언론학자들이 선정하는 ‘미디어 어워드’ 신뢰성·공정성 부문에선 2012년 이후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시사IN 조사) 순위를 보면 지난 2009년 1위였지만 2017년 8위로 하락했다.

다만 최근 들어 신뢰도 평가에서 상승세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MBC ‘PD수첩’과 ‘스트레이트’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탐사 프로그램이 신뢰를 되찾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스트레이트’는 MB 자원 외교 ‘하베스트’ 추적 보도로 5.4%, 최근 세월호 구조와 관련한 방송으로는 6.1%(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 시청률을 기록했다. ‘PD수첩’의 경우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을 고발한 방송으로 시청률 7.0%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고,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재조명한 ‘검찰 개혁 2부작’ 또한 호평을 받았다.

▲ 최승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연합뉴스
▲ 최승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연합뉴스
조능희 MBC 기획편성본부장은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최악의 상황에 비해 전반적으로 우상향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서도 “드라마 부문의 경우 어느 정도 기다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이 투자를 약속한 MBC 드라마의 경우 현재 가시적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최 사장은 앞서 아침 드라마 제작을 중단하는 등 제작 편수를 줄이고 관련 예산을 콘텐츠 제작에 재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반기에는 대형 자체 기획 드라마를 선보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최 사장 취임 후 새로 편성된 ‘위대한 유혹자’,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등의 드라마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향후 방영될 드라마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규모 예산 사용이 불가피한 드라마 본부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최원석 MBC 드라마본부장은 미디어오늘에 “비겁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시간과 돈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작가와 제작사 등 다양한 주체가 제작하는 드라마 특성을 고려하면 짧은 시간 동안 낼 수 있는 성과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MBC 안팎에서는 올해 하반기가 지나야 MBC 드라마 성과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경영진의 고민은 또 있다. MBC 한 관계자는 “사내 유휴인력이 역대 최대치”라고 전했다. 김재철 사장 이후 전임 경영진이 사내 ‘블랙리스트’들을 배제하기 위해 채용한 경력직원 가운데 200여명 정도가 현재 유휴인력으로 분류되고 있다. 수년 간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지만 인건비가 역대 최대 규모인 상황으로, 이 또한 장기적으로 경영진의 큰 부담이다. 이와 관련 MBC의 한 경력기자는 “정권이 바뀌고 보도국 밖으로 밀려났지만 MBC만큼 좋은 회사가 없다. 이직하지 않고 계속 버틸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전임 경영진이 엎질러놓은 일을 수습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무한도전’ 종영까지 겹치며 경영진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내부에선 지상파에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광고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 사장은 지난 21일 한국방송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에 참석해 “유료 방송 및 종편과 비교할 때 광고나 각종 제도에서의 역차별이 너무 심하다”며 “특히 중간 광고가 지상파 방송에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방송들에는 허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오는 5월 여의도 MBC 사옥 부지 매각으로 적자 일부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MBC는 이와 관련해 내달 3일 방송문화진흥회 보고를 가진 뒤 주주총회를 거쳐 계약을 진행할 전망이다. 그러나 당장의 적자 보전보다 중요한 건 장기적 전망이다. MBC의 한 보직간부는 “파업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MBC만의 제작 매커니즘이 완전히 붕괴돼있었다”며 “정상화까지는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MBC 내부에선 곧 입사할 신입사원들이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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