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공론화 과정에서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 대형 사고 발생 확률을 둘러싼 논쟁이 제기됐다.

이른바 원전 대형사고 빈도가 10만 년 또는 100만 년에 한 번 발생할 확률이라는 원자력업계 일각의 주장이 허구이거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 원자력위원회에서는 이런 계산법에 지금까지 심각한 사고 사례를 넣어 적용할 경우 일본은 10년에 1번씩 사고가 난다고 분석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원전 사고가 확률이 거의 없다는 식의 주장은 국내에도 이명박 정부 초기에 많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 당시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한다고 했을 때 지식경제부와 동아일보 등은 APR1400 이라는 원자로에서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100만 년에 1회 미만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2009년 12월28일자 ‘사고 확률, 100만년에 1회 미만’)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난 직후에도 원자력학계 인사들은 이런 주장을 폈다. 한국경제는 2011년 3월14일자 10면 머리기사 ‘[대지진…일본 경제가 멈췄다] 후쿠시마 원전에 무슨 일이’에서 장순흥 KAIST 대외부총장이 “정상적 원전 운영과정에서 노심용융사고 확률은 10만년에 1회, 방사성 물질이 격납고를 뚫고 나오는 것까지 합하면 100만년에 1회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뉴시스도 이듬해인 2012년 2월21일자 르포기사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수치 자연방사능 보다 낮다?”’에서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전 정영익 본부장이 “우리나라 기술진이 개발한 신형경수로는 국제원자력기구가 권고하고 있는 ‘10만년에 1회의 사고확률’보다 10배나 더 안전한 ‘100만년’을 기준으로 안전성을 극대화 하겠다”고 한 주장을 실었다. 최근에도 일부 전문매체와 지역신문 등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 세계 원전 대형 사고 사례. 사진=박종운 교수 발제문
▲ 세계 원전 대형 사고 사례. 사진=박종운 교수 발제문
원전 사고 확률 10만 분의 1, 또는 100만 분의 1의 근거는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원전 안전 설계 기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노심용융(멜트다운‧핵연료손상) 수준 이상의 대형 원전사고만 해도 세차례(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였으며, 원자로 수로 할 경우 6기에 달한다. 여기에 러시아의 키시팀(1957년), 영국의 윈드스케일(1957년), 캐나다의 초크리버(1958년)까지 포함하면 대형사고가 난 원자로는 8~9기까지 늘어난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1년 11월 일본 원자력위원회가 일본 사례를 포함하면 일본에서 대형사고 빈도가 10년에 1번 꼴로 발생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본 원자력위원회(JAEC)는 ‘핵연료 주기 비용과 사고위험 비용에 대한 평가(Estimation of Nuclear Fuel Cycle Cost and Accident Risk Cost)’라는 보고에서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원전 1기당 대형 사고 발생 빈도가 10만년에 1회 미만(1.0×10⁻⁵/reactor year)이라며 이는 안전 목표선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대형 원전 사고가 발생한 쓰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 개수를 포함해 계산하게 되면 1000년에 2회꼴(2.0×10⁻³ /reactor year)로 급격히 줄어든다. 더구나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원전 50기를 곱할 경우 일본의 원전 대형사고 빈도는 10년에 1회라고 이 보고서는 계산했다. 일본 원자력위원회 사무국의 요시이히로 나가오키는 2년 후인 2013년 5월28일 보고서 ‘핵발전소 사고 위험 비용 평가’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수록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23일 오전 국회 탈원전정책 토론회 ‘신고리 5‧6호기 건설, 무엇이 문제인가’의 발제문에서 이 같은 자료내용의 일부를 담았다. 박 교수는 “IAEA의 원전 한 기당 10만 년에 1회 사고발생 빈도라는 것은 IAEA의 개별 원전 목표치이며 실제 전세계 원전 대형사고의 실적치(발생횟수)가 아니다”라며 “실제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3기까지 포함한 것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경우 원전이 25기 보유하고 있으므로 20년에 1회라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 일본 원자력위원회 사무국의 요시이히로 나가오키가 2013년 5월28일 발표한 보고서.
▲ 일본 원자력위원회 사무국의 요시이히로 나가오키가 2013년 5월28일 발표한 보고서.
▲ 일본 원자력위원회 사무국의 요시이히로 나가오키가 2013년 5월28일 발표한 보고서
▲ 일본 원자력위원회 사무국의 요시이히로 나가오키가 2013년 5월28일 발표한 보고서
박 교수는 “원자력계에서 말하는 원전 1기당 대형사고 발생 빈도 10만년에 1회는 IAEA가 제시하는 원전 안전 목표치일 뿐이며, 실제 발생빈도는 이보다 100배 가량 높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날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발생한 빈도를 다 포함하면 그럴 수 있다는 계산”이라며 “10만 년에 한 번 발생한다는 주장은 말도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에서도 10년에 한 번 사고가 난다는 말을 해왔다는 것”이라며 “목표치에 불과한 것을 사고확률인 것처럼 그대로 주장하고 보도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원전 1기가 그렇다는 것이며, 다수호기의 경우 다 붙여서 밀집해있을 경우 하나 터지면 다 터질 수 있다”며 “대형 사고가 10만 년에 한 번 발생한다는 주장은 사기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IAEA의 대형 사고 발생 빈도는 ‘확률론적 안전성 분석’ 기법 이른바 PSA(Probabilistic Safety Analysis) 방식으로 계산한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초안을 보면 이 같은 PSA 방식을 이용해 원전 사고 확률을 계산한다고 나와 있다. 이 기법에 의하면 △원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초기 사건들을 모두 나열하고 △모든 시나리오를 작성, 이 가운데 노심용융으로 갈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열거해 각각의 시나리오에 의해서 노심용융이 발생할 확률을 계산한 뒤 △노심용융으로 갈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의 발생확률의 합을 계산하면 그것이 바로 대형사고 발생확률이 된다.

문제는 대부분 1990년대 이전에 건설된 원전은 이 기법을 적용받은 일이 없거나 있어도 공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박종운 교수는 “처음에 지을 때는 이런 PSA 기법이 없었다”며 “이런 방식이 제대로 나온 것은 90년대인데, 그 이전에 지은 것이 3분의 2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기법은 노후화된 것을 평가하지 못하고 1기 짜리가 아닌 다수호기(여러 원전이 함께 있는 경우)일 경우에도 평가하지 못한다”며 “10만 년에 한 번에 맞게 건설된 원전은 몇 개 되지도 않는다. 이런 사정도 모른 채 이런 말을 하면 믿는 사람이 생긴다. 하지만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전의 안전 수준을 얘기하려다 보니 (그 기준이) 이것 밖에 없어서 쓰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 공학부 교수. 사진=박종운
▲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 공학부 교수. 사진=박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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